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답하는 사람: 이보름, 이솜이, 질문하는 사람: 김호원, 기록하는 사람: 유진영

🥠는 ‘까 봐야 안다’를 슬로건으로 하는 인터뷰 코너다. 인터뷰의 형식을 경유하지만 특별한 목적지는 없기 때문에, 대화의 방향은 그때그때의 포춘(fortune)에 맡긴다.

이보름은 중단된 서사에 닻을 내려 이야기를 상상하고 다시 시작한다. 전시, 실험문학, 퍼포먼스, 워크샵 등 다양한 형식의 협업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엮는다.
이솜이는 어떤 것을 상상하고 전시, 프로젝트, 책 등으로 실행하며 구체화한다.

솜이 그렇다. 퍼폼에서 진행했던 PCS는 2021년부로 마무리 짓고, 2022년부터 바로 그 내용을 잇고 확장해서 보름 님과 POC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은 별도 기금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POC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호원 POC의 출발점이 된 PCS에 대해서 조금 더 질문드려보고 싶다. ‘가상’의 ‘퍼포먼스’ 수집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 퍼포먼스와 시스템도 한편으로는 실체가 없는, 무형의 어떤 것처럼 느껴지는데, 거기에 어떤 이유로 가상성까지 덧붙여지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POC의 소개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개별 작품별 ‘연구-수집-소장-반출-전시’의 과정을 작가, 연구·기획자가 함께 시뮬레이션한다.” 가상의 수집 시스템에서 그 ‘가상’이 앞서 인용한 소개문에서의 ‘시뮬레이션’과 관련된 것인가? 일종의 사고 실험과 같이 말이다.

솜이 호원 님께서도 말씀해 주셨듯이 소장품관리시스템이라는 게 어떤 관점에서는 실체가 없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이는 미술관의 소장품관리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소장품관리시스템은 물리적인 공간이 있는 수장고가 아니라 언어만을 통해서 구축된다는 점에서 가상성의 특징이 더 드러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스템 안에서 작품이 기술되는 방식에 따라 작품이 묻힐 수도 있고 시스템에 등록된 정보에 따라 전시의 구현 방식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실제를 구현하는 정보이기도 하다.

2021년 1월, 시민큐레이터 SeMA 컬렉션 기획전의 기획자로 《피어서(piercer)》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외부 기획자에게 미술관의 소장품관리시스템 접근 권한을 주고, 소장품 내의 작품을 보며 소장품 기획전을 만들 수 있었던 흥미로운 지원사업이었다. 시스템에 있는 정보들을 탐색하며 실제로 보지 못한 작품들을 내가 구현할 전시에 맞춰 시뮬레이션하는 연습이 반복되었다. 설치매뉴얼, 작가 노트 등의 자료, 수집 정보 등 시스템에 있는 정보를 빌어 전시의 방식을 예측하고 구체화하는 사고 실험이었다. 사실 어느 전시든 물리적으로 구현되기 전에는 사고 실험의 연속이기도 하다.

한편, 소장품관리시스템을 몇 개월간 직접 사용해 보면서 시스템 내의 5천 점이 넘는 작품 중에서 내가 원하는 내용이나 형식의 작품을 골라내기 위해서 어떤 기준으로 검색해야 하는지 다양한 경로의 검색을 시도했었다. 처음에는 내용과 관련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검색하다 나중에는 어떠한 검색 기준도 없이 작품이 반입된 시간순으로 보기도 했다. 시스템을 사용할수록 수집된 작품들이 기존 시스템의 분류 체계나 기술 지침 같은 형식과 언어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시스템이 담기 편리한 물질 기반의 작품들 위주로 소장품관리시스템의 형식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시스템과 충돌한 채로 얹히거나 욱여넣어지면서 작품의 성격까지 변이하는 지점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웹의 가상성을 빌리고 구체적인 사고 실험을 연습해, 기존의 시스템에서 충돌 작용이 생겼던 작품들을 PCS에 담아 보면 어떨지 생각했다. 퍼포먼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올렸다. 사라지는 것이 특징인 퍼포먼스를 소장품으로 관리한다는 전제하에 필요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어떤 대안의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였다기보다는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전시할 때의 사고 실험을 아주 구체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장품관리시스템에 작품을 등록하는 기존의 방식보다 역으로 작품들을 수집한 후 시스템의 세부적인 구조를 계속 바꾸는 순서로 PCS를 기획해 나갔다. 구체적인 하나의 사례로부터 시작해 여러 요소를 모았을 때 어떠한 구조가 필요하고 가능할지 질문한 후, 이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며 구체화했다. 다시 말해 PCS는 분류 체계 등을 먼저 갖추고 나서 이에 맞는 작품을 선정한 것이 아니라, 개별 작품들을 모아 본 다음에 이들을 묶고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었다. 우리 둘 이외 권태현, 김지율, 맹나현, 용선미, 이민주, 최소연, 여덟 명의 연구자가 모여 총 31점의 개별 작품 연구를 진행했다. 각 연구자가 작가들과 함께 퍼포먼스 작품을 연구하면서 시스템을 구성할 언어들을 제안했고, 이를 수집하고 분류해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작품 연구가 완료된 후에 시스템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호원 ’충돌’이라는 단어가 중요하게 들렸다. 충돌은 마냥 피해야 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또 이미 보았던 것도 다르게 볼 수 있게 할 수 있다. 소장품관리시스템의 특정 작동 방식이 퍼포먼스라는 매체랑 충돌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또 PCS가 기존 뮤지엄의 소장품관리시스템이랑 충돌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PCS가 다른 소장품관리시스템으로부터 차별되는 지점을 간략히 설명해 줄 수 있나?

보름 연구자마다 퍼포먼스에 관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또 각자의 관점에 따라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에 31개 작품에 관한 아주 다양한 정보가 모였다. 작성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이를 어떻게 보여줄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라, 개별 작품이 갖고 있는 특성이 디테일하게 반영된 점이 PCS의 차별점인 것 같다.

솜이 작품의 기본 정보로 어떤 내용들을 취합할지에 대해서는 시작 단계에서 다 같이 논의해서 결정했는데,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자분이나 작가분들이 시스템에 필요한 언어나 기능들을 제시해 주시기도 하셨다. 추가되는 정보들에 따라 시스템은 계속해서 변화했다.

보름 그렇다. 연구자와 작가 간 활발한 상호작용이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작가님들한테 일차적으로 작가 이름이나 작품 제목, 제작 연도 등의 기본 정보를 드리고 자유로이 정보를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셨다. 그리고 연구자마다 퍼포먼스 소장과 관련하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을 던지는 ‘PCS 제안’이라는 항목이 있다. 예를 들어 ‘지속 방식’이나 ‘소장처와의 관계’와 같은 것들이다. 다른 항목들과 달리 주관적이고 모호하지만, 작품의 내재적 의의와 연관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퍼포먼스를 소장하는 행위를 관통하는 것이라, 연구자와 작가의 대화가 실천되는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호원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기존의 미술관 소장품관리시스템에 가장 도전적으로 느껴졌던 작품이 있었나?

보름 나와 솜이 님이 공동으로 연구했던 신민 작가님의 작품 〈신 노동 시리즈-VOW 라디오〉(2021, 미정, 이하 VOW 라디오)를 소개하고 싶다. 2021년 신민 작가님이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에서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송출한 해적 방송 형식을 경유한 퍼포먼스이다. ‘VOW(Voice of the Worker)’는 ‘고객의 소리(VOC, Voice of the Customer)’를 들을 수만 있고 스스로 발화할 수 없는 서비스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님이 창안한 용어다. 이전에 만든 종이 조각들이 라디오의 사연자로 등장하고 작가님이 DJ가 되어 익명으로 수집한 사연을 각색하여 들려주는, 말 그대로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당시 우리는 〈VOW 라디오〉가 반출될 때마다 노동자의 사연이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 ‘재연’이 아니라 ‘재제작’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라디오 퍼포먼스라는 구조 자체가 수집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래서 퍼포먼스가 재제작될 때 고정된 것과 변화하는 항목을 정리한 가상 소장 제안서를 만들었다.

이 작품을 소개한 이유는 올해까지도 POC에서 작가님과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모집 공고를 보고 PCS에서 연구했던 작품을 제안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PCS의 가상 소장 제안서가 실제로 유효한 문서라기보다는 작품 같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고, 우리도 얼마큼 실효성이 있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다른 일을 하면서 새로운 협업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했던 거라 일단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 중 현실적으로 조정해 볼 수 있는 작업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VOW 라디오〉를 고르게 되었다.

작품의 중요한 맥락을 유지하면서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전시될 수 있는 형태를 상상했는데, 최종적으로 조각과 사운드를 결합한 설치 작품 〈신 노동 시리즈-VOW 라디오(민주)〉가 완성되었다. 라디오 사연의 당사자 중 한 명이자 미술계 노동자인 〈민주〉(2020)와 라디오 퍼포먼스를 고화질로 다시 녹음한 사운드(2023)로 구성된 작품이다. ‘민주’는 신민 작가님이 근무했던 프랜차이즈 기업의 직장 동료 이름이기도 하고 통상적인 미술관 운영 시간에 방문할 수 없는 또 다른 노동자를 전면화한다는 점에서 맥락상 적합했다. 여러 노동자를 대변하는 이 작품이 전시장 바깥의 공간, 예를 들면 화장실, 비상계단, 정수기 앞 등 노동자가 근무 중 남몰래 쉬는 공간에 설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의 사연과 작가님이 직접 부른 노동요가 녹음된 사운드가 재생되면서 마치 조각이 중얼거리는 것 같은 모습이 제법 웃길 것 같았다.

올해 작가님이 제안서를 바탕으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 《능수능란한 관종》에서 설치를 진행하셨다. 이 과정에서 작가님을 통해 실질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는데, 대체로 우리가 제안서와 함께 첨부한 설치 매뉴얼 속 작품 설치 장소와 사운드 송출 시간과 관련된 여러 옵션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이었다. 사운드를 분산된 장소에서 비정기적으로 송출하여 해적 방송처럼 설치하는 방식이 작품 관리 등 현실적인 이유로 조각과 함께 있는 버전으로만 축소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우리가 작성한 매뉴얼만으로 물리적인 설치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더 섬세하게 고려할 수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다. 사실 올해 이 부분을 반영하여 제안서를 발전시켜서 다시 공고에 넣었는데 떨어져서 많이 아쉽다. 작년에 사운드를 재녹음하면서 음악을 새로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솜이 나 역시 같은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PCS에서 소개한 〈보이스 오브 워커스〉는 라디오 퍼포먼스에서 최근의 조각-사운드 설치로 이어지게 된 작품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전시에 작품을 끼워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작품의 성질을 살리면서도 전시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잘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PCS로 작품 연구가 끝난 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작품의 전시 경험들과 그에 따른 업데이트들이 우리에겐 아주 소중하다.

호원 PCS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처음부터 지어나가는 것이었으니 보다 자유로운 측면도 있었겠지만, 또 동시에 실제 미술관에서 쓰이는 기존의 시스템에 적용해 보았을 때 생기는 빈틈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말씀해 주신 내용이 그런 부분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솜이 PCS를 만들고 나서 미술관 소장품 관련 부서에서 일 년 반 정도 일을 했다. 작품이 수집된 후 소장품관리시스템에 등록되고 다시 전시로 반출되는 과정을 보면서 PCS의 가상 시스템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PCS를 통해 실행했던 사고 실험이 무척 구체적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작품의 수집 논의 단계에서 개별 작품이 어떤 가치가 있고 왜 컬렉션에 추가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그만큼이나 소장된 작품이 어떤 가변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전시 유형별 사례 조사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느낀다. 물론 이런 고민을 전개할 주체가 작품별로 미술관인지 또는 작가인지 모호할 수 있겠다.

어느 시스템이든 간에 구멍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PCS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예상 가능한 구멍을 찾아서 메우기보다는 작가가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PCS에서의 사고 실험을 아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몇 작품은 연구한 후 실제로 퍼포먼스를 실행하고, 다시 연구 결과를 수정하며 보완하기도 했다. 실제로 작가와 연구자가 함께 퍼포먼스를 실행하면서 연구와 재연의 조건들을 구체화한 박보마, 조은지 작가님의 사례도 있다(이미지 7, 8).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실제 연습들은 단순히 미래 전시의 구현을 넘어 작품 자체의 맥락을 아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연구가 되었다. 하나의 예시로, 이민진 작가님의 〈잃어버린 고리〉(2021, 미정)에서 퍼포머가 입는 의상 제작에 대해 치수나 재질 등을 기록하기보다 의상 제작을 의뢰했을 때 작가가 제시하고자 한 기능과 의미를 정리했다. 또한 퍼포머인 작가가 부재해 누군가에게 작품이 위임된다면 그가 어떠한 움직임에 특화되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했다(이미지 9). 이는 작품이 가진 모든 요소를 파악하기 위함보다는 작품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었음을 명확히 하고 싶다.

호원 소장품관리시스템이라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뿐만 아니라 미술관에서 ‘소장’이라는 역할과 그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게끔 하는 말씀이었다. 작가가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 자체를 소장품 데이터베이스에 담아내려는 노력이 인상적인데, 혹시 기대 관람자나 그들의 역할 또한 고려되었는지 궁금하다. 관람객 역시 퍼포먼스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지 않나?

보름 관객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작품이 몇 개 있긴 하다. 홍이현숙 작가님의 〈바다생물 다라니 집체 낭독〉(2021-, 연구자 최소연)은 작가님의 표현을 빌자면 ‘집체(集體) 퍼포먼스’ 작업인데, PCS에 올라와 있는 퍼포먼스를 위한 도구들(바다생물 이름 카드, 사운드, 매뉴얼)을 활용해 모니터 앞의 관객 혹은 유저의 내외적 움직임을 발생시키는 경험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박관우 작가님의 〈늑대와 함께 춤을〉(2021, 미정)은 관객이 작가로부터 상황을 위임받은 퍼포머와 1대 1로 10분 간 마주하는 퍼포먼스로 작가님이 퍼포먼스 실황을 기록할 계획이 없다고 말씀해 주셨다. 공간 안에서 어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기억을 작품의 증언으로써 수집하는 기록 방식을 시도했는데, 참여자 44명과 퍼포머 2명을 인터뷰하여 코멘트를 따고 내용을 재구성하였다. 이처럼 퍼포먼스 현장에서 작가와 관객의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관객이 퍼포먼스의 주체적인 참여자인 경우에만 연구에서 고려되었다.

호원 앞서 퍼포먼스의 관객으로서 PCS 유저를 언급해 주셨는데, PCS 유저를 퍼포먼스 관람객과 동일한 선상에서 고려한 것인가?

보름 PCS를 사용할 유저층이 현장에 있는 미술 관계자나 연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PCS는 글이 굉장히 많다. 이미지보다 글이 더 많다. 공식적으로 배포되는 스틸 사진이 퍼포먼스와 같은 시간 기반 작품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글로 작품을 상상하게 하고 작가의 태도와 작품의 내재적 의미 등에 중점을 두고 최대한 자세히 풀어내려 노력했다. PCS에 썸네일이 없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방대한 양의 글이 진입장벽과 피로도를 높일 수 있겠지만,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실무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솜이 PCS를 작품의 수집과 소장에 관한 연구 결과로만 보는 것에는 오해와 아쉬움 있는 것 같다. 2021년 PCS를 처음 선보일 당시 우리가 더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진짜 소장을 논의하기보다는 수집과 소장 시스템이라는 조건을 통해 작가와 작품을 더 많이 이해해 보고 가늠해 보는 일, 연구와 전시를 위한 구체적인 사고 실험을 도울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에 초점이 있었음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호원 그런 부분은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미처 고려하지 못할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은데, 이러한 노력이 작가와 연구자 그리고 기획자가 밀접하게 협업 관계를 맺게 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마무리 질문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싶다. 개인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어도 좋고, POC의 향후 활동 계획도 궁금하다.

보름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PCS에서 수집했던 김혜연의 영상 〈숨만 쉬는 방〉(2020)을 《의향서 Letter of Intent : 》에서 1:1 퍼포먼스 〈숨만 쉬는 방〉(2024)로 꺼내 놓는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에는 가족 간의 사적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재연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지만, 가족을 우정의 관계로 재해석하면서 퍼포먼스 활성화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다. 지시문 속 ‘음성이나 문자 언어가 아닌 종이의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대화하기’를 유지하면서도, 작품이 새로운 맥락에 놓이게 되면서 다른 몸으로 번역된 것이다. 퍼포먼스는 세운상가에서 발견한 빈 의자에 간이 테이블을 펼쳐 일시적인 공간 점유와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매번 다른 장소와 다른 지금-순간에 수행하면서 퍼포먼스라는 사건을 초과하는 순간을 만들고자 했다.

솜이 님 그리고 손현선, 홍이현숙 작가님과 함께 한 홍이현숙 작가님의 비평집이 12월에 발간될 예정이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초연한 〈12m 아래 종(種)들의 스펙터클〉(2022)이라는 제목의 어둠 속에서 많은 몸들이 모여 만드는 집체 퍼포먼스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 경험을 기반으로 당시 참여자들끼리 몸에 저장된 기억을 길어 올리며 사후적으로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메일을 주고받았다. 솜이 님과 메일 타래 앞뒤로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을 붙여, 해당 글을 읽는 독자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퍼포먼스를 가상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퍼포먼스가 초연과 다른 형태로 재연될 수 있는지, 퍼포먼스가 종결된 이후 작가가 아닌 타인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지를 탐구할 수 있었다. POC가 작품의 전시를 예비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전시 이후의 시간으로까지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 감사한 기회였다.

또 우리는 각자 다른 동료들과 연구를 진행 중인데 이르면 내년에 책으로 엮을 예정이다. 나는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품 재료 및 기법에 관련된 연구 용역을 계기로 기존의 작품 캡션이 작품에 내장된 시간성이나 수행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 관해 연구 중이다. 솜이 님은 동일한 작품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반출되는지 유심히 살피면서 연구하고 있다.

솜이 POC는 궁극적으로 퍼포먼스 매체에서 더 나아가 모든 매체의 작품에서 전시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작품의 가변성과 비물질적 특성들을 탐색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작품들이 연구, 전시, 수집 등 다양한 상태로 순환하는 동안 각 상태에 얹혀지되 마냥 흡수되지 않도록, 그의 성질을 잘 유지할 수 있는 자료나 전시, 혹은 PCS와 같은 시스템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호원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나누어 주셔서 감사하다. 덕분에 퍼포먼스를 비롯한 시간성을 가진 작품의 소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POC로서 또 개별연구자로서 두 분의 향후 프로젝트를 기대하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