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하와의 대화

김호원

이안 하(b. 1997)는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이다. 그는 202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컬럼비아대학교 미술대학 석사 과정(MFA in Visual Arts, Columbia University School of the Arts)에 재학 중이다. 동양화 재료를 주요 기반으로 삼는 그의 회화는 여러 시공간이 중첩된 다차원의 공간적 환영을 만들어내며, 오늘날의 분절화된 정보와 과도한 시각적 자극을 탐구한다. 작가는 서울의 래빗앤타이거에서 개인전 《더 언캐니》(2022)와 뉴욕의 프래그먼트 갤러리(Fragment Gallery)에서 이인전 《Shifts and Echoes》(2023)를 개최하였으며, 왈락 아트 갤러리(Wallach Art Gallery, New York), 더블랑 갤러리(The Blanc Gallery, New York), 프레드릭 스니처 갤러리(Fredric Snitzer Gallery, Miami) 등에서 열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호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이안 뉴욕에서 작업하는 하승현이라고 한다. 이안 하(Ian Ha)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호원 최근 뉴욕의 프래그먼트 갤러리(Fragment Gallery)에서 Michelle Cho와 함께 개최한 2인전 《Shifts and Echoes》(2023)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뉴욕에서 개최한 해당 전시를 못 보았을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서, 어떤 작업을 출품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이안 성공적이었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하다. 2022년 미국에 온 이후부터 지난 가을 전시를 열게 되기까지, 회화라는 매체를 고민한 흔적들이 담긴 작품들을 전시했다. 개인적으로 내 작업 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전시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미지1) 이안 하, 〈Rosenquist’s flat tire〉(2023). 사진: Paul Rho. 작가 및 Fragment Gallery, New York 제공.

호원 무엇보다도 몇몇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변형(shaped) 캔버스의 사용이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변형 장지 패널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Rosenquist’s flat tire〉(2023)은 정형화된 사각을 벗어난 원형의 모양을, 직접적으로는 타이어 형태를 띠고 있다. 〈Lea〉(2023)도 장지 패널의 왼쪽 하단이 직선 대신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무리되어 직각을 한 일반 캔버스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프레임의 변형이 앞서 언급한 회화라는 매체를 고민한 결과 중 하나인가?


이안 그렇다. 변형 캔버스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받았던 미술 교육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는 것 같다. 당시 수업은 사절지 바탕의 소묘나 수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각이라는 포맷이 어떠한 강요로 느껴졌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에 대한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고, 학부에 진학하고 나서도 변형 캔버스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대학에 있는 동안은 그럴 여건이 딱히 안 되었던 것 같다.


호원 여건이 어떻게 안 되었나? 이를테면 실습 등을 할 조건이 안 되었던 건지, 혹은 교수나 동료의 압박 등이 있었던 것인지?


이안 물리적인 제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그런 제약이 덜한데, 한국에서는 안전에 관련된 학교 수칙이 더 엄격했던 탓인지 동양화과로서 다른 학과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변형 캔버스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 주었던 수업이 하나 있었는데, 2020년에 들었던 동양화과 전공과목 중 하나인 ‘벽화(매체 실험)’이다. 해당 수업은 프레스코화에 매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 전 직접 벽을 만드는 과정이 좋았고, 특히 이를 위해서 비교적 고정된, 전통적인 방법을 따라 작업을 진행해야 했던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회화가 식물이라면, 그 바탕이 되는 밑거름부터 다지는 기술을 배우는 것 같았다. 동시에 황토, 석회물 등의 재료를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조리법과 같은 기본적인 방식을 터득한 이후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다는 잠재력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이때 했던 실험들이 회화의 정형화된 포맷에서 벗어나 프레임의 자유를 추구하게 된 첫 단추였던 것 같다. 그 시기에 만들어진 〈cosmos〉(2021)는 프레스코화를 통해 회화의 틀이나 모양에 새로운 변화를 꾀하기 위한 초기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원 현재 석사 과정을 위해 재학 중인 컬럼비아대학교 미술대학(Columbia University School of the Arts)에서는 전공의 구분이 상당히 느슨하지 않나. 입학 시에 회화 전공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조각이나 퍼포먼스 같은 다른 전공의 수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목재나 금속 작업실 등을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것으로 안다.


이안 그렇다. 그래서 변형 캔버스는 미국에 오고 나서도 계속해서 실험을 해보고 싶었던 부분이었지만, 학기 중이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특히 변형된 패널 위에 배접을 시도해 본 적이 없으니, 나무가 뒤틀리거나 종이가 상하는 상황 등을 염려했었다. 그래서 올해 여름 방학 동안 계획적으로 변형 캔버스 작업을 만들었다.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이미지2) 이안 하, 〈Lea〉(2023). 작가 및 Fragment Gallery, New York 제공.

호원 전시에서 변형 캔버스 이외에도, 축척(scale) 혹은 비율(ratio)의 차이에 관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정확하게는 크기의 변주를 통한 놀이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Lea〉는 122 x 178 cm(48 x 70 in.) 크기의 회화와 20.3 x 27.5 cm(8 x 10.8 in.) 크기의 회화가 한 쌍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 속을 구성하는 이미지 역시 캔버스 전체에 걸쳐서 하나의 거대한 줄거리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 반면, 어떤 이미지는 그 줄거리를 구성하는 에피소드처럼 캔버스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양 산수화의 점경인물(點景人物)–흐드러지는 절경과 그 속에 아주 작게 그려진 인물의 관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 작품을 여러 축척, 다른 비율의 패널과 이미지로 구성하는 시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안 동양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산점 투시를 딱히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점은 항상 관심을 가져오던 주제이다. 동서양 미술사를 막론하고 회화의 시점에 대한 탐구는 계속 이어져 오지 않았나. 멀게는 19세기 정물화의 전통적인 선 원근법을 탈피하여 다 시점으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에는 회화를 비롯하여 포토콜라주 등으로 복수 시점을 구현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도 있다. 호크니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마티아스 바이셔(Matthias Weischer, 1973-)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1455)의 〈수태고지(Annunciation)〉(1443)를 다층적인 시각으로 오마주한 작업도 큰 영감을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작가들에 영향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회화를 통해 지속해 왔던 시점에 대한 실험이 나의 작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지3) 이안이 참조하는 이미지로 채워진 작업실 벽면.


호원 그러고 보니 이안의 작업과 스튜디오 벽면에 붙은 이미지 레퍼런스들이 호크니의 포토콜라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시점을 큰 주제로 탐구했던 작가들 이외에도 미국 정밀주의 회화의 큰 축을 차지했던 찰스 쉴러(Charles Sheeler, 1883-1965)나, 타이어 작품의 제목에 그 이름이 직접적으로 참조된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1933-2017) 등의 서양화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쉴러와 로젠퀴스트의 작품에서는 일종의 기계미학(machine aesthetic)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둘의 작품 소재로 기계적인 건축이나 부품, 특히 금속 재질의 것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캔버스와 유화 물감을 통해 금속을 표현했기 때문에 유광의 반사되는 표면을 잘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이안은 무광의 발색을 만들어내는 장지와 분채를 주로 사용하는데, 자동차 휠을 비롯하여 자전거 바퀴나 철조망 등을 그리면서 자신이 주로 쓰는 재료에 의한 한계를 느낀 적이 있는지?


이안 그러한 부분은 한계로 받아들이기보다 유머로 풀어내려고 했던 것 같다. 반짝이는 금속이 광택 없이 표현되고, 또 멀리서 보면 단단하고 무게감 있는 철제처럼 보이는 것이 가까이에서 보면 얇은 종이에 지나지 않고, 그런 아이러니함이 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재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원 이안이 작품에 어떤 유머를 담아내고자 한 탓일까, 혼종적이고 이질적인 이미지의 병치가 낯섦을 전하거나 충격 효과를 주기보다 어떤 서정성이나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장지에 분채라는 재료가 만들어내는 효과일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회화를 구성하는 여러 이미지가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짐작되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안 모두 내 주변에서 출발한 이미지다. 직접 경험한 공간들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예전에는 이 원본 이미지들을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했다면, 최근에는 그림이랑 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즉흥적이고, 감정에 진솔한 표현을 더 허용하는 것 같다. 이는 앞서 언급한 유머나 아이러니랑도 관련된다. 내 경험들은 늘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형태로만 회상될 때가 있는데, 선명한 기억과 파편화된 이미지의 공존을 한 화면에 담아내고 싶었다.


호원 최근에 작업하는 과정에서 회화와 더욱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한다고 한 부분이 흥미롭다. 회화와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이안 어느 순간부터 나의 작업에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내가 가져온 삶의 태도가 더 솔직하게 담기길 바랐다. 유년 시절의 기억들, 특히 외국에 있었던 경험들이 작업에 풍부하게 쓰이는데, 그런 점에서 내 회화가 일종의 포털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과거와 살아가는 현재가 맞물리고, 그와 관련된 생각들이 나열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때 당시 찍은 사진을 무조건적 충실하게 재현하기보다도, 이미지를 통해서 그 순간을 재방문했을 때 느끼는 것들을 그려내고 싶었다.


(이미지4) 이안이 분채를 빻기 위해 쓰는 막자와 막사자발.


호원 이안의 주변 환경은 어렸을 때 말고도 최근에 또 한 차례 변화를 겪었는데, 무엇보다도 작가 본인과 마찬가지로 이안의 작품도 한국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주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형성된 이안의 작업 세계가 미국에 와있지 않은가. 재료는 한국에서 공수해 오는가? 재료를 구하는 과정 자체가 작업의 설계나 진행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이안 내가 주로 쓰는 분채와 한지는 미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한국으로부터 재료를 공수하고 있다. 이 재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계속해서 한국으로부터 재료를 받아서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작업량을 미리 설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최근에는 회화와의 대화를 통해 즉흥적인 표현을 더 날 것으로 드러내고 싶어서 비용에 관한 부분은 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호원 회화의 베이스가 한국화인 탓에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유학을 고민할 때도 이런 부분도 미리 염두에 두었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을 무릅쓰고도 미국으로 유학을 와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이유나 계기가 있었나?


이안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던 시점에 어떤 혼란이 왔었다. ‘나의 작업의 장르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분류될 수 있을까?’ 내가 느끼기에 한국은 미술을 공부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장르 분류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어,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동양화나 서양화를 나눌 필요성을 못 느꼈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특히나 성장 과정과 주변 환경에서 다문화적인 것들을 많이 흡수한다고 느낀다. 그러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작업에도 드러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내 작업을 정해진 한 부류 또는 매체로 나누는 행위가 어쩌면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 온 이후로도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미국의 더 자유로운 미술 교육 시스템이 해답을 찾아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이미지5) 이안 하, 〈Grafted Star Park〉(2023) 중 일부. 작가 제공.

(이미지6) 이안의 판화 스터디.

호원 한국에서 공부하던 때부터 뉴욕에서 활동하는 지금까지 회화에 판화를 꾸준히 사용해 오지 않았나. 이안이 일찍부터 시도해 온 장르의 경계를 흔드는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판화는 동양 미술사와 서양 미술사 모두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기법이자 매체인데, 미국에 오기 전후로 판화 사용에 있어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안 작업을 하면서 특정 매체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매체를 내 회화 작업에 거부감없이 끌어들여 왔다. 그중 하나의 언어가 판화였다. 미국의 미술대학 환경이 더 자유롭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판화는 한국에서 더 자유롭게 작업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판화를 배울 때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유연한 자세로 접근했던 반면,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판화 기술과 방법론 그 자체를 더 고민하고 연구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컬럼비아대학교 부속 르로이니만갤러리(LeRoy Neiman Gallery)에서 일을 돕고 또 바로 옆에 있는 르로이니만판화센터(LeRoy Neiman Center for Print Studies)에서 판화 전문가(Master Printer)들이 작업하는 현장과 분위기를 보면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다. 그들은 공학 기술자에 가깝게 원칙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판화 작업을 진행했다. 이전에는 기술에 대한 강박이나 의무감이 없었다면, 이제는 기술적인 부분에 더욱 치중하고 또 관습적인 판화 형태의 틀을 깨기보다는 그것을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아직 고민하는 중이다.


(이미지7) 이안 하, 〈we didn’t mean to go to sea〉(2023). 사진: Paul Rho. 작가 제공.

(이미지8) 〈we didn’t mean to go to sea〉의 작업 과정과 스튜디오 바닥에 남은 홀치기 염색의 흔적. 작가 제공.

호원 현재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작업은 최근 전시에서 보여준 작업과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예를 들어 〈we didn’t mean to go to sea〉(2023) 같은 경우 마스킹 테이프가 회화 이미지의 일부로서 그려져 있고, 여백이 화면의 큰 부분을 차지해 이전작과 비교하여 미완성의 느낌을 준다. 새로운 작업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이안 이전의 작업은 보통 완성도 있는 구성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화면을 꼭 채우게끔 채색하며 완성했다. 동양 미술에서 언급되는 고졸미, 관용의 미, 여백의 미라는 설명 이외에는 빈 화면에 대한 마땅한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내 작업에서 여백의 당위성을 못 느꼈었기 때문에 그러한 채색 방식을 선호했다. 〈room for the bees〉(2021)가 이전 작업 중 거의 유일하게 화면 윗부분에 큰 여백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David Zwirner Gallery)에서 인상 깊게 본 토바 케두리(Toba Khedoori, 1964-)의 전시가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케두리의 작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여백이 관람자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해 준다고 느꼈다. 한편 그 시기는 학교 멘토 중 한 명인 로셸 파인스타인(Rochelle Feinstein, 1947-)으로부터 ‘작품을 언제 끝맺을지 고민하고 그 시점을 지나지 않도록 하라’는 피드백을 들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내 작업에 빈 화면을 남기는 것이 관람자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문이나 창문으로 기능할 수 있으니까. 어찌 되었든간 신작에 이렇게 여백을 남기는 것은 꽤 큰 결정이었다.


호원 파편화된 이미지와 즉흥적인 표현 사이를 더욱 여유롭게 거닐기 위해 마련한 틈 같은 것인가. 최근 본인이 회화와 대화를 더 시도하고 있다고 해서인지, 회화와 감상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또한 고려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안 그렇다. 한편으로는 단순하게 내 작업의 바탕이 캔버스가 아니라 장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백을 남겨두면 종이를 이루는 섬유가 더 잘 보이지 않나. 동시에 장지화의 스며드는 느낌, 이종상(1938-) 화백이 말씀하시는 시루떡같이 층층이 쌓이는 색들이 은은히 우러나오는 맛 또한 찾고 싶었다. 그래서 〈we didn’t mean to go to sea〉에는 구성에 여백을 포함하는 것 이외에도, 홀치기 염색 기법으로 발색 무늬를 만들어 넣었다. 이는 동양화의 종이기에 시도할 수 있는, 또 그렇기에 가능한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동양화의 생지, 특히 장지는 장섬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구겨진다고 하더라도 물을 뿌리면 다시 탄탄하게 재생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작들은 한지의 우수한 면을 드러내는 접근법을 취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다른 최근 작업 〈daydream〉(2023)에서도 내러티브한 공간을 만들면서 표면에 종이의 물성을 노출하고자 했다.


호원 판화의 사용과 여백의 도입, 그리고 홀치기 염색 시도 모두 앞서 이야기한 ‘이안 하 작업의 장르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회화의 확장과 관련하여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고 싶은지?


이안 회화가 단순히 벽에 걸리는 이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삼차원적인 오브젝트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요즘 조각을 회화처럼 접근하는 작가들의 작업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호원 슬슬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이번 겨울에 예정된 신나는 계획이 있나?


이안 곧 뉴욕주에 있는 작은 마을로 판화 레지던시를 다녀올 예정이다. 판화라는 제한적인 매체에 나를 가두어놓을 수 있어서 무척 기대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구체적으로 있기보다 계속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하고 싶다. 연습생의 모드로 계속 신선한 무언가를 찾고자 하고, 그게 결국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호원 이안의 신작을 볼 때 판화 부분을 더욱 눈여겨 볼 수 있도록 하겠다. 시간 내주셔서, 또 진솔한 생각 나누어 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