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here we are

정서재현

퍼포먼스는 당신과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시작된다.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었던 당신이 퍼포머인 내 앞에 있다는 것이 곧 퍼포먼스를 시작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다. 단순한 약속에서 출발하지만 퍼포먼스는 여러 질문을 낳는다. 만약 내 앞에 있는 당신이 자꾸 자리를 이동한다면 퍼포먼스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당신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내 앞에서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당신과 나의 자리에 소프트웨어가 끼어든다면? 지금 여기에 당신과 나라는 간결한 말 속에 숨겨 두었지만, 퍼포먼스의 주된 축 중 하나는 시간이다. 만약 퍼포먼스가 생애 전체에 이어진다면 그것은 삶과 구별될 수 없기에, 퍼포먼스는 언젠가는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 삶과 같이 시간과 타인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를 어떻게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볼 수 있는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인 퍼포먼스를 어떻게 전시하고, 소장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앱스는 이번 6호에서 퍼포먼스의 연약한 조건들을 들춰보고, 질문하며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들을 이야기한다.


김여명은 주의를 분산시키며 여러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야광의 ⟨Lick my heart⟩와 민혜인과 장영해의 ⟨블랙 마리아⟩를 두고 관객이 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맹점을 전제로 하는 퍼포먼스와 다중 시간선을 그려 본다. 김여명이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작품에서 출발했다면, 황재민은 소셜 미디어 시대에 주의가 산만한 퍼포먼스 관람 방식을 옹호하고,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의 현존을 지적한다. 김호원은 ‘라이브 코딩’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소개하며, 퍼포머와 관객 사이에 비인간 행위자 ‘컴퓨터’를 위치시킨다. 알고리즘의 실행과 인간의 감각이 교차하는 경험으로서 라이브 코딩은 알고리즘 시대 컴퓨터의 역할을 재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그런가 하면, 유진영과 🥠와 lwip는 퍼포먼스의 주요한 중심축인 시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진영은 퍼포먼스와 인간의 유한하고 무한한 시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퍼포먼스에는 한 사람의 변화하는 세계를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이 따름을 조안 조나스(Joan Jonas)의 시간에 비추어 밝힌다. 🥠에서는 가상의 수집 기관인 ‘Practice of Collection(POC)’을 운영하는 이솜이와 이보름을 만났다. 둘은 POC를 소개하며, 퍼포먼스를 소장하고 반출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일 수 있는지, 그 지평을 넓혀 준다. (lock with ink pen)에서 정다슬은 퍼포먼스는 없고 퍼포먼스의 부산물만을 전시하는 퍼포먼스 전시를 지적하며, 퍼포먼스를 어떻게 전시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번 6호에서 앱스 필진들은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살았던 시간을 당신께 말하기 위해 이 페이지 위에 머물렀다. 여름밤, 이 페이지에 눌러앉아 때로는 경쾌하게 자판을 손가락으로 튕기고, 그보다 오랜 시간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했다. 언어가 아닌 것들을 어떤 키를 눌러 말할 수 있을까 골몰했다. 스크린 너머의 당신이 이 페이지에 도착할 때면 더 이상 필진들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뛰어다니지 않고, 필진들은 더 이상 이 페이지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필진과 독자는 퍼포머와 관객과는 달리 항상 시간차를 두고 만나고, 필진이 아무리 섬세히 단어를 고르고 생각을 다듬었다고 하더라도 퍼포먼스에서 겪은 몸짓과 시간을 언어로 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이 페이지에 눈을 맞춘다면 우리가 본 몸짓과 살았던 시간이 어스름하게나마 당신의 눈 앞에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에 이번 호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