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태

대답하는 사람: 임승태, 질문하는 사람: 정서재현, 기록하는 사람: 유진영

🥠는 ‘까 봐야 안다’를 슬로건으로 하는 인터뷰 코너다. 인터뷰의 형식을 경유하지만 특별한 목적지는 없기 때문에, 대화의 방향은 그때그때의 포춘(fortune)에 맡긴다.

임승태 연극 평론과 드라마투르기 작업을 오가며 말과 몸이 만나는 특별한 시공간을 탐구한다.

재현 이번 인터뷰를 맡게 된 앱스의 정서재현이다. 기록은 유진영 님이 도와주시기로 하였다. 이번 호에서 앱스는 예술과 접근성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최근 들어 예술계에서 접근성이 주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앱스는 주로 시각예술과 시각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왔는데, 연극에서 접근성 문제를 그림자 수어 통역에 초점을 맞추어 발표하신 내용이 흥미로워 임승태 선생님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승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연극에 대해서 강의하고 글을 쓰고, 가끔 연극을 만들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주로 지금까지 언어 간의 변환, 혹은 문화간 변환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분야를 연구해 왔다. 작가의 언어가 배우의 신체를 통해서 무대 위에 구현되는 것도 그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외국 작품들을 한국에서 공연할 때, 소위 말하는 번역극에 흥미를 느껴서 연구도 하고, 실제로 그런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재현 드라마투르그, 평론가, 강의자, 연구자 등 다양한 역할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할의 구분과 무관하게 가장 재미있게 했던 작업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승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어떤 형태로든 작품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드라마트루그로서 예술가들과 같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고, 공연을 하게 되면 관객들과 이야기한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스페인 작가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 1965-)의 〈비평가〉라는 작품에 제가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4년이 지난 지금도 공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어서 한 편으로는 감사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즐겁다. 지금 그 공연 자료집을 극단에서 만들고 있는데 이 작업 역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재현 독자들은 ‘드라마투르그’ 라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을 것 같다. 어떠한 작업을 하는지 소개 부탁드린다.

승태 ‘드라마투르그’라는 용어에 익숙한 사람은 아마 드라마투르그 외에는 없지 않을까. 아무래도 말이 어려워 그런 것 같다. 먼저 말뜻을 보자면 ‘극작술’이라는 독일어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라는 말이 있는데, 거기서 ‘드라마투르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드라마투르그(dramaturg)라고 하고, 국내에서는 영어식 발음을 써서 드라마터그, 더 줄여서 터그(turg) 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저도 늘 드라마투르그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기 때문에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싶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어떤 이야기가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관객과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작업자들, 예를 들어 배우, 연출, 무대 디자이너, 그리고 나아가서 기획하고 홍보하는 사람들, 이렇게 연극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역할이 드라마투르그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는 넓은 의미로 컨설턴트 같은 역할이라고도 생각한다. 예전에 제가 배웠던 선생님들은 작품의 문학적인 측면에 관여하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문헌 감독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셨다. 그런데 단순히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리하느냐, 혹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내부 비평가로서 작품을 보고, 연출과 배우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작업 외에도 그 이후에 벌어지는 과정들, 관객과 공연이 만났을 때 대화의 초점, 담론의 초점을 연결해 주는 일련의 작업이 다 드라마투르그가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드라마투르그들은 대본을 쓰기도 하고, 외국작품은 번역을 하기도 한다. 또, 공연 준비 과정에서 생산된 텍스트를 모아서 프로그램 북으로 편집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공연에서 보여줬던 것들을 말로 설명하기도 하고, 관객들의 의견을 듣고, 그걸 프로덕션 내부로 전달하기도 한다. 기획, 홍보팀에서 보도자료를 만들 때 필요한 문구에 같이 관여하기도 한다. 저 같은 경우에는 사실상 텍스트가 들어가는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편이고, 텍스트 외에도 공연의 기록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기도 한다. 드라마투르그에 대해 소개하려고 하면 이렇게 말이 길어진다. 정리하자면 공연에 필요한 모든 일들에 함께 답을 찾아가는 그런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재현 컨설턴트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텍스트를 해석하고 어떻게 텍스트를 연기로, 연극의 기술로 만나게 할지,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번역가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만나게 할 것인가 이러한 점을 사람들과 고민한다는 점에서.

승태 그렇다. 대본이라는 활자화된 텍스트를 무대로 옮기는 작업 역시 번역이라는 개념에 매우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그때도 번역이 필요하고 더 직접적으로는 외국어로 된 작품을 우리말로 옮길 때, 그럴 때도 번역이 필요하다. 실제로 제가 2년 전부터 하고 있는 작업도 직접 극본을 번역하고 그걸 공연화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번역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할 수 있다.

재현 드라마투르그는 여러 일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설명해 주셨는데, 위에서 말씀해 주신 〈비평가〉에서 추가로 더 작업한 것이 있는지.

승태 〈비평가〉같은 경우는 세 차례의 공연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 시즌에서는 원작의 설정대로 남성 캐릭터 두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남성 배우 두 분이 출연했었다. 2018년에는 먼저 했던 배우분들의 사정으로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제가 연출님께 여성 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여성 배우 두 분이 출연했다. 요즘 여러 방면에서 시도되고 있는 젠더 프리, 혹은 크로스 젠더의 공연을 한 거다. 젠더 프리로 공연이 되었을 때 아주 다양한 형태의 관객 반응이 있었는데 창작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측면을 말씀해 주신 분들도 계셨다. 그런 부분들을 열심히 수집하고 내부적으로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거쳐서, 일정 부분을 극의 해석으로 받아들여 2019년에 여성 버전으로 그 극을 다시 하기도 했다.

재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주셔 독자들도 드라마투르그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설명 다시 한번 감사하다. 이어서 다음 질문을 드리자면 앱스가 섭외를 드리게 되었던 계기이기도 한데, 2021년 한국미학회 추계 발표회에서 ‘뉴노멀 시대 문턱에서 바라본 배리어프리 연극의 과제’라는 제목의 발표를 하며 접근성에 대해 연구하셨다. 먼저 어떻게 접근성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발표에서 살짝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동기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승태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사적인 동기가 있어서 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2021년 여름에 제가 번역한 텍스트로 3일간 낭독 공연을 진행했다. 특별한 지원금 없이 제작한 소규모 공연이어서 공연장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저렴하게 대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없이 지하로 들어가는 공연장을 선택했는데, 공연 시작 한 일주일 전쯤에 참여 배우 중 한 분이 우리 공연의 접근성에 대해 질문을 해주셨다. 그제야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건물 자체가 접근성에 대한 논의가 있기 전에 세워졌기 때문에 공연장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되지 않은 곳이었다. 극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전동 휠체어가 전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부족하나마 할 수 있는 데까지라도 해보기로 하면서 접이식 휠체어를 준비하고, 점자 공연 전단을 마련해서 비치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하지 못한 것은 다음에 본 공연을 하게 될 때 만회하기로 다짐했다. 극단에 숙제가 주어진 거다. 그런데 작은 극단이라 이건 사실상 제게 맡겨진 숙제라고 느꼈다. 관련해서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도중, 뉴노멀 시대의 상황과 관련한 발표를 해야 하면서 더 집중적으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그러던 중 2021년 9월에 제가 발표에서 다뤘던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이하 〈김이박이〉)라는 연극을 보게 되었다. 마침 제가 본 회차가 그림자 수어 통역 회차였다. 저로서는 수어 통역 회차를 사실상 처음 본 거나 다름이 없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연극 자체가 재밌기도 했지만, 수어 통역이 함께 있어서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날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수어 통역이 아닌 소위 일반 회차를 봤으면 더 재밌었겠다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약간 반발심이 생기더라. ‘아니다, 이게 더 재미있는 거다. 혹은 훨씬 더 의미 있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이걸 연구 주제로 삼게 되었다.

재현 독자들을 위해 2021년 한국미학회 추계 발표회에서 발표하신 ‘뉴노멀 시대 문턱에서 바라본 배리어프리 연극의 과제’를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린다.

승태 ‘뉴노멀 시대의 연극’과 관련된 발표를 주제로 의뢰받고 처음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공연과 관련해서 뭔가 새로운 국면이 생기고 발전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팬데믹이 진행되면서 공연장이 폐쇄되기도 하고, 객석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되려 공연장에 대한 관객들의 열망이 더 커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문난 공연들이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매진되기도 해서 저도 자주 공연을 놓칠 정도로. 팬데믹이 일어나면서 공연을 비대면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리 과정에서 사람들의 심리가 반대로 작용해서 더 공연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이 격리 상황에서 사람들이 현장 공연 관람을 열망하게 했다고 보고, 이게 일종의 ‘접근'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현시점에는 공공극장이 배리어 프리 공연 제작에 적극적이지만 초반에는 공공 극장보다 소극장에서 독립 프로덕션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에서 배리어 프리 공연을 더 적극적으로 시도했는데, 여기엔 몇몇 연극인들의 자발적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전 이런 시도에 의의를 두고 발표에서 다룬 것이다. 뉴노멀이라고 일컫는 시대에 배리어 프리가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등장했고 어떻게 보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새로운 흐름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 이후에도 본격화되고 있는 것을 지금 확인하고 있어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 주장이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후반부에서 다루었던 내용은 배리어 프리 공연 형식 중에서 ‘수어 통역’이라고 하는 하나의 형식이 어떻게 공연 요소의 일부로서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 구체적인 사례로 〈김이박이〉이 공연을 분석했다. 수어 통역이 어떻게 작품에 의미 작용할 수 있는지,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형태로 발표했다.

재현 〈김이박이〉 연극에서 그림자 수어 통역 회차를 관람하면서 수어 통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해 주셔서 어떻게 수어 통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짐작을 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연극에서 배리어 프리 관련해서 물리적 배리어프리도 있고 음성해설, 문자 해설, 수어 통역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그중 어떻게 ‘수어 통역’에 더 관심을 두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이전에 점자 전단이나 물리적 시설 접근 등을 제공하시면 연극에서의 배리어 프리에 관해 경험이 있으실텐데, 그중에서 그림자 수어 통역에 집중하게 된 배경이 있는지.

승태 아무래도 〈김이박이〉라는 작품의 특수성 때문에 수어 통역에 더 관심을 두게 된 것 같다. 그 작품은 배우 두 분이 출연하는 2인극이었는데 그림자 수어 통역 형태로 공연하게 되니까 무대 위에 배우 두 사람, 통역사 두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무대 위에 있는 사람 중 절반이 수어 통역가이니만큼 수어 통역사의 현존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 수어 통역이 필요 없는 사람인데도 수어 통역을 하는 분들을 시야에서 지우고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제가 수어를 모르는데도 공연의 상황과 수어의 몸짓이 만나는 것을 확인하기도 하면서 굉장히 흥미롭게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수어의 몸짓을 보면서 수행성(performativity)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극을 관람하면서 수어 통역사들의 현존성, 혹은 수행성이 제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배리어 프리 공연 중에서도 수어 통역을 먼저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발표 이후에 힘든 부분이 많았다. 수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한계를 느껴서 아직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상황이다.

재현 그림자 수어 통역이 무대 안에서 이루어지고, 또 그 행위가 연극의 일부와도 유사하기 때문에 연극의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연극의 일부로, 연극의 소위 말하는 미적인 것으로 고려할 수 있지 않으냐는 선생님의 문제 제기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미적 경험이란 감각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감각하느냐에 따라 미적 경험이 달라질 것 같다. 다르게 감각하는 사람들의 미적 경험은 기존에 주류 이론이 주장해 온 연극의 미적 경험과 어떻게 차이를 보이면서도 연결되어, 즉, 분절되는지 궁금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주류 이론을 확장 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승태 이 질문이 제일 어렵고, 제일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스스로도 완전한 답을 찾은 상황이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말씀을 드려보겠다. 최근에 한 논문에서 ‘문화적 시민권’이라는 용어를 봤다. 논문이 해당 용어를 사용하면서 주장하는 바는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시민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예술 작품 혹은 문화에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연한데 그것을 사회가 해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가 개인의 손상에 의해 능력이 부족한 것 혹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의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이와 같은 주장을 해왔고 최근에는 비장애인들도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이러한 관점으로 어떤 작품을 완전한 상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온전한 예술 작품의 감상 방법이라고 하게 된다면, 거기에 해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예술 작품을 완전히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 자체가 환상일 수도 있고. 우리는 장애를 등록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어 어느 시점까지는 비장애고, 그다음부터는 장애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시각이나 청각의 능력만 하더라도 개인에 따라 큰 편차가 있지 않나. 특히나 청각 같은 경우에 보통 인간의 가청 주파수 범위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나이가 들수록 귀가 어두워진다. 각자의 신체적 상황에 따라서 미술 작품이든 연극이든 음악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저도 통계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청각 장애인 분 중에서 완전히 안 들리는 분보다, 부분적으로 들리는 분이 상당히 많은데 그분들 중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음악은 의학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비장애인으로 구분되는 청각 수준을 가져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가청 범위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어쩌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 더 편견을 갖고 있어서 그런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을 온전하게 감상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난다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창작자가 혹은 사회가, 국가가 그런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 작품의 창작이든, 감상이든 탈중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 예술, 연극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 창작의 과정인데 오랫동안 일종의 위계 서열 같은 것들이 암암리에 있어 왔다. 연출, 배우, 작가가 중심이 되고 나머지 역할은 주변부로 밀려나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모두가 함께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그동안 잘 실천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2018년, 연극계 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 그리고 위계 폭력에 대한 반성이 있고 난 이후로부터는 평등한 위치에서 협업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동등함이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로 이제 배리어 프리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연극은 여러 요소가 함께 모여서 만들어지는 공동 작업이어서, 늘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합류하는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다. 배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전기 조명이 공연의 일부가 된 것은 100년 남짓이다. 또 그 이후에는 영상이 들어왔다. 이처럼 늘 공연에 새로 합류하는 신규 멤버들이 있다. 처음에는 기술적인 역할, 부차적인 역할로 인식되다가 점점 더 공연의 핵심적 요소로 들어오게 되는데, 제 생각에는 음성 해설이나 수어 통역도 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수어 통역, 음성 해설, 혹은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동등한 참여의, 혹은 작품을 함께 만드는 작업자로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정당한 방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론적인, 미학적인 관점도 그에 따라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현 발표에서 〈김이박이〉 속 수어 통역가가 수어가 아니더라도 배우의 몸짓을 따라 한다거나, 극 중에서 순간 단역으로서 여겨지는 장면들을 예시로 언급하시며 수어 통역이 ‘공연의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공연의 중심 기호들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공연 요소’라고 설명하셨다. 발표에서도 연극 이론들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배우와 배우 바깥으로 이루어졌던 연극 기호론의 관점에서 보신 것 같다. 발표 때에도 그림자 수어 통역을 어떻게 소위 말하는 미적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 발표 이후 찾으신 실마리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승태 무대 위의 모든 것이 기호로 작동한다면 어떤 형태든 무대 위에 있는 것을 의미 작용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수어 통역가는 단순히 수어 통역을 위해서 있는 존재니까 배제해도 된다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수어 통역도 무대 위 의미 작용의 일부라는 것을 저는 〈김이박이〉 공연 속의 수어 통역가들의 수어 통역, 수어 퍼포먼스를 통해 밝히고 싶었다. 이건 연극 기호학에서 말하는 ‘무대 위의 모든 것은 연극의 기호가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의미 작용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과 이어진다. 공연자들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관객들은 무대 위에 올려져 있는 것들에 주목하고 귀 기울여 듣는데 그게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발생시킨다. 현대 연극에서 창작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연의 중심적인 의미, 혹은 제작자들이 의도하고 지향하는 의미를 무대 위에 있는 것들과 어떻게 통합시킬 수 있을지 계속해서 질문한다. 수어 통역의 경우, 단순히 기계적으로 통역사를 무대 위에 세워놓고 공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연출가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연출가들은 배리어 프리 장치를 어떻게 자기가 구상하는 미장센과 통합시킬 수 있는가, 이걸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렇게 수어 통역이든 음성 해설이든 예술적인 방식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극학에서는 희곡을 1차 텍스트, 2차 텍스트로 구분할 수 있다. 대사는 1차 텍스트의 지위를 갖고, 나머지 부분들, 이를테면 무대 지문이나 등장인물 목록, 대사 앞에 누가 이야기를 하는지 발화 주체 구분 등 이런 것들을 2차 텍스트 혹은 ‘디다스칼리아(didascalia)’라고 부른다. 희곡 안에서 텍스트의 지위를 구분 지어서 대사는 중심에, 나머지는 부차적이고 변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구분해 왔다. 그러한 위계가 어떤 형태로든지 공연에서도 적용이 돼서 중심적인 공연 텍스트와 부차적 텍스트라는 구분이 있다. 수어 통역, 문자 해설도 마찬가지로 예술적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예술적 텍스트를 전달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치로서 보조적인 역할로 여겨지는 거다. 아직까지는 이런 입장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시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처럼 어떤 감각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조 텍스트가 바로 1차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을 동등한 문화적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가 인식한다면 이런 방식의 구분이나 위계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발전시키는 게 제 현재 과제인 것 같고 그 문제를 한편으로는 수어 통역으로 또는 음성 해설을 통해서 더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현 발표 시점부터 벌써 거의 2년이 지났다. 발표 이후 관람하신 그림자 수어 통역을 흥미롭게 진행한 다른 연극들이 있는지.

승태 제가 2022년에 크게 다쳐서 2022년에 공연을 거의 보지 못했지만, 〈콜 타임〉이라는 작품을 비대면으로 흥미롭게 보았다. 〈콜 타임〉은 사실상 〈김이박이〉 공연팀의 상당수 분들이 참여했던 작품이어서인지 수어 통역이 작품 전체와 보다 통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공연을 만드는 데 있어서 배리어 프리가 처음부터 고려된 상태에서 제작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미 문자 해설을 위한 스크린이 무대 한가운데 초가집의 형태로 놓여있고, 그 처마에 자막의 위치가 미리 만들어져 있다든지, 그 작품은 그림자 수어 통역이 아니라 수어 통역사들이 양쪽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양쪽 끝에 수어 통역사들의 위치를 미리 마련해 두었다든지. 이런 식으로 공연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고려된 걸 볼 수 있었다. 제가 발표했던 게 2021년이었고 공연을 본 게 작년 2022년이니까 정말 빠른 시간 안에 정착되는 셈이다. 또 공공 기관들, 국립 극단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경우에도 배리어 프리 제작과 관련된 지원을 늘린다거나, 더 적극적으로 이런 작업을 포함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8월에 저희 극단에서도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아까 말씀드렸던 낭독 공연의 본 공연을 하는데 배리어 프리 제작 여부를 먼저 물어보시더라. 극장 측에서 먼저 필요한 기자재나 보조 인력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안내해 주셨고, 또 관련한 교육을 극장 측에서 제공한다고 안내해 주셨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배리어 프리에서 그 ‘프리’에 다다르는 길은 몹시 멀겠지만, 제도적으로 나름대로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지원금 신청 시에도 배리어 프리와 관련된 것들이 심사 항목, 평가 항목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사례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참 반가운 일이지만 예술가들에게 큰 과제가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적 비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구현할 거냐는 숙제를 받은 셈이다. 연출은 물론이거니와 배우도 자기 혼자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수어 통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그에 맞는 액션과 리액션을 할 것인지 그런 게 중요한 과제로 주어질 것 같다.

얼터 이번 호에 수록되는 글 중 하나가 미술 전시에서 배리어프리를 적용할 경우 결과물이 촌스러워진다는 인상에 대해서 다루기도 하는 만큼, 배리어 프리를 완결된 예술 작품 바깥에 부속적으로 윤리적으로 갖춘 것이 아니라 이미 작품 안에 포섭됐거나 포섭 대상으로 예비된 것으로 보는 관점이 유의미해 보인다. 사례로 드신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수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등장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그동안 수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자각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수어는 손이 중심이지만 손만 사용하는 침묵의 언어가 아니었다. 숨소리, 표정, 언어가 아닌 것으로 취급될 아! 우! 같은 외침들 등…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음성/문자 언어보다 신체성이 더 강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 때문에 수어를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는 수어의 의미와 상관없이 일종의 안무나 연기, 수행으로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관련하여 관객의 입장에서 수어 통역자의 공연 안으로의 포섭은 일종의 대상화나 타자화를 포함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무대 위에서는 그 의미가 사라지고 스펙터클한 것으로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이는 그림자 수어 통역뿐 아니라 다른 배리어 프리 장치들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한 인간과 타자의 관계 중 발생하는 경험은 대상화/타자화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기 마련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오늘 인터뷰 중 말씀하신 것처럼 점차 스펙터클이 아닌 것,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배제를 없애기 위한 과정 중 발생하는 대상화/타자화’라는 아이러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다.

승태 질문 감사하다. 어쩌면 상충하는 문제라고 생각이 든다. 지적하신 문제에 공감하면서 배리어 프리 장치를 공연의 일부로, 중심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리어 프리를 하는 기본적인 목적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기능을 자꾸 놓치게 되면 연출가 혹은 비장애 예술가들이 비장애인에게는 불필요한 기호를 예술적으로 변환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생각 때문에 일차적으로 본래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텍스트를 안 촌스럽게, 세련되게 디스플레이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 가독성이 떨어지게 만든다든지 이런 문제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대상화, 타자화의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은 배리어 프리 방식의 공연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리어 프리의 방식들이 비장애인들에게 온전한 예술 감상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더 풍성한 경험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급하신 타자화의 문제도 어쩌면 타자들이 비장애인의 관람 경험을 제한한다고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극에서 흔히 사용하는 ‘암전’은 청각 장애인들과 수어 통역가들에게는 곤란한 선택이기 때문에 수어 통역 회차에서는 암전을 할 수가 없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암전을 누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설득하고 고쳐 나가는 것이 현재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더 풍성하고 더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경험해 본다면 어떨까. 대상화, 타자화의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배리어 프리를 하면서 관련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배리어 프리에 관해서는 저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비장애인 관객이 자신의 장애인 가족 구성원들, 혹은 친구와 함께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그로 인해 예술적 경험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아주 중요한, 새로운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설득력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재현 앞서서 배리어 프리에서 ‘프리’가 어느 정도의 ‘프리’가 될 수 있느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콜 타임> 작품을 설명해 주시면서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부터 자막을 어디에 달지, 이런 것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연극의 일부로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는 식으로 보고 계신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은 물론 제작자 입장에서는 유의미하고 커다란 변화라는 점도 정말 공감하지만, 이론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런 상황을 이론적으로 바라봤을 때, 이러한 미적 경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다. 시각 예술을 시각적으로 관람한다고 할 때, 배리어 프리에서 배리어로 작용하는 것은 미디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배리어 프리에서 배리어를 없앤다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르게 변화시킬 것이냐는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장애인의 미적 경험은 비장애인의 미적 경험과 다를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의 미적 경험에 대한 어떤 이해가 있어야, 이론적으로도 또 기존에 정전으로 여겨지는 그런 이론들 또한 좀 더 확장하거나 수정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론가이면서도 관객과 가까이 작업하시니만큼 경험적으로 시각 장애인, 혹은 청각 장애인이 음성해설이나 자막, 수어 통역을 경험하든 간에 장애인 관객분들의 미적 경험에 대한 소감이나 그로부터 힌트를 얻으신 게 있는지.

승태 두 가지를 말씀드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미적 경험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예술 작품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경험하고 나눌 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의미가 이야기될 테고 그러면서 작품이 더 풍성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예술 작품은 입체적이어서 내가 바라본 것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본 것이 모여 전체 상이 만들어지는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에 시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이 그 경험에 배제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색맹, 색약 분들이 회화 작품에서 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형태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고, 형태를 통해 파악한 작품에 대해서 더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분들의 경험은 어쩌면 색을 구분할 수 있어서 형태를 충분히 감상하지 못하는 ‘비장애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하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농인은 대사를 듣지 못하지만, 동작에 집중하고 동작에 대한 작품의 의미를 파악해 청인이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식의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이론적 틀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은 자기 신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말하는데, 비장애인은 마치 자기 신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누고 배울 부분들이 있고, 이를 위해서라도 장애인이 예술의 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것을 이론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이론을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이 그런 거라고 할 수 있다. 연극 기호학이 아주 세밀한 분석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면서 20세기 후반에는 굉장히 주목받다가 지금은 특별히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어쩌면 새로운 과제를 찾지 못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후에 거대한 이론적 패러다임이 바뀐 측면도 있겠지만. 그때 개발된 공연 분석 틀이나 그런 것들을 응용하면 지금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수어 통역, 음성 해설 같은 것들이 새롭게 설명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작업을 좀 더 해보고 싶다. 구체적인 피드백에 대해서는 발표에서 소개했던 문헌으로 접한 피드백과 지금 연구하면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발표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자막이 무대 바깥에 있을 경우 자막이 옆에 있으면 시선을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 정작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그 외에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이라는 연극과 관련한 이슈로 농인 관객분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분은 조금 더 청각 장애인이 직접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이를테면 중간에 수어 통역의 내용에 대해서도 청각 장애인 당사자들이 먼저 사전 피드백을 제공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셨다. 수어 통역사가 농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배리어 프리 공연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 기회를 더 만드는 게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체로 공연의 제작 과정이 매우 열악하고 무엇보다 시간에 항상 쫓기고 있는 상황들이 많아서 외부 관객들을 연습장에 모셔서 보여 드리고, 답을 듣거나 하는 일들이 사실은 쉽지 않다. 공연 이틀 전, 사흘 전에도 바뀌고 이런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 누군가를 불러서 무언가를 해도 뭐가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 늘 벌어진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피드백과 협력이 이루어져야 실제 결과물이 장애인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 테니 완벽하지 않아도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 같다. 저는 현실적으로 절충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다 이룰 수 없다면 초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어느 정도 공연의 윤곽이 분명하게 들어서 있는 상태에서 재공연을 할 때 조금 더 장애인 관객의 참여를 보장하는 형태로 완성시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장애인 관객분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결국 언제 있을지 불확실한 재공연 단계로 밀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하실 수도 있겠으나, 창작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 주시면 좋겠다. 결국 서로 함께 나아가는 방향을 찾아가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현 연극은 재연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피드백을 수용해서 다른 방식으로 적용해 보는 게 가능한 것 같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면, 그림자 수어 통역이 아니더라도 접근성과 관련하여 포착하신 다른 움직임들, 혹은 관심을 끄는 움직임들이 있으셨는지 궁금하다. 혹은 다른 장르에서 경험하신 배리어 프리가 있으신지 궁금하다.

승태 지난 1년간 제가 부상 때문에 잘 걷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물리적 배리어 프리 문제를 몸소 경험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작품과 관련해서는 음성 해설과 문자 통역,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 프리 공연에 대해 얼마 전부터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다. 작품 제목을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얼마 전에 한 무용 공연에서 음성 해설을 제공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주 건조한 텍스트로 전달 하더라. 그러다 보니 무용의 리듬이 전달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수어 통역은 배우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면 되니까 비교적 1대1로 전달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음성 해설의 경우에는 시각적인 요소를 음성 해설 작가가 일차적으로 어떤 걸 말로 옮길지 선택하고 서술해야 하다 보니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주관성이 공연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음성 해설 제작에 있어서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그 취지를 십분 이해하지만,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무미건조하게 전달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무용 같은 경우는 음악과 같이 진행되고 무용수의 신체가 어떠한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지가 정말 중요하지 않나. 객관적인 시각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는 취지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무용이 가지고 있는 신체 리듬을 전달하는 것이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말로, 혹은 언어로 무용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언어가 시적인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그 작업을 하면 되는 것일까, 해설 작가가 시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현재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 요소를 변환해서 전달하는 것이 큰 과제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외국어를 번역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동일하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운문인 대사를 우리말로 옮기면서도 그 리듬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연구한 적이 있다.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 전달될 수는 없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다른 형태로 채워지면 한국어로 그 작품을 접하는 사람도 원작자가 생각했던 리듬을 느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다시 무용으로 돌아가자면 무용을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음성 해설로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닌가 라는 문제만 일단 찾았고,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웃음) 덧붙이자면, 20세기 후반의 연극 기호학은 공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을 언어로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기호학이 도달한 결론은 공연을 투명하게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공연 분석은 분석자가 자신의 주관과 관점을 가지고 선택과 집중을 해서 주관적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결국 객관성을 추구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고, 주관성이 개입하게 되기 때문에, 되려 그 주관성을 인정하고 능동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 마치 번역가가 하나의 작가로서 인정되고 사람들이 번역가의 문체를 신뢰하고, 그 고유한 결과물을 즐기는 것처럼, 음성 해설이나 문자 통역과 관련해서도 그러한 지위를 인정하고, 오히려 그분들의 창의적인 기여를 통해서 전달되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시나 문학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 비장애인들이 작품을 통해서 느꼈던 감정에 상응하는 감정을 장애인 감상자들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재현 저희도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음성 해설이나 문자 해설에 필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떠한 요소들에 대해서 좀 더 취사선택하고, 그에 대해 주관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면, 이건 비평가의 일과 유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승태 저도 이게 비평의 과제일 수도 있다고도 본다. 전통적으로 비평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분석하는 작업, 해석하는 작업을 연습하게 되는데 그걸 발전시키거나 응용해서 얼마든지 배리어 프리 텍스트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비평을 훈련받은 사람들이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사실 비평문이 이미 그런 작업을 하지 않나. 작품에 대해 말로 옮기는 작업,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해석의 단계로 가기 전에 작품을 기술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니까, 사실 절반 정도의 훈련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머지 절반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일 거다.

재현 선생님께서 처음에 영어영문학을 공부하시다가 공연 예술학을 공부하시고, 번역, 평론, 드라마투르기 등을 하셨는데, 평론과 어쩌면 이런 음성 해설로서의 번역이 비슷한 작업인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시는 게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고, 앱스 이번 호와 많이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재밌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에 요즘은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승태 요즘에는 음성 해설과 관련된 기초적인 연구를 하는 중이다. 공연에는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존재하지만 시각 장애인에게는 전자가, 청각장애인에게는 후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존재 하지 않나. 그래서 그분들은 그분들이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된 텍스트를 통해 공연 혹은 예술 작품을 접하신다. 사실상 그분들에게는 일차적인 텍스트가 바로 음성 해설, 문자 통역 혹은 수어인 셈이다. 저는 그런 배리어 프리 장치로 만들어지는 텍스트가 작품의 중심적인 기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단순 기계적 변환이 아니라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마땅하고 그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그러하다는 이야기를 하려한다. 차등을 두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그걸 함께 만들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것은 공연에서 이루어지는 트리거 워닝에 대한 리서치를 5월 중에 연극학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트리거 워닝 혹은 콘텐츠 워닝이라고 해서 최근 몇 년 전부터 연극계에서는 심리적으로 위해가 되는 요소들을 공연 예매 전에 미리 안내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연극계에서 안전한 공연장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와 부딪힐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필요해서 제가 공부했던 대학원에 계신 분들과 트리거 워닝과 관련한 내용을 연구했고 이번에 그 내용을 기초로 발표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제가 지금 하는 작업들이 배리어 프리, 젠더 프리, 트라우마 프리 등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굉장히 큰 문제들이어서 문제를 조금씩 건드리기만 하고 제대로 풀어내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그래도 그게 모이면 어떤 식으로든 큰 변화를 일으키거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8월에 연극을 하나 한다. 미국 작가 루카스 네이스(Lucas Hnath, 1979 -)의, 〈새빨간 스피도〉라는 연극을 2023년 8월에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본공연을 올린다. 이번에는 배리어 프리 작업을 같이 하려고 하고, 수어 통역, 음성 해설을 준비 중이다. 전체 10회, 11회차 공연 중 2~3회는 배리어 프리 공연을 포함하려고 하고, 나머지는 자막을 제공하려고 한다.

재현 음성 해설은 혹시 선생님께서 텍스트를 작성하시는지.

승태 텍스트 작업에는 제가 참여할 것 같고, 녹음은 제가 교육을 받아 직접 할 수도 있고 보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형태로든지 같이 해보려고 한다. 제가 번역을 했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제가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재현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언어 간의 번역도 있기도 하거니와, 음성 해설을 통한 번역도 있고, 이런 지점에서 어떻게 언어 간, 내지는 언어화되지 않았던 걸 어떻게 언어화하는가, 여러 층위의 번역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

승태 몇 가지가 사실 굉장히 복잡하다. 주인공이 원작에서는 남자 수영선수인데 이번에도 여성 배우를 캐스팅해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배우의 신체가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어떻게 구현이 될지 저 역시도 무척 기대된다. 재미있지만 어려운 과제일 거다. 오늘 함께 이야기한 여러 가지 변환이 모두 관여하는 작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재현 소개 정말 감사하다. 연극은 저희가 꼭 단체로 관람하러 가도록 하겠다. 오늘 긴 시간 할애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진영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마지막에 말씀하셨듯이 배리어 프리, 젠더 프리, 트라우마 프리 정말 다 아주 거대한 문제들이고, 하나도 선뜻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들인데 먼저 나서서 연구해 주시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호 준비하면서 당사자성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고,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고민에 봉착했는데 용감하고 멋진 일을 하고 계신 것 같다. 감사하다.

승태 감동적인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작업을 다 제가 스스로 한다기보다는 요즘의 관객들의 요구인 것 같다.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라는 목소리들이 들리기 때문에 공연을 만드는 입장에서 그걸 외면할 수가 없어서 겨우 따라가고 있는 수준이다. 인터뷰로 제 연구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추가적인 질문을 해 주셨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사실 이 분야에 대해서 훨씬 더 전문적으로 말씀해 주실 분들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불러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재현 아니다. 다음 번에는 극장에서 뵙기를 기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