"타자가 우리에게 가장 이상하고 가장 이질적으로 보일 때조차도 타자에게서 유사성을 알아보기,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경계 안에 포함시킬 수 없는 '부정의 존재 안의 완강함'처럼 우리 자신에게서 상이성을 알아보기.”
처음에는 작업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작업과 현장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날보다 그저 주먹을 움켜쥐고 나가는 날이 많았다. 사건을 포착하기를 희망할지라도, 사건이 두 팔 벌려 노출되고자 할수록 온전히 포착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명료한 가독성은 실제 경험과의 간극을 초래하며 말할 수 있는 자질을 앗아간다. 경험은 본래의 형태를 벗어나 초월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이미지 또한 통제 불가능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사건은 무한히 반복되는 재현의 과정 속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 작업을 할 때에는 증여된 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노출시켜야 한다. 말 속에 감도는 침묵처럼 사라지고자 하는 속성을 가진 것이야말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분출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내 눈앞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야말로 급진적인 실천이 아닌가? 이러한 의구심 속에서 엉거주춤한 채로 현장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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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미학살 55주기 위령제에 참여한 날이었다. 취재진이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이는 틈에 섞여 카메라를 들었다. 위령비 앞에서 거행되는 추모식에 모두가 집중하는 도중, 나는 문득 카메라를 옆으로 돌려 잔디밭을 비추었다. 별다른 의도없이 찍은 그곳에는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북 연주자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채 다가와 뒷짐을 지고 한참 잔디밭을 살펴보았다. 동료는 나직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는 수습하지 못한 시신을 함께 묻은 곳이에요. 한 명을 만들지 못한 시체들, 분류할 수 없는 유골들이요.” 촬영한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한 다음, 곧바로 파일을 삭제하였다. 어떤 장면은 기억으로 충분하다. 물론 그것은 현장이 원하는 장면도 아니었다.
위령제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었다. 기록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된 A 님이 내 숟가락이 비워질 새 없이 새로운 음식을 덜어주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많이 먹으라는 마음은 전해졌다. 행사에 참석한 베트남 고위 관직자들은 각 테이블을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그들의 말이 길어지려고 하면 건배를 외쳤다. 위령비 주변 인파가 줄어든 틈을 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천막 주변을 서성이며 사소한 것들을 기록했다. 음식을 담았던 그릇, 비어 있는 의자,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누군가 놓고 간 헬멧, 테이블 위에 놓인 복권, 그 위로 펼쳐진 창공, 멀리 보이는 마을의 윤곽. 떠들썩한 행사가 끝나고 나니, 정작 카메라에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기록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러나 도움이 될 만한 기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았다. 피해자, 유가족, 눈물 흘리는 참배객, 국회의원, 국회의원들이 보낸 조화를 찍었다면 최소한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에는 기여했을 터이다. 그런 것들이 한국에서 온 나를 계속해서 먹이고 먹여 주는 숟가락보다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기록은 시각적 자료의 축적이 아니라 기억의 방식과 그 지속성에 대한 물음이다. 떠나기 전, A 님께 작별 인사를 드렸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나의 오른뺨에 왼뺨을 기대었다. 뺨을 대고 있으니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반대편에서는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이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전쟁 이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뺨을 쥐고서 생각에 빠졌다. 나는 어떻게 풍경의 통로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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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선박들(The Silent Bearers)〉(2023)은 베트남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한 다크투어리즘을 배경 삼아, 남베트남군 출신이자 투어 가이드인 M이 들려 주는 공적 서사와 사적 기억의 대립을 따라가는 여정이자, 남단에서 북단에 이르는 과정을 담은 기행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북베트남의 혁명적 투쟁과 민족 해방의 관점에서 구성된 역사는 남베트남군을 가해자이자 패배자로 규정한다(이러한 이분법적 분류는 지역에 대한 차별로 확산되어 베트남 전쟁 당시 중부 지역에서 발생했던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역학관계를 간과하게 만든다. 특히 후에와 꽝트리 지역의 경우, 많은 주민들이 지리적 위치나 가족 관계에 따라 어느 한 편에 서야 했으며, 때로는 양측 모두와 관계를 맺으며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설명 가능한 것으로 변환하기 위하여 ‘공적 서사’를 인용할 때, 그는 맞서 싸웠던 악에게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영원히 내어줄 수 없는 상이성을 인지한다.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들이 저항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커질수록 내부의 저항력 또한 팽창한다. 그가 작전을 수행했던 산을 가리키는 모습은 고통이나 슬픔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가 침투되고 이중화되어 접혀 있는 지속으로써 존재했다.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분리하는 경계선 역할을 했던 히엔 루엉 다리(Hiền Lương Bridge)를 건너면서, 그는 몸에 밴 행동이 자연스레 튀어나오듯 노란색과 하늘색에 걸친 발을 가리켰다.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후에(Huế)에서 벌어진 학살은 증언의 정당성을 둘러싼 서사적 충돌을 야기하였다. “당–국가가 당시 총진공과 봉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에만 의존해 “영웅과 열사”들에게만 배타적 역사 주체로서 정당성을 부여해 ‘상이한 기억’들을 아우르는 상황은, 참혹한 전쟁이 낳은 고통의 치유와 화해를 요원하게 하고 있다.” 보편사의 구축 과정에서 특정한 사실들이 선택되고 배제되는 것이 필연적인 만큼, 모든 누락된 기억들은 다시 나타날 잠재력을 지닌다. 오랜 시간 소외되어 난처하기까지 한 존재들. 그들이 입을 열 때보다 그들의 침묵이 얼마나 멀리 가는지를 지켜볼 때에 무서워지는 것처럼, 그들이 파헤쳐 들어가는 지층에서부터 아득한 역사에 대한 해석을 채취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