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의 생존법
제단 위의 초코파이를 낚아챈 것은 까치였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 발로는 포장지를 부여잡고 부리로는 봉지를 뜯어 초코파이를 먹는다. 다른 곳으로 까치가 이동하며 바닥에 초코파이 포장지와 부스러기가 흩어졌다. 인왕산 어는 기도터에서 목도한 상황이다.
전통이 예전부터 있던 것을 뜻한다면, 이 상황은 나에게 전통이 현대에 기대어 살아남는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 같았다.
전통이 현대에 기대 살아 남는 법
인왕산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미지정 비보호 문화재들이 즐비하다. 미지정 문화재는 사료가 부족하거나 형태가 많이 마모되어 가치가 미진한, 그래서 문화재청과 같은 정부 기관에서 지정 보호되지 않는 모든 형태의 문화재를 말한다. 그 형태는 미륵불부터 벅수까지 다양한데 운이 좋아 전각이나 사찰에 봉안(奉安)되는 경우도 있지만 벌판이나 도시에 그냥 세워져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미지정 문화재들은 박물관에서 보호받고 있는 지정문화재들과 다르게 스스로, 끊임없이 생존해야 한다. 살아있지 않은 것들에게 이런 표현을 붙이는 것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때로 포도밭을 일구며 비닐하우스 안에서 생존하기도, 농수로를 지키며 묵묵히 서있기도 한다. 혹은 무속인을 만나 기도터가 되어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챙기기도 한다.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 때문에 아마추어 역사 연구가들에 의해 블로그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돌이켜 보면, 미지정 문화재들은 기관에 박제된 지정문화재들과는 다르게 노상에서 인간과 함께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지속하며 어떤 식으로든 연속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에는 새로운 생존 방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가상세계로의 이주 가능성
내게 사진 작업 외에 다른 숙고의 계기가 없었던 것은 이러한 연속성에서 기인하는 매혹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이천 해룡사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 좌상을 만났다. 이 역시도 절에서 관리를 하고 있지만 지정문화재는 아니었으며, 놀랍게도 2010년경(추산) 도굴꾼에 의해 모조품으로 대체된 뒤 도난당했으나 사찰에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고 한다. 2019년 과거 자료 사진을 본 한 시민의 제보로 문화재청에서 수사에 착수, 2021년 충주에서 발견되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사건은 나에게 작은 인상을 남겼고, 그 후 나는 박물관에 이주된 문화재들보다 지역민들과 함께 지금 여기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미지정 문화재에 조금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미지정 문화재가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역사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에 무턱대고 모든 문화재들의 박물관 이주를 주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품 3D스캔 및 배포 사업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그와 같은 사업을 진행하여 행정절차를 걸쳐 무상으로 데이터를 배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미지정 문화재의 데이터는 누가 보존할 것인가? 또, 그렇게 데이터화된 문화재들로 또 다른 시도들이 가능하지는 않을까? 비록 기관에서는 관심 갖지 않는 사안일지언정, 어쩌면 아마추어 연구가들과 전통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들은 그 틈을 비집고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이 기술에 기대 살아 남는 법
3D 스캔은 현재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는 기술이며 산업현장에서도 다양한 목적과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보급형 장비의 가격이 상당한 편이고, 220v 콘센트에서 자유롭지 못해 비지정 문화재들이 자리한 깊은 산과 벌판에 가져가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물건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다. 시중의 몇몇 스마트폰에는 LiDAR 센서가 탑재되어 있는데 이 기능은 사진의 심도를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를 우회하여 개발자들이 LiDAR 센서를 활용한 3D 스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고, 아직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형태는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참고로 LiDAR 센서는 본래 항공기의 거리 측정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이 방식을 이용한다면, 사실 누구든 비지정 문화재를 스캔하고 데이터화 할 수 있다. 나 또한 이러한 기술에 기대어 이천 해룡사 석불좌상을 포함해 다섯 곳의 미지정문화재를 3D로 스캔하였다.
그러나 각각의 문화재는 특정한 사연을 갖기 마련이며, 이 사연, 말하자면 문화재의 아우라를 어떻게 데이터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논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전통이 가상에 기대 살아 남는 법
컴퓨터 상에서 3D 툴을 열어 5개의 데이터에 구멍 난 곳을 메우고 미처 스캔이 안 된 부분을 보완하였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3D 스캔은 아직 정확도가 부족한 기술이다. 그렇기에 형태가 원본과는 달리 다소 둔탁하게 나오는데, 그것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좀 더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이 스캔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었다. 스캔 데이터라는 형식은 소프트웨어상에서 물성과 무게 모두를 잃게 되므로 연속적 보존의 가치를 갖고 있는 동시에 변형 가능성이라는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케일의 다양한 변주는 물론, 전통적 소조 방식에서는 불가능했던 좌우 반전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복제, 늘리기, 비틀기, 중첩 등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어쩌면 소프트웨어적 특질을 활용하는 것이 전통이 가상세계에 기대 특수성을 확보하고 확장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가상세계의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아래의 작업들이다.
세 점 모두 부조 형태의 액자인데, 이는 다섯 점의 스캔 데이터가 복제, 변형, 중첩되어 총 세 개의 덩어리가 된 것이다. 컴퓨터로 이 데이터의 상하좌우를 둘러볼 수 있고 확대하여 세밀한 부분을, 축소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망하는 것도 가능했다. 모니터 상에 나타난 형태를 변형하거나 덧붙이는 일은 실제 손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모니터를 통해 하는 것이지만 놀이에 더 가깝다. 기술과 기기로 매개된 것이라고 해도 형태의 구축과 보완은 역시 대상을 감각하는 일이다. 가상세계로 이주한 생명은 어디에 그리고 무엇에 기대져 있는지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그렇다면 조각, 사진, 디자인, 아니면 그 무엇?
소프트웨어상에서 벌어진 이 과정은 전통적인 소조의 방식보다는 사진 편집술에 더 가깝다. 이미지를 자르고 변형하여 다시 조합하는, 포토샵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의 유사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3D스캐너를 활용하기 이전의 작업 방식 또한 특정 장소를 방문하고 채집한다는 측면에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 데이터 자체를 물리적으로 환원한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위에서 언급한 세 작업을 다시 P.L.A 방식의 3D 프린터로 출력하여 액자로 제작하고 각각 〈CASPER〉, 〈BALTAHASAR〉, 〈MELCHIOR〉 라는 제목을 붙였다.
스캔한 데이터를 프린터로 출력한다는 점 역시 사진의 인화와 비슷했다. 하지만 정작 작업을 대면한 첫인상은 조각에 가까웠다. 아마도 조각가들이 말하는 소위 매스, 질량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조각이라 하기에는 또 모호한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소조 작업에서 모들레(Modeler)의 과정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들레란 단순히 흙을 빚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조각가들에게 있어서는 뼈대에 흙을 붙여 질량감을 형성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해부학을 토대로 뼈를 만들고 근육을 붙이고 살을 빚는 행위는 대상의 본질적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와 더불어 작품의 밀도와 안정성을 뒷받침해준다. 따라서 2D의 평면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P.L.A 3D 프린팅 방식은 대상의 외형만을 고려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의 관점에서 3D 스캔/프린트는 합당할까? 이미 산업현장에서 이 기술이 크게 응용되고 있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비물질의 성형방식부터 편집, 출력 방식까지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널리 활용되어 왔다. 건축에서 또한 마찬가지로 AutoCAD를 넘어 조감도, 건축 모형과 같은 시각화의 방식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물론 아직 3D 프린팅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주된 역할이라기보다 부수적 역할에 좀 더 치중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추가된 차원
여기에 다른 물질로의 환원이라는 차원을 추가해보면 어떻게 될까? 관련하여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해보았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역시도 김해 초전리에 위치한 미등록, 비지정 문화재인 초전미륵불을 대상으로 진행하였고 오주성 작가의 도움을 받아 전문 장비와 인력으로 디테일한 스캔 데이터를 확보하였다. 이후 대상의 원형 대신 네거티브면을 소프트웨어상으로 구축하여 주형틀(거푸집)을 출력하였다. 이 주형틀에 형압주형으로 흙을 채워 넣었고 거푸집을 해체한 후 가마에 소성하였다. 본래 돌의 형질을 가졌던 초전미륵불이 일시적으로 컴퓨터 데이터가 되었다가 결과적으로는 세라믹으로, 다시 물질로 환원된다.
그렇다면 이 결과물은 사진의 방법론(스캔), 3D 소프트웨어의 방법론(성형), 소조의 방법론(거푸집), 도예의 방법론(소성)을 공유하는데, 이 장르적 공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이 의미가 당연하게도 어느 특정 장르 안에 포진되어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장르적 탈출에 대하여
가상과 물질세계를 넘나드는 3D 기술이 예술의 한 축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종결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보류인 부분이 많다. 내가 ‘기대져 있음’에 대해 자주 언급한 것도,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얕게 견주어 본 것도 3D 스캔과 프린트가 아직은 다른 예술/기술 분야 전반에 걸쳐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분야도 (아직은) 완벽히 포용할 수 없는 이 특질은 오히려 3D 스캔/프린트의 예술적 가능성을 위한 토대일 수도 있다. 어느 때이든 새로운 매체와 기술은 이전의 것에 기대어 자기만의 것을 찾아왔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는 3D 기술의 예술적 가능성을 믿고 있다. 앞서 소개한 세 작업의 이름은 성경 속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름이고, 이 글의 제목은 출애굽기의 영어 제목인 엑소더스(Exodus)다. 우리는 무엇을 맞이하고, 무엇으로부터 탈출하는가? 예술가는 그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