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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명(이하 여명) 반갑다. 오늘 진행을 맡은 김여명이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먼저 더미덤피이미지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구성원 개인에 대한 소개도 함께 진행해 주시면 좋겠다. 더미덤피이미지라는 이름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

황예지(이하 예지) 더미덤피이미지는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한 비정기 웹진이다. 사진 담론의 미싱 링크를 찾아 보수하고, 작가들의 작업과 비작업/농담/연구 등을 기록하기 위해 창간했다. 더미덤피이미지(이하 더덤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는, 제일 바보 같은 이름이었으면 했다. 바보 같고 농담에 가까우면서 부르기 편한 어감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더덤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서 사진 찍고 글 쓰고 이것저것 하고 있는 황예지다.

정어진(이하 어진) 반갑다. 더덤이 편집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어진이다. 간헐적으로 기획과 글을 쓰고 평상시에는 카페에서 주 5일 40시간 노동한다. 친구들과 작당모의 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하려 한다.

여명 그러면 지금 두 분이 더덤이의 운영 전반을 맡고 있는 건지.

예지 보람이라는 친구를 포함해 총 3명이 운영한다. 보람은 요즘은 쉬고 있어서 인터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더덤이 초반부에는 보람과 나, 투 채널로 운영되다 지금은 어진을 섭외해 셋이서 굴리고 있다.

여명 보통의 웹진들이 텍스트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더덤이는 사진이라는 특수한 매체와 웹진을 접붙인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구성원들이 사진을 주요한 실천 매체로 삼기 때문이겠지만, 비평이나 연구 베이스가 강한 텍스트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텍스트와 필자 개인의 개성과 삶이 강하게 느껴지는 글이 발행된다. 웹진의 방향을 설정할 때 특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을까? 창간 계기나 창간 과정에서 편집인들이 나눈 이야기가 듣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허심탄회하게 나누면 좋겠다.

예지 더덤이를 창간하게 된 건, 우선 한국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사진 비평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씬(scene)이라는 건 보아주는 사람, 읽어 주는 사람, 찍는 사람이 손을 잡고 가야 하는 경기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사진을 내뱉고 뭔가를 발화해도 어떤 기록으로든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기성 사진 잡지들이 있지만, 『월간 사진』 같은 경우 기자재와 광고 위주로 돌아가고 『보스토크』도 동시대 작가들의 목소리를 즉각적으로 넣을 수는 없는 잡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속하게 작가들의 이야기들을 담기 위해서 일단 지류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린트 과정을 생략하고 사진 이야기를 신속하게 해보자’ 해서 웹진이라는 형태를 선택했다. 더덤이에는 실험적인 원고나 실천들을 싣고자 했다. 몇 번의 퇴고, 편집을 거쳐서 정갈하고 유의미해진 이미지보다는 작가들에게 부끄러울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실험이라 해야 할까. 섭외나 원고 검수 과정에서도 충분히 작가 본인이 실천적이고 실험적이었는지 얘기해 보려 했다. ‘조금 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좀 더 해보자’라는 식의 권유도 하고. 그래서 작가들도 우리와 원고 얘기하는 걸 편해하고 원고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이 더덤이의 특징이 되지 않을까. 동시대적이고 현재적인 감각을 담으려고 하는 웹진. 그래서 어쩌면 즉흥적이고, 무모하게 가고 있는 웹진.

어진 내가 더덤이에서 한 첫 활동은 당시 보광동 철거를 찍고 있던 예지와의 인터뷰다. 「예지를 응원하기, 그녀가 계속 시끄러울 수 있도록」이라는 제목이다. 쓰면서 스스로 즐거운 글이었고 더덤이와 앞으로도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예지가 편집인 제안을 줬을 때 거의 바로 수락했다. 사진 담론의 미싱 링크를 찾아 보수하는 일은 더덤이의 주요 목표이자 예지가 계속 말해온 것이다. 예지를 옆에서 봐온 입장으로서 이 부분은 예지가 놓지 않고 지속해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작가들의 비작업이나 농담을 기록하고 싶다는 포부에는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명 앱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창간됐다. 『월간 미술』이나 『퍼플릭아트』와 같은 기존 미술 잡지들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못 담고 있다고 느꼈다. 대형 갤러리나 미술관 위주로 리뷰하다 보니 작은 전시는 뒤로 밀려나면서 지면을 받지 못하는 상황들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어떤 말씀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한편, 더덤이는 비영리로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 그 지점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앱스의 경우 구성원들의 정기적인 각출이 있다. 이게 모자라면 그때그때 각출을 한다. 외부 기고자와 인터뷰 참여자에게는 정말 약소하게 사례비를 책정하고 있다. 더덤이를 비영리로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 혹시 더덤이가 책을 인쇄해서 판매도 하나?

예지 책 제작은 아직 계획에 없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독자분들의 요청이 있긴 하다. 자체 운영 시스템으로 결정한 이유는 일단 기금을 받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시작한 건데,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돈을 받고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기금을 받더라도 추후 행사나 책을 제작하는 경우를 염두에 뒀다. 대신 내가 돈을 많이 벌어 오자는 마음가짐이다. 어진과 보람에게는 ‘우리 좋은 일 하는 거다’ 하면서.

어진 얼마 전에 다음 기획 기사에 대해 얘기하다가, 우리가 기금 받아 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체 제작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예지가 “도대체 뭘 자체 제작해야 하지” 이러면서 막 웃었는데, 시를 써보는 게 어떠냐고 내가 말했다. 어쨌든 요즘은 무엇을 자체 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자체 제작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하다. 지금은 사진과 링크될 수 있는 다른 장르의 동료들에게 최대한 부탁하고 구걸하고 설득하는 방식을 찾고 있다. 지면에 함께해 줄 수 있는 동료들을 기다린다.

여명 비영리로 해 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한 것 같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내가 사진에 대해 깊은 이해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에 섣부르게 말해야 하는 부분이 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 개인적으로 더덤이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이상하게 어딘가 여성의 느낌이 있다. 구성원과 필진이 여성임을 알고 있기에 선입견이 작동하는 것 같기도 한데, 사진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다. 나에게 특히 그렇게 느껴진 사진은 「교토 일기」의 홍지영 작가와 〈토요일의 여자들〉 중 전다정 님의 사진들이다. 「교토 일기」의 경우 사진과 편지가 교차한다. 근데 편지를 읽어 보면 ‘이런 말을 하네’ 싶은 내용들이 있다. 미술계에 들어와서 익숙해지긴 했는데, 일반 대중들이 봤을 때는 대단히 사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이야기들. 편지가 이미지로 등장하는 것에서도 전달되는 바가 있다. 전다정 님의 사진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촬영했다. 그런데 여기서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이 재미있다. 보통 예술 사진을 촬영할 때는, 의미 있는 어떤 순간 혹은 촬영할 만한 피사체를 찍어야 할 것 같지 않나. 화면 안에서 뭘 찍으려고 했다는, 무엇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목표가 분명하게 느껴지도록 피사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고. 그런데 전다정 님 사진에서는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점이 나에게 아주 긍정적인 의미에서 여성적이라고 느껴진다. 더덤이에서 유독 동시대 여성 사진가들을 많이 다루기도 하고, 〈토요일의 여자들〉도 여성의 서사, 여성의 관점, 여성의 시점에 주목하는 지점이 있어서, 여성과 사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이미지3, 4) 홍지영, 〈교토로의 사진 여행〉(2023) (이미지5, 6) 더미덤피이미지 기획, 〈토요일의 여자들〉 촬영: 전다정

어진 일단 나는 사진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깊게 인지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사진은 여성적인 것이나 여성이 하는 일들을 공예의 영역 안으로 편입시켜 버리거나, 그 스케일을 압축하고 축소시키는 행위가 상대적으로 덜한 매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나는 사진 매체에 여성이 신경증이나 편집증과 같은 정신증에 대해 발화하기 위한 특수한 지반이 존재한다고 본다. 여성 작가들은 자신의 치부에 대해 의도적으로 직설적인 장치를 만들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화면 안에서 그러한 치부가 쉽게 노출되어 버리기도 한다. 사진 자체가 직관적인 시각 매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작가 스스로가 본인의 치부를 얼마만큼 드러내고 갈 것인가 하는 전략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다른 매체를 다루는 여성 창작자들도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감각일 것 같다만.

예지 나는 사진에서 여성의 자리를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 왔다. 외국 사진계에서는 여성의 이미지가 자리를 잘 잡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 사진계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곤란한 위치에 있다. 사진의 출발점은 자격지심이라고 보는데, 거기에 한 번 더 여성으로서의 사진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정말 자리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 누구도 제안할 수 없고. 원로 작가인 박영숙 작가님을 포함해서 그 아래 세대 작가들도 많지만, 그 계보가 건강하게 기능하고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 담론도 없지만 여성과 여성의 사진, 그리고 여성이 독해하는 사진에 대한 자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사진사』를 읽어 보면 ‘피사체로 전락해 버린 역사’라는 표현이 있다. 조선시대나 식민 시기 사진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피사체로서 사진 안에 있지, 찍는 사람으로서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거다. 나는 이게 여성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 같다. 그래서 나의 경우, 다 반대로 하려고 했다. 내가 카메라를 잡고, 사진을 내 눈으로 읽고, 내가 선택한 편집인들로 이 사태를 읽어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틀린 말이라도 얹어보자는 마음. 여명 님의 질문이 이런 실천과 맞닿아 있어서 반가웠다. 더덤이의 이미지들이 헤맬 수 있는 경위에 대해 말해 보면, 나는 실천하는 사진을 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읽을 수 있는 사진, 나와 있는 사진은 웅장한 사진 뿐이다. 이를테면 홍진훤 작가나 노순택 작가의 사진. 웅대한 작가들을 보고 자란 아래 세대의 사진가로서 나는 어떤 사진을 보고 어떤 사진을 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 사진이 웅대한 자리에 있었고 제1세계의 사진을 복제하고 따라갔다면, 내가 사진에서 길어 올리고 싶은 건 가난함과 곤궁함이었다. 사진 이미지 안에서 필요한 것들은 그런 거라고, 그래서 헤매는 일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일회용 카메라를 선택한다거나 육아로 정신없는 상태의 사진들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것 역시 헤매는 일인 거다. 「교토일기」의 편지도 사적이지만 어느 순간엔 굉장히 정치적인 텍스트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여태 학습했던 것과 반대되는 경향성을 띠어 보자 해서 한 선택들이 이어지고 있다. 효능감만을 쫓지 말자는 마음으로 편집과 사진 셀렉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진과 여성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나타나는 듯하다.

(이미지7, 8) 더미덤피이미지 기획, 〈토요일의 여자들〉 촬영: 심미섭, 이수연, 윤이람

여명 두 분은 평소에 어떤 사진을 좋아하나?

예지 여성 의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으면서 내가 사랑에 빠지는 건 항상 남성 창작자다. 한국에서는 노순택 작가님이랑 홍진훤 작가님의 실천하는 힘을 자책할 정도로 좋아했다. 외국 작가는 낸 골딘(Nan Goldin). 낸 골딘이 길어 올리는 문화들이 전 세계 여성 창작자들에게 퍼지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사는 방식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사진을 쫓아가고 싶어 했다.

여명 두 분이 모두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것 같은데, 나도 옛날에 싸이월드 같은 데에 낸 골딘 사진 올려 놓으면 무조건 ‘이 사람은 뭔가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판단했다.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좋아하는 사람은 탈락이다. 무조건 낸 골딘으로 가야 되는 법칙 같은 게 있었다. 폭력적인 이미지들도 많은데, 이를 테면 드랙 남성, 여성들이 등장해서 짙은 화장을 하고 있거나 스타킹을 입고 있는 사진이라든가 멍이 들어 있는 사진들. 사적인 것을 여성적인 것으로 보는 나의 관점은 이 낸 골딘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어진은?

어진 외국 작가로는 알렉 소스(Alec Soth), 국내 작가로는 안초롱 작가님. 요새는 특정 작가보다 의도가 있는 사진을 더 좋아한다. 작년 언리밋(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갔을 때 ‘올해는 아무것도 사고 오지 말자’라는 결심을 하고 갔다. 그런데 어떤 태국 서점 부스에서 꽤 비싼, 십만 원 정도 나가는 사진집이 있었다. 하드 커버에 은박에, 엄청 열심히 만든 사진집이었다. 그걸 사려고 했더니 셀러 분께서 너무 민망해하고 미안해하면서 “이 사진집이 굉장히 비싸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갖고 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래도 이게 200부밖에 안 찍은 거고 우리가 이 판형을 정하는 것부터 프린트 하고 박을 하는데 공을 들였다” 이렇게 변명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다. 난 이 책 되게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구매를 했고 얼마 전에 다시 보는데 진짜 좋았다. 그런 식으로 의도가 있는 사진이 되게 좋았고, 또 작년에 안초롱 작가님이 ‘사진 잡지 만들기, 어도비 없이’라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도 참여했는데,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 100장 정도를 추리고 가볍게 프린트해서 실로 묶어버리는 식의 작업을 했다. 24시간 뒤면 지워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피드에 올리는 사진 정도가 아니라 의도를 갖고 찍거나 엮은 사진들이 요새는 일단 너무 없다고 느낀다. 너무 없어서 많이 보고 싶다.

여명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다. 앱스는 지난 연말 인터뷰 특집을 발간할 계획이었다. 한 해 동안 주목했던 창작자들과 인터뷰를 나누는 특별 호를 진행하려 했는데, 준비 중에 2024년 12월 3일이 왔다. 그러면서 특별호를 미루고 ‘시국과 미술’, ‘정치와 미술’이라는 주제로 정규 7호를 준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우울함과 무력감을 마주하기도 했다. 시국 선언문을 쓰고 싶어도 미술계에는 그걸 함께 작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의 장이 완전히 부재한다고 느껴졌고, 사람들과도 어떤 정치적인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더덤이의 〈비상 계엄〉과 〈토요일의 여자들〉의 이미지를 유심히 살폈다. 우선 당일부터 이야기해 보자. 그날 나는 친구와 집에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여의도에 사람들이 엄청 모이고 있다고 하고, 헬기가 두두두두 하면서 집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여의도 라이브 방송을 계속 지켜봤다. 잠을 못 잤다. 원래 라이브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집에서 잘 나가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일이 생기면 직접 가기보다 라이브로 지켜보게 되더라. 그러면서 참사나 재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꼭지가 될 수 있는 사건들이 항상 이미지로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그 일에 대해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디 가서 누구랑 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그나마 앱스 친구들과 자주 얘기를 나눴다. 두 분은 당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그날부터 〈비상 계엄〉과 〈토요일의 여자들〉에 이르기까지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대담하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배경과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예지 나는 비상 계엄 몇 시간 전에 사진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날 한 학생의 사진 과제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후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문득 아버지가 광주 출신인 걸 알게 됐고, 알고 보니 아버지가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두 번째 줄이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몸에 집어넣은 채로 집에 가고 있었는데 비상 계엄이 터진 거다.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당시 상황이 생생하진 않았을 것 같다. 국회에 나가지 않기가 어렵더라.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육안으로 계속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놓자 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선 국회 앞으로 갔다.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게임 세계관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군사시설이라고 보일 만한 이미지, 예전에 봤던 것만 같은 이미지, 동시에 되게 낯선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혼란스러웠다. 그날은 사실 아무것도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일을 봤고, 뭘 겪었다고 소회를 남기는 것도 이상하고… 모든 게 무력해지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일련의 과정들을 소처럼 되새김질하면서 계속 시위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사진이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실마리가 보였다. 사실 촛불 시위 때는 나는 이미지 자체를 아예 만들지 않았다. 그때는 ‘사진을 찍고 싶다’, ‘사진의 실마리가 무엇이다’라는 상태로 도달을 아예 못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뭐가 뒤집어지고 있긴 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하는 비율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걸 느꼈고, 투쟁의 방식이 교체되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가시화돼서 교체되는 경우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제 우리나라는 문화 싸움을 하는 나라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건 기록으로 방점을 찍어놔야 하는 이슈다. 사안이 심각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에서 국민으로 살면서 자신의 연장으로 기록해야 한다’라고 느꼈다. 그동안 리서치를 하면서 여성 운동사 기록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도 성노동자들이 염을 하고 방직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엄청난 투쟁을 했지만, 엘리트들이나 계급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기록이 많이 되는 세대였으니까. 노동자들의 통탄도 깊다는 걸 알고 있고. 문화라는 것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흐르는 거니까, 〈토요일의 여자들〉에서 수평으로서의 기록을 남겨 보고 싶었다. 여자들에게 하찮은 카메라를 보내봐야겠더라. 내가 가진 도구는 카메라니까. 집에서 육아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낼까, 어쨌든 이 사람은 광장에 나올 수가 없지 않나. 항상 욕먹는 위치에 있었던 지뢰계도 섭외했다. 그리고 문화의 최전선에 있다고 느끼는 샤이니 팬덤에도 연락을 해봤다. 전선에 있는 구석구석의 사람들한테 카메라를 보내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로부터 수집된 이미지와 글을 모아서 펼쳐봤는데, 수평이었다. ‘우리 투쟁을 했고 이겼어’ 이런 느낌을 주기보다 개운하지 않은 소회들이 느껴졌다. 승리의 역사보다는 이런 곤궁함들이 모여서 연대가 기능한다고 생각했다.

(이미지9, 10) 더미덤피이미지 기획, 〈토요일의 여자들〉 촬영: 김미카

어진 비상 계엄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비현실적인 기분이다. 나는 그때 집 근처 술집에서 취해 있었다. 그러다 화장실을 갔다 왔더니 월드컵 때처럼 술집 TV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서서 화면을 보는 거다. “뭐야 왜” 하고 봤는데 갑자기 계엄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TV를 보던 사람들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벌어졌다는 감각이 들지 않으니 계속 취해 가면서 새벽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아침이 됐다. 사실 그날 아침 《Instruction》이라는 전시 기획안 초고를 작가들에게 전송했었다. 그 전시는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질문 “침략당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나?”에서 출발한 전시다. 그때 2023년 경계경보 오발령 사건이 떠올랐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좀비 세상이 오면 제일 먼저 물리고 그냥 좀비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발령 사건 아침에 패닉이 오더라. 집 안에 챙길 수 있는 생수나 건전지 같은 자원을 챙겨서 피난하려고 했다. 엄청난 생존 본능이 발생한 거다. 그때 처음으로 ‘인간의 생존 본능이라는 건 엄청나게 강력한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그 감각이 점점 희석되면서 침략 감각이라는 것이 관념적으로 승화되어 간다고 느낄 때쯤에 전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시 기획서를 보낸 날 계엄이 터졌다. 같이 전시 준비하는 작가님이 “국가가 나를 공적으로 침략한다”라고 말했는데 되게 공감이 됐다. 다음 날 아침이 돼서는 현장에 다녀온 사람들이 업로드하는 글들을 예지와 공유하고, 무엇을 어떻게 모을지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비상 계엄〉을 업로드 했고, 두 번째 집회를 앞두고는 예지가 〈토요일의 여자들〉 기획을 설명하면서 한 꼭지를 맡아주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말을 써보겠다고 했고. 일단 그 기획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런 기획과 조직은 예지가 할 수 있는 거였지, 예지가 해야지’ 이런 생각을 했다.

여명 전쟁이나 재앙이나 아포칼립스의 상황이 일어날 때 그게 갑자기 ‘시작!’하고 시작되는 게 아니라 얼떨결에 시작되겠구나 싶었다. 지금 전쟁하는 수많은 곳이 있지 않나. 팔레스타인이나 미얀마, 아이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전쟁들이 이전까지는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먼 이야기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그곳에 가본 게 아니니까. 이미지로만 접하다 보니 감각이 밀봉돼 있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서 갑자기 발생하는 침략이 아니라 조용히 엄습하는 침략의 감각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토요일에 여자들」 프로젝트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 보자. 프로젝트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얼추 말씀해 주셨다. 이 프로젝트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토요일에 여자들」이 개인 차원의 삶과 거기서 더 확장된, 국가 일원으로서의 삶, 사회적인 삶의 모습을 교차해 놓는 방법이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교차하면서 맥락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개인의 시선을 통해 정치적인 상황을 맥락 안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육아하는 여성이거나 지뢰계거나 등등 여성 관객이 접근하고 반응하기 쉬운 인물들이기도 하다. 아까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대해 신속하게 몰입할 수 없는 이유로 내가 그 상황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서 ‘이게 이런 거구나’라는 아주 약간의 힌트만으로도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이런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사진들, 더 많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다. 주체로서라기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가 볼 수 있는 무대 위에 올라와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었던 것 같고. 정리하자면, 〈토요일의 여자들〉에서 함께한 이들과 그들이 촬영한 사진들에 대해 편집인으로서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어진 예지에게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듣자마자 아글라야 페터라니의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가 떠올랐다. 그 책을 다시 뒤져보면 뭔가 쓸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사진 매체나 기획 자체에 대해서는 예지가 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기획에 대한 설명만 듣고 사진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를 썼다. ‘사진을 보지 않은 상태로 사진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건 어떤 문예적인 시도 안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시인도 소설도 작가도 아닌데 무엇을 시도해 볼 수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나는 일기 쓰는 사람이니까, 일기 쓰듯이 글을 써보자’ 싶어서 써 내려갔다. 글에서 여성 작가만을 인용하려던 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페터라니의 글과 접속시킬 만한 글을 고민했는데, 케네스 골드스미스의 『문예 비창작』과 시몬 베유의 말 중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페터라니와 시몬 베유를 접속시키면서 글을 완성했다. 완성하고 보니, 글이 ‘보편 선’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 안에서 동어 반복적인 글 같았다. 그러다 예지와 원고를 교환했는데 글에서 더 여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미새처럼 굴어도 되겠다는 확신. 확신을 넘어서 의지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여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사진들이지 않나.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사진 자체의 표면과 정체성을 은근슬쩍 가려두거나 뒤로 배치해 두는 방식이 아니라 완전히 전면에 드러내고 앞세우는 방식. 그런 지점이 독자에게도 보일 수 있게끔 발행되길 바랐다.

(이미지11) 더미덤피이미지 기획, 〈토요일의 여자들〉 촬영: 강모래

예지 나는 SNS의 ‘이미지 플로우’가 흥미롭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떤 이미지들이 범람하고 있는지 꼭 체크를 하는 편이다. 〈비상 계엄〉을 만들 때 흥미로웠던 점은 상업 작가, 패션 쪽의 사진가들이 현장으로 뛰쳐나갔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흑인 운동이 일어났을 때 봤던 장면이었다. 흑인 패션 블로거들의 피드가 갑자기 투쟁하는 사진으로 확 바뀌는 걸 목격했었다. 홍콩 민주화 운동 때도 벚꽃 찍던 블로거들이 갑자기 민주화 운동을 찍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피드로 볼 수 있는 이미지 각성의 상태라고 느꼈는데, 한국의 경우는 이번 국회였다. 그래서 국회 앞에서부터 사진을 모아보려 했다. 〈비상 계엄〉을 발행한 시기 느낀 건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남자-카메라가 많다는 거였다. 배척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 안에서 즉각적인 여성의 이미지도 보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확실한 기획이 붙잡아 줘야겠다 싶었다. ‘정말 이번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지에서조차도.’고 생각했다. 편집하면서 느낀 건, 정말 다 사진을 엉망진창으로 찍더라. 그게 너무 좋았다. 사진이 다 흔들렸는데, 위급해서 흔들린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현장에서 들떠 있어서 그런 거 같았다. 어떤 면에서 자기 확신처럼 보였고. 묘하게 못생긴 사진들이 너무 좋고 완벽했다. 내가 원하던, 유머러스까지 한 기록물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과거에 내뱉은 말을 수습하는 자기반성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이를테면, 〈비상 계엄〉과 〈토요일의 여자들〉에서 내 글은 예전에 광주에서 만난 여성 노동자와의 이야기와 지금의 남태령에서의 연대를 잇는 시도였다. 나는 사진하는 사람이라서 뭔가를 보고 기록했는데 그것들이 잠들어 있으면 혼나는 기분이 든다. 책임지고 싶은 장면들이 있는 거다. 이번에는 광주에서 만났던 여성 노동자의 눈빛을 책임지고 싶었다. 그분은 노동운동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치이고 힘들어하셨다. 그 광장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생생하게 들려주셨는데, 이제 광장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전하고 싶었다.

여명 인스타그램 이미지 플로우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나도 인스타그램 형식을 되게 좋아한다. 각자 인스타에서 추구하는 인격이 있지 않나. (참고로 나는 미친 시인 이미지를 추구한다.) 내가 과몰입해서 이런 감정이 드는 걸 수도 있는데, 인플루언서 중에 마치 이 현실 세계에 계엄이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꾸며진 일상을 찍어서 업로드하는 사람들 있다. 좋아했던 인플루언서가 현 상황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좀 식었다. 그리고 뭔가 다들 ‘소소한 일상’, ‘일상으로 돌아가길’ 이런 말들을 하는데, 사실 일상이라는 건 엄청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내가 이런 일상을 가지고 싶다’라는 상상과 욕망이 엄청나게 가미된 것들이고, 사진이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기록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걸 이번 일을 통해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사진은 과거에 관여하는 매체라기보다 미래에 관여하는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라는 건 과거를 현재로 다시 끌어와서 저장하고 다시 씹어서 내가 원하는 현재로 재구성하는 매체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진이라는 매체가 여성에게 익숙한 매체라는 점도 흥미롭다. 여성들이 자신을 이미지로 대변하는 데에 많이 예민해지기도 했고. 또 우프(W/O.F)를 중심으로 동시대 한국에서 사진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기도 하다. 이 바탕에는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싸이월드 같은 SNS를 통해서 여성들이 이미지로 자기 자신을 대변하는 데 굉장히 예민해졌고, 사진 자체가 여성에게 익숙한 매체가 된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진 님이 일기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일기도 사실 가장 작은 단위의 SNS 아닌가. 나 자신과만 하는 SNS. 드라마 〈안나〉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한다’라는 내용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우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하냐에 있어서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토요일의 여자들〉을 통해서 느끼게 됐다. 〈토요일의 여자들〉은 개인적인 차원, 미술 담론적인 차원, 그리고 정치적인 상황이라는 세 차원의 생각을 겹쳐보면서 복잡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프로젝트였다고 단평을 남겨 본다. 남은 특집이 있을까?

예지 우리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타입들이다. 구체적인 후속은 아직 없다. 그래도 안테나는 꺼놓지 않고 있으면서 빠르게 움직이려고 한다. 지금은 다시 사진 매체로 돌아와서 사진 찍는 젊은 여성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진 회신을 기다리는 기획이 있다. 다른 일들을 조직하다 보면 그때그때 발생하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무언갈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율 〈토요일의 여자들〉에 대해 들었던 피드백이 있나? 사진이 업로드된 이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전해 들은 바가 있다면 공유를 부탁한다.

어진 “잘 봤어, 좋더라.” 정도? 구체적인 피드백은 못 들었다. 발행하고 주변 트위터리안한테 홍보를 부탁해 보자 해서 비평가 이여로 님께 부탁했다.

예지 더덤이를 하면서 피드백을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고요한 바다 안에서 할 일을 하는 느낌으로 해왔다. 이전에 기획한 황선미 작가 퍼포먼스에 대해서 권시우 비평가가 글을 써주신 것 외에 우리 프로젝트가 활발히 얘기되는 일은 없었다. 특히 시국을 다룰 때 사람들이 말을 얹기를 더 어려워하더라. 좋은 프로젝트라는 말들은 전해 받지만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공유해주시는 건 드물다. 더덤이 자체가 담론이 부족해서 시작한 일이라, 더 활발한 담론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올해는 오프라인 행사나 토크 같은 채널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명 비슷한 생각이다. 미술계가 돌아가는 순환의 구조라고 해야 할까?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평가가 ‘있다’는 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활동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인 틀이 많이 없고. 기존 잡지들이 작은 전시들이나 시작하는 작가들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는 거다. 그래서 단발성 행위로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활동이 중요하고,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더덤이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좋아할 것 같았고. 마지막 질문이다. 두 분이 개별적으로 홍보하고 싶은 것이 있나? 홍보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진 말씀드렸듯 “침략당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나”라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 대화들로 전시 《Instruction》 준비 중이다. 두 명의 여성 감독과 준비 중인데, 한 사람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프로덕션을 하고 있고 한 사람은 자체 제작을 하는 편이라서 제작 방식에 있어서나 침략을 생각하는 방식, 수치를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 대비되는 시선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더덤이를 통해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예지 나는 더덤이를 운영하기 위해 막걸리집을 하고 있다. 막걸리집이 비상 계엄 이후로 정말 힘들어졌다. 연말만 보고 달려왔는데 씁쓸해서, 막걸리집을 홍보하고 싶다.

여명 막걸리집의 구체적인 이름과 장소를 밝혀 주셔야.

예지 ‘막걸리바 꿍꿍’이다. 금천구청역 앞에서 서서울미술관 개관을 기다리며 무르익어 가고 있다. 작가로서는, 작업보다는 리서치하고 책 읽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사진을 하면서 페미니즘 의제 때 ‘여성’으로서 각성이 일어났었다. 또 ‘나’라는 각성도 있었던 것 같고, 이번에는 ‘군중’이라는 각성이 일어났다. 군중의 감각이 내 안에서 계속 깨어있으면 했는데, 그런 면에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민중들의 이미지』가 힘이 됐다. 이미지적으로는 디디-위베르만의 책이 도움이 됐다면, 각성의 척추가 되어준 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였다. 그래서 이런 이미지와 담론을 이어 나가는 작가이자 편집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막걸리집을 출근할 예정이다.

여명 긴 시간 고생해 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