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하늘

대답하는 사람: 최하늘, 질문하는 사람: 유진영, 기록하는 사람: 김호원

🥠는 ‘까 봐야 안다’를 슬로건으로 하는 인터뷰 코너다. 인터뷰의 형식을 경유하지만 특별한 목적지는 없기 때문에, 대화의 방향은 그때그때의 포춘(fortune)에 맡긴다.

최하늘 조각과 퀴어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다섯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진영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굉장히 바쁘실텐데 이렇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하늘 반갑다. 조각과 퀴어에 대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최하늘이다.

진영 이번 인터뷰가 수록될 앱스 3호는 하늘 님이 작년에 참여하셨던 웹 플랫폼 ‘수장고’와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호이다. 오늘 인터뷰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조각이라는 매체를 중심에 두고, 조각 작품의 물질/비물질과 작품의 데이터와 2차 저작물에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하늘님은 조각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논의를 작업으로 풀어가는 방식을 고민해오셨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나 역시도 몇 년에 걸쳐 그러한 문제의식들이 전개되어온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봐 온 입장인데, 최근에는 조각을 중심에 두고 작업을 전개하는 갈래가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는 퀴어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조각의 언어로 다루고, 이를 통해 동시대 조각을 지탱하는 전통적인 가치와 관념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조각이라는 매체의 물성과 조각의 지지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동시대의 디지털 환경 안에서 고민을 하는 방식인 것 같다. 이 두 갈래가 10월 중순을 기준으로 현재 참여하고 있는 세 개의 전시—개인전 ⟪벌키 BULKY⟫(아라리오 뮤지엄, 2021.9.2-2022.3.6)와 직접 기획한 단체전 ⟪보니BONY⟫(뮤지엄 헤드, 2021.10.1-11.20) 그리고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문화역서울 284. 2021.9.14-10.17)(이하 《타이포잔치 2021》)에서 잘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세 전시를 같은 날 모두 보았는데 즉각적으로 비교가 되어서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두 축과 관련해서 전시와 세 전시에 참여 중인 조각 작업들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하늘 일단은, 퀴어랑 조각 이렇게 두 가지 키워드로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2018년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었던 것 같다. 2016년부터 2년간 작업을 전개할 당시에는 주로 조각 자체에 대한 내용으로만 작업을 전개하다가, 2018년 이후에는 작업에 퀴어의 맥락을 끌고 왔고,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퀴어와 조각을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다. 일단 내 생각엔 내 작업에서 내용은 퀴어가 담당을 하고 있고, 형식은 조각이 담당을 하고 있다. 나에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퀴어 아트란 무엇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또 반대로 ‘지금 우리 시대에 조각은 무엇일까’라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질문을 계속 끌고 오고 있는 상태인 듯하다. 전시를 할 때 이 두 가지가 범벅이 될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둘 중 하나에 집중을 할 때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를 이야기해보자면, 일단 아라리오에서의 개인전은 두 가지가 적절히 조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반면 내가 기획한 전시 ⟪보니 BONY⟫의 경우에는 조각보다 퀴어에 더 집중을 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지금 하고 있는 《타이포잔치 2021》 작업의 경우에는 조각에 집중해 작업을 전개했었던 것 같다.

진영 이 분류를 의식하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작품과 전시를 보았을 때 아무래도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었던 것은 《타이포잔치 2021》에서의 작업들이었다. ‘데이터 환경 안에서의 혹은 동시대 환경 안에서의 조각’이라는 흐름을 내 나름대로 하늘 님의 지난 전시들이랑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이어보려고 노력해봤다. 앞서 작업의 출발 기점을 2016년으로 언급해 주셨지만, 2017년 개인전에서 시작해보려 한다 . 2017년 합정지구에서의 ⟪No Shadow Saber⟫ 와 2018년 산수문화에서의 ⟪Café Kontakthof⟫, 2020년 ‘SUJANGGO수장고’ 프로젝트(이하 ‘수장고’), 그리고 현재의 《타이포잔치 2021⟫에서 조각의 문법이 어떻게 동시대 환경과 연동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하늘 님의 고민이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 특히 조각같이 물질적인 것들을 다루는 작가들에게는 당연히 데이터 환경에 대한 논의들이 더욱 고민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 자장 안에 있기도 하고. 관련하여, 조각에 관해서 요즘 조금 더 고민하고 있는 내용들이 무엇인지부터 말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하늘 합정지구에서 했던 첫 번째 개인전의 주제는, 뭐랄까,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조각을 감상하는 방식이 과거와는 판이한데, 그런 전제 안에서 조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전시였다. 3D 물체를 단순히 표피만 인식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3D 물체를 잘랐을 때 발생하는 섹션 이미지, 그러니까 (3D 물체의) 단면 이미지를 가지고 조각을 사고해보자, 이런 제안을 하는 전시였던 것 같다. 어쨌든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의 조각은 잘라내면서 만드는 방식이 많다. 나도 늘 재료를 잘라내는 과정에서 그 단면이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이게 안에만 감추어져 있다는 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또 휴대폰을 가지고 계속 이미지를 캡처하면서,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물리적으로 두께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질문들이 엇비슷하게 산수문화 개인전에서도 녹아 있고. ‘수장고’는 본격적으로 웹에서 조각이 유통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지점이 재미있어서 나도 참가를 하게 되었다. 《타이포잔치 2021》의 경우에는, 내가 속한 파트의 제목이 ‘밈의 정원’인데, 밈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유통망 혹은 물리적인 세계에서 두께를 가질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질문했었던 것 같고. 요즘 내가 조각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은, 이 인터뷰의 주제와도 연동이 된다. 나는 새로운 시각 체계 안에서 조각의 가능성은 무엇인지, 조각이 여전히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질문하고 있고 이를 조각으로 구현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진영 그렇다면 이제 ‘수장고’ 프로젝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하늘 님은 일우스페이스에서의 단체전 ⟪눈 깜짝할 새 IN A FLASH⟫(2020)에 출품했던 ⟨스트레칭 하는 애⟩의 3D 데이터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많은 작품 중에서 왜 이 작품을 출품하기로 선택하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데이터화 하는 작품이 어떤 주제, 형태, 형식이든 상관없나? 이런 것들이 궁금했던 것 같다. 선택의 기준 같은 것들.

하늘 일단은 ⟪눈 깜짝할 새⟫라는 전시 이전에 현시원 큐레이터님이 기획하시고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정말 짧게 진행되었던 ⟪14 steps⟫(2020)라는 전시가 있었다. 쥬노 킴이라고 하는 렉쳐-퍼포먼스를 하시는 분이랑 내가 같이한 이인전이었는데. 거기에서는 4개의 조각이 각각 옷을 입고 있거나 도구를 가지고 있거나, 그런 식으로 어떤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우스페이스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정치적인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라든지 정치적인 시위를 상징하는 오브제들을 다 제거한 채로 전시를 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것들로 더러워진 조각이 더티 버전이라면, 그런 것들이 완전히 소거된 조각을 클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 이처럼 조각을 두 버전으로 나누고 병치하는 작업을 진행했었다. 아무튼 그런 작업이었는데, 이 작품을 데이터화한 이유는 우선 크기 때문이었다. 너무 큰 조각은 스캔이 힘들기 때문에 중형 사이즈 조각 중에서 골라야만 했는데 크기 면에서 이 조각이 조건에 맞았다. 그리고 나에겐 조각이 완전히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 물질이라기보다는 유동적이고, 언제 부서질 지 모르고, 되게 유약한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있다. 그런데 이 조각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엄청나게 가벼워서, 그 점도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가장 가벼운 재료로 만들어진 조각을 스캔해서 웹에 유통시키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이 작업을 선택했던 것 같다.

진영 ‘수장고’ 참여를 결정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전까지 하늘 님의 실천 방식이 디지털 세계의 요소들이나 데이터 환경, 그런 것들을 현실의 차원으로 옮기기 위해 가벼운 것이든 무거운 것이든 간에 조각의 언어로 물성을 부여하는 것에 방점이 있었다면, ‘수장고’는 정 반대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물질성을 없애는 방식으로.

하늘 내가 한창 대학을 다니던 시절, 2010년대 초반에는 비물질 담론이나 가상 세계와 관련된 담론들이 한국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언가가 비물질적으로 변하며 가속화되는 상황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는 조각을 전공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었다. ‘그럼 나도 조각을 비물질화시켜서 무언가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들. 하지만 그런 고민의 시간이 지나간 후 여전히 내가 속해 있는 물리적인 세계를 지탱하는 건 실제 3D 물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고, 실제 조각에 조금 더 집중을 하게 됐다. 나는 조각을 실물로 보는 물질의 차원, 그리고 사진으로 남겨서 보는 이미지의 차원, 이렇게 두 가지로 구분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수장고’ 프로젝트의 경우 조각을 이미지로 대하는 태도가 있어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흥미를 느껴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뒤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이미지가 된 조각을) 사람들이 마구마구 훼손을 가하고, 수정을 가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해 데이터를 유통하게 된 것이다.

진영 아까 3D 스캐닝할 때 조각의 사이즈 같은 것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조각을 데이터화 하는 과정을 모두 하늘 님이 직접 하신 건지? 아니면 ‘수장고’ 측에서 한 건지? 스캐닝 과정을 조금 더 설명해 달라.

하늘 그건 ‘수장고’를 기획하신 정휘윤 님이 다 직접 진행을 해주셨다. 나는 직접 3D 스캔을 해본 적은 없지만, 대충 어떤 프로세스인지는 알고 있었다. 작품을 3D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와 휘윤 님이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조각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가?”였다. 그런데 원래 3D 스캔이 더 정확하고 더 정교하게 재현이 되려면 그만큼 금액이 더 많이 들어가는 구조다. 3D 스캔도 여러 번 돌려야 하고. 그래서 내 작업이 다른 참여 작가들에 비해서 조금 더 질감이 거칠고 형상도 추상적이라서 스캔에 애를 먹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영 그만큼 금액도 올라갔던 건가?

하늘 원래는 그렇다. 그런데 내가 돈을 낸 건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진영 잘 구현이 된 것 같은가?

하늘 그렇다. 생각보다 되게 구현이 잘 돼서 놀랐다. 사실 조각의 우둘투둘한 표면이 스캐닝이 되었을 때, 어쩔 수 없는 데이터의 낙차로 인해서 되게 플랫하게 느껴질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막상 완성된 데이터를 보니까 표면이 정말 정교하게 스캔이 다 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나에게도 좀 특별한 경험이었다.

진영 나 역시 실물 작업은 보지 못했지만, 데이터 자체를 볼 때에도 되게 질감이 잘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애를 먹은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사이즈 같은 게 감각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모든 작업들이 다 비슷한 사이즈로 느껴진다는 점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하늘 그렇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사이즈에 대한 지점도 되게 흥미로웠다. 어쨌든 원본이 있는 나의 조각, 160cm에서 170cm 사이의 조각이 스캐닝이 돼서 유통이 될 때 크기가 비약적으로 커질 수도 있고 또 굉장히 작아질 수도 있고, 이렇게 크기가 가변적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진영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아까 유통 과정의 맥락에서 잠깐 언급을 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데이터를 퍼블릭 도메인으로 내놓았다는 지점이다. 몇몇 작가분들은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유를 해서 계속해서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으셨지만, 대체로 다른 참여 작가분들은 그 전 단계에 상응하는 비영리-저작가 표시(CC BY-NC)로 해서 저작권은 유지를 하면서 데이터를 일정 기간만 공유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지만 하늘 님은 완전히 데이터로 변환된 작품을 퍼블릭 도메인의 방식으로 저작권을 소유하지 않은 채 공유를 하지 않으셨나. 아 그리고, 실물 조각 역시 이제는 폐기했다고 들었는데 맞나? 만약 그렇다면, 정말 이 작품은 온전히 데이터로서만 존재하는 작품이 된 셈이다.

하늘 맞다. 실물은 폐기가 된 상태라서, 진짜 데이터로만 남아 있는 조각이다.사실 나는 ‘수장고’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당연히 퍼블릭 도메인으로 진행하는 걸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 조각을 다운받아서 자기 마음대로 재조합하고 그게 다시 세상에 보여지기를 바랐는데, 비영리-저작권 표시를 선택할 경우 이게 너무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수장고’가 조각을 이미지 차원에서 다루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내가 만든 조각이 유통이 되면서 낡아가고, 사람들한테 가난한 이미지로서 아주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저작권 교육이 잘됐는지,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조각을 이용하지는 않더라.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진영 사실 그게 저작권 교육이 잘되어서라기보다는, 아무리 그게 자유롭게 다운받을 수 있는 상태여도,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물론 요즘은 많이들 3D 툴을 다룰 줄 알고 기술에 능한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되게 어렵게 느껴지고 그걸 활용하는 일들이 조금 귀찮게 느껴지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2차 저작물이 당연히 원하는 만큼 파생이 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점이 ‘수장고’ 측에서도 많이 아쉬웠던 부분일 거라고도 생각하고.

하늘 그 부분에 나도 전적으로 공감을 하는데, 또 진짜 한 4-5년 정도만 더 어린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모를 일이다. 나는 어렸을 때 형제가 많아서 다 같이 컴퓨터 게임을 엄청 하면서 자란 세대다. 그때 내가 제일 많이 했던 게 그런 거였다.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 세팅 같은 거. 그러니까 유저가 맵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그런 방식을 굉장히 흥미로워했었다. 유즈맵 세팅을 하면서 맵 안에 나무를 어디에 배치할 건지, 장애물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할 건지, 이런 커스텀에 익숙해지고는 했다. 이걸 생각해볼 때 요즘 젊은 친구들도 웹과 가상 세계에서 무언가를 축조해 나가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대표적으로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있고, 코딩을 직접 배워가며 남의 이미지를 가지고 와서 변형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었던 거다. 그래서 작품 데이터가 유통되었을 때 좀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를 바랐는데, 예상과 달리 크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진영 혹시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유한 다른 작가분들은 뭔가 더 재미있게 활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있나?

하늘 아니, 들은 건 없다. 어쨌든 첫 번째 시도이기도 하고.

진영 ‘수장고’ 프로젝트를 조금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4-5년 후의 젊은 작가들이 활용해주기를 기다려 보면 갑자기 재밌는 일들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하늘 그렇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나는 내 작업들을 사진으로 아카이빙 하고 그걸 홈페이지에 주기적으로 업로드하는데 홈페이지에서 원본 사진을 그대로 다운받을 수 있게 해놓았다. 사람들이 이 사진을 가지고 뭔가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진영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하늘 님이 데이터 환경에서의 유통에 대해 생각보다 더 열려 있는 것 같다.

하늘 나는 물질로서의 조각이랑 데이터로서의 조각을 완전히 구분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물질 세계에서의 조각이 어떻게 유통되는지와 데이터로서의 이미지 혹은 스캔 파일로서의 조각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편인 듯하다.

진영 그렇다면 실물이 있었으나 데이터로만 남은 ‘수장고’의 조각은 하늘 님의 작업 전체의 맥락 안에서 어떤 위치나 의미 혹은 위상을 가지고 있게 될까?

하늘 글쎄. ‘수장고’에서 했던 시도를 본격적으로 이어가고 있지는 않지만, 웹에서 조각을 유통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는 언제나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흥미로운 부분도 있고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물질로 이미 완성된 조각을 스캔해서 이미지로 만든 다음 웹에서 유통시키는 건 좋은데, 처음부터 웹 안에서 축조된, 말 그대로 가상으로만 있는 조각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아직 조금 더 생각을 해보고 있는 중이다.

진영 다음 질문이 방금 말씀해주신 부분과도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수장고’가 계속해서 갖고 있는 가장 큰 질문이 ‘실물이 있는 작품이 데이터가 되었을 때, 이것은 그 자체로 원본성을 갖는가?’하는 저자성과 관련된 전통적인 문제에 관한 것인데. 조각이라는 매체에 한정을 하고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을 해볼 때, 조각가로서 하늘 님은 데이터 혹은 디지털 조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원래 질문에는 실물이 있든 없든 간에라는 전제를 달았는데,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실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굉장히 다르게 생각을 하고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자면 과연 데이터 조각은 지지체를 갖고 있는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과연 어떤 것일지? 까지 묻고 싶다. 당장 답을 내리기엔 너무 어려운 이야기 같긴 하다.

하늘 그러게 말이다.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다만 아까 말한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나는 신화로 형성된 작가와 작업,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어떤 불가침한 권리로서 표명되는 작가와 저작권이라는 것에 대해 약간의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전시 기획을 하면서 더욱 많이 느낀 건데,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 문법들이 있지 않나. 전시에 출품된 작업이 있고, 작업의 제목이 있고, 캡션이 있고, 서문이 있고, 이런 것들 말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그간 질문해오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궁금해진 지점들이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조각을 내가 만들었다고 이게 과연 내 것인가? 내가 만든 조각에도 어떤 독립성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고, ‘수장고’ 프로젝트는 그 질문에 대해 나 스스로 내린 답변이지 않았을까 싶다.

진영 ‘수장고’ 프로젝트에서는 데이터/디지털 조각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냥 조각이나 작품 자체에 대해 평소 갖고 있는 저자성에 관련된 생각들이었겠다.

하늘 그렇다. 그리고 지지체에 대한 질문은 조금 어려운 것 같다. 실물이 있는 상태에서의 조각이랑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의 조각 이야기가 또 너무 판이하고. 어쨌든 나에게 조각이란 물질로서 존재해야만 성립이 된다는 전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3D 가상현실 안에서 조각을 만들었을 때, 그게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라는 생각이 좀 있는 것 같다. 웹이나 디지털 환경 속에서,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한 형태를 만들었을 때, 그걸 과연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지? ‘수장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런 질문들이 생각이 났다.

진영 나도 약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데이터 ‘ㅇㅇ’라는 장르나 매체를 세분화하는 것은 사실 그리 유효하지 않은 것 같고, 차라리 ‘데이터’ ㅇㅇ에 방점을 두고, 그냥 그 자체의 존재 문법을 이해하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이어가겠다.

(휴식)

호원 1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 요즘 많은 동시대 작가들이 3D 디지털 매체와 물리적 매체를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서 3D 툴로 먼저 이미지를 구축하거나 조형을 하고 그것을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인 매체로 옮기는 방식 말이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도 하고. 앞서 가상현실 안에서 조각을 만들었을 때 어떤 의미를 지닐지에 대해 궁금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가상과 현실의 매체를 오고가는 작업 방식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지가 궁금하다.

하늘 우선 3D 툴을 이용해서, 그러니까 아이패드로 미리 그려보거나 스케치업으로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실물로 옮기는 작업이라 했을 때, 나는 그 툴이 현실의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툴을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툴이 먼저가 되는 방식은 없었던 것 같다.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현실에서 조각이 제작되는 방식과 3D 툴 안에서 물질을 다루는 방식, 이 두 가지를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뭔가를 출력해서 완성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은 기계가 해주는 것보다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게 금액 측면에서나 여러 측면에서 더 이득이 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조각가들의 개입이 많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이 기술환경 안에서 무언가를 성취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모르는 거긴 하지만. 다만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물질적인) 조각이 많이 사라진 지금의 환경에서, 어렸을 때부터 3D 툴을 배운 조각가들이 어떤 식으로 작업을 펼쳐낼지, 그건 나 역시도 궁금한 지점인 것 같다. 아, 기억나는 다른 사례가 하나 있는데 Tofu jerkey가 기획한 《하드코어 퓨처그라피Hardcore Futuregraphy》(문화역 서울, 2019)라는 이벤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모델이 조각을 들고 이동하는 이상한 컨셉의 이벤트였다. 나는 현장에 시간이 없어서 못 갔었는데, 갔다 온 사람들한테는 조각을 들고 사람이 움직이면서 관람하는 방식이 각인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이때도 기획자가 조각을 3D 스캔해서 패션쇼 백스테이지에 나오듯이 영상으로 틀었던 기억이 있다. 조각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행사였다. 3D 툴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때, 조각을 제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조각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명 우리는 흔히 캡션에 들어가는 어떤 내용들을 조각의 데이터라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몇 센티미터고 무게가 얼마고 그래서 어떻게 운송을 해야 하고. ‘수장고’에서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건, 조각의 데이터를 가지고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조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각과 데이터를 같이 놓았을 때 서로 무관하게 갈 길을 가는 와중에 겹치는 지점들이 있다.

호원 한 가지 더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인터페이스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사람은 데이터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직접 볼 수가 없지 않은가. 다시 이야기하자면 0과 1의 데이터로 존재하는 이미지를 직접 볼 수가 없고, 꼭 모니터나 HMD 등의 인터페이스를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그런 인터페이스를 거치는 게 조각이 존재하는 방식에 다른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를 들어서 아까 데이터의 낙차라는 말을 하셨는데, 어쨌든 물리적 공간에서 작품을 볼 때 우리는 굳이 그런 인터페이스를 거치지 않는다. 실제 전시장에 놓여 있는 작업을 볼 때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그 환경을 돌아다니면서, 공간을 신체적으로 점유하면서 조각을 바라보지 않나? 그게 온라인-가상 현실에서 구현된 경우, 그래서 특정 인터페이스를 경유하게 될 때 조각의 관람 방식에서 데이터의 낙차처럼 감각의 낙차가 발생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그게 궁금하다.

하늘 아무래도 그렇다. 감각의 차원에서 데이터와 실물이 다른 건 어쩔 수가 없다. VR 같은 기술적 매체가 발달해서 실물과 가상에서의 조각 경험이 전혀 다르지 않은 환경을 전제할 수 있다면 또 논의점이 달라지겠지만, 지금 2021년의 환경에 국한시켜보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조각을 실제로 만지면서 보는 것과 웹에서 보는 것은 너무 다른 경험이라서, 둘 중 뭐가 더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두 개의 장단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실제로 전시장에 놓인 조각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위치에 고정되어 있고, 사람들이 접근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하지만 가상에서의 조각은 내가 원한다면 변형도 가능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두 개의 경험 중 뭐가 더 낫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서로가 어떤 장점이 있으며, 그 장점을 우리가 어떻게 가지고 와야 할지, 그 지점을 생각하는 것 같다.

진영 호원 님의 마지막 질문이 이어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므미’ 프로젝트랑 또 닿는 것 같다. 지난 여름에 4-5일 정도 짧게 진행되었던 ‘므미: 디지털 조각과 가상현실 큐레이팅’이 있었다. ‘믐’이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에 데이터를 전시하고, 물리적 전시 공간에서는 그 작품 이미지-사진이랑 AR 필터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던 것 같다. 이때 활용된 데이터가 ‘수장고’에 올려놓았던 작품 데이터였고. 아마도, ‘수장고’의 입장에서는 처음에 기대했던 2차 저작물의 가장 적극적인 활용과 형태의 예였을 것 같다. 혹시 참여 연락 같은 건 어떻게 받았나?

하늘 ‘믐’은 백필균이라는 큐레이터가 속해 있는 작은 단체/업체였고, 전시 제목은 ‘믐’을 프로모션 하는 ‘므미’였다. 이 준비 과정이 일반적인 전시 참여의 과정과 어떤 점이 달랐느냐면, 우리는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나는 데이터만 전달하면 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만나지 않았다는 점이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므미’의 기획 과정에서 백필균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당시에는 왜 전시 공간에 물리적 거점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이 생겼다. ‘믐’이라고 하는 어떤 멀티 플랫폼 안에서 전시가 되고 있는 거라면 물리적 거점을 두지 않고 프로젝트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다만 덧붙이자면, 이 프로젝트가 교육적 목적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지역 학생들을 초청해서 툴을 알려주고 플랫폼을 홍보하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긴 하다...

진영 전시라기보다는 워크숍에 가까운…

하늘 그런 셈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수장고’랑 ‘믐’의 가장 다른 점은, ‘수장고’는 어쨌든 관객들한테 원본이 주어진 플랫폼인 거고, ‘믐’은 원본조차 주어지지 않고 가상 공간만 주어진 곳이라는 점에 있는 것 같다. ‘므미’에서 내 조각은 원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예시로 기능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믐’이라는 플랫폼에 접속해 이것저것 해봤다. VR 전시와는 달리 RPG 게임처럼 자기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를 움직여가면서 전시를 보는, 조금 더 게임 같은 느낌이 드는 환경이었다.

진영 요즘 미술계 프로젝트가 주로 이루어지는 가상 플랫폼 몇 곳들이 떠오르는데, 그곳들은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스스로 심을 수 없다는 게 굉장히 큰 제약인 것 같다. 또, 거기서도 내 캐릭터가 있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긴 하지만, 생각보다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래서 조금 있다 보면 굉장히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믐’은 아직 안 들어가 봐서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아이템 같은 걸 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적극적인 형태의 전시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 그렇다. 만약 3D 데이터 파일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 3D로 구현할 수 있긴 한데, 사실 대부분 3D 파일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게 조금 애로사항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진영 그러면 애초에 이 프로젝트가 기획될 때부터 하늘 님이 이미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같이 준비를 한 것이 맞나?

하늘 그렇지는 않다. ‘믐’이라는 업체가 먼저 플랫폼을 개발하고, 그다음에 나에게 연락이 왔던 거다. 사실 그런 지점이 있다. 3D 가상 환경에 기반을 뒀거나 웹을 거점으로 두는 전시나 프로젝트에서, 조각가는 약간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는 느낌이 있다. (조각은) 어쨌든 뉴미디어가 아니라 전통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조각하는 사람들 자체가 유통과 관련해 보수적일 거라는 편견이 조금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오는 다른 제안들은 ‘수장고’나‘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물리적인 전시였다.

진영 나 역시도 하늘 님이 디지털 환경의 유통 구조를 생각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걸 지금 인터뷰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늘 거기에 약간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2011년부터, 그러니까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카이빙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조각을 만들고 그걸 아카이빙하는 과정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둘 다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든 이 조각을 도대체 어떤 매체를 이용해서 아카이빙 해야 하지?’ 라는 게 계속해서 엄청 스트레스를 주는 고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장고’나 ‘므미’라는 프로젝트가 내게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이 있다. 그래서 처음 ‘므미’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아, 그러면 나도 내 방을 하나 만들어서 지금까지의 내 작업을 수장고처럼 보관하는 그림을 연출해볼까?’, 이런 상상도 했었던 것 같다.

진영 오히려 온라인 공간이 조각에 적합한 아카이빙 공간이라고 여기신다는 뜻인가?

하늘 그렇다. 3D 스캔된 내 조각을 보면서 어떤 지점에서는 그 프로그램이 훨씬 더 조각을 잘 아카이빙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영 흥미로운 지점 같다. 이제 《타이포잔치 2021》에 대해서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보자. 《타이포잔치 2021》의 ‘part 3. 밈의 정원’에 네 개의 작품을 출품하셨다. 그중에서 가운데에 놓여있던 ⟨직립연습_조각모방⟩이라는 작업이 2017년 합정지구에서 이야기했던 스크린이나 캔버스에 존재하는 두께에서 밈이나 짤 같은 비물질적인 대상들이 어떤 식으로 두께를 가지면 좋을까의 문제로 더 구체적인 방향성을 갖고 확장된 예시라고 보였다. 그럼에도 막상 작업 자체가 어떻게 밈의 두께를 의미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캐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작업 자체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시면 좋겠다.

하늘 처음에 신은진 큐레이터한테 연락을 받았었다. ‘타이포잔치2021’에 현대미술 작가들이 모여있는 한 파트가 마련이 됐는데 그 주제가 ‘밈의 정원’이라는 것이다. 밈이라는게 지금의 유통 환경에서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탐구하는 주제였다. 나는 거기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예시는 아닌데, 첫 번째는 하나의 밈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을 경우. 밈이 인기를 얻으면 그것의 후속 버전 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 아니면 2차 가공 등이 인터넷을 통해 활발해지지 않나. 이러한 구조가 밈에게 내용적 차원에서 서사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밈을) 좋아해주고, 거기에 새로운 것들을 부여하면서 몸집이 커지는 게 재미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좀 구체적인 예시인데, 일본에서 많이 유통되는 밈 중 잘못 찍힌 고양이 사진들이 있다. 아마 다들 본 적 있을 텐데, 카메라로 고양이가 움직이는 모습을 순간 포착했을 때 기형적인 형태로 촬영된다거나, 아니면 강아지가 엄청난 팔 두께를 가진 것처럼 왜곡된다거나 하는 것들. 그런 사진이 3D 전문가들에 의해 실제 피규어로 생산될 때가 있다. 뒷면이나 앞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정면만을 놓고 가정한 다음 3D로 두께를 부여하는 방식인 거다. 이 두 가지 방식이 되게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밈이 물질이 되기 위해서는 조각의 방식을 차용할 수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밈 같은 평면 이미지에 두께가 형성되어 스스로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진영 가운데 얼기설기 놓여있던 구 형태의 작업이 맞나?

하늘 맞다. 두께가 얇은 포맥스를 마치 우리가 붓글씨 쓰는 것 같은 모양으로 여러 개 자른 다음에, 얘네들을 어떻게 하면 조각처럼 서 있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다. 조각을 모방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실천했다. 이를테면 건축과 1학년 수업에서 하는 것처럼 평면의 종이를 입체로 세우기 위해 꺾어서 세워 본다거나 하는 방법들을 조각으로 표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서로 얽히고설켜 덩어리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여명 ‘밈의 정원’ 파트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온 것처럼 큼직큼직한 피스들로 거의 채워져 있었다. 강재원 작가도 요즘 계속 엄청 큰 작업을 하고 있고, 문탠샵도 다 큼직큼직한 티비를 갖다 놓았고. 그런데 그걸 또 다 모아놓으니까 더 커져버리고. 그 거대한 작업들하고 하늘 님의 작업이 같이 있으니까 다른 데에서는 적당한 크기라고 생각했던 게 굉장히 작게 느껴지더라. 그러면서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최하늘 작가가 만드는 조각의 크기에 대해서 새삼스레 더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항상 인간의 키의 범주 안에 드는 작업들, 서서 보거나 숙여서 보거나, 어쨌든 딱 휴먼 스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그런 스탠다드를 지켜서 만들었다, 라는 생각이 드는 작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작업들이 너무 커서 그런지 작게 느껴지는 측면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게 아까 이야기 나눴던 조각이 이미지나 데이터로 만들어지면서 조각의 크기 차이들이 다 없어지고, 엇비슷한 크기로 바뀐다는 지점하고 연결되는 부분이 또 있는 것 같아서 한 번 덧붙여 보았다.

하늘 《타이포잔치 2021》의 경우에는 기획이 굉장히 명료했다. 신은진 큐레이터께서 나에게 주문을 한 게 다른 전시에 비해서 굉장히 구체적인 편이었는데 내 조각이 그런 거대한 조각들 사이마다 곳곳에 포진되어 있기를 희망하셨다. 그런데 그거랑은 별개로, 그림은 어떤 방식으로 작가가 사고하는지 모르겠는데, 조각의 경우 나에게는 크기가 되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같은 형태여도 크기가 크거나 작은 거에 따라서, 그리고 높이 있거나 바닥에 있거나, 이런 거에 따라서 굉장히 맥락이 달라진다. 내 생각에 이번 ‘타이포잔치2021’에 출품한 조각들은 크기가 클 필요가 전혀 없었던 조각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공간이 큼에도 불구하고 작게 만들었던 거고.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그런 거대한 조각을 만드는 작가들에게 묘한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왜 저렇게 크게 만드는지? 하는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나 역시도 가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각의 범주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는데. 정말 능숙한 기술적 환경이 가능해진다면 나 역시도 리스크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지금의 환경에서는 작가가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안고 조각을 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실물을 다 만들어서 전시장에 갖다 놓고, 얘가 조금 더 커졌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사실은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지 않은가. 만약에 그런 기술적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나 역시도 어떤 감에 의존해서 크기를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크기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로서는 나는 내가 만드는 조각의 크기가 나에게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거보다 작으면 내가 만들 수 없고, 커지면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이 정도 사이즈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굉장히 큰 조각 설치 작업을 올해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진행했고, 작은 조각들도 만들었기도 하다. 그래도 타이포잔치에 출품했던 작업 사이즈 아니면 아라리오 개인전에 출품한 작업 사이즈가 어떻게 보면 나에게 제일 편하고 익숙한 사이즈인 것 같다.

여명 요즘에는 뭔가 케이팝 씬에서 조각가를 찾는 일도 왕왕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작품을 보았을 때랑 뮤비 세트장 안에 있는 모습을 볼 때 스케일 차이에서 오는 생각이 있다. 미디어나 스크린이나 이미지를 통해서 조각을 보는 경험들을 통해서, 최근에 조각에 대해 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난 항상 조각 전체를 찍는 것보다는 조각의 일부라고 해야 하나, 부분만 사진을 찍게 되지, 전체를 다 찍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더라. 뭔가 전체를 보여주는 순간부터 재미없게 느껴질까 봐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하늘 나 역시도 이번에 《보니 BONY》를 기획하면서 그런 경험이 있었다. 뮤지엄 헤드 입구에 작은 연못처럼 생긴 야외 공간에 나랑 조이솝 작가가 조각을 놓게 되었는데, 조이솝 작가의 작업실을 가서 조각을 봤을 때는 그게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었는데, 막상 야외에 설치를 하고 보니까 너무 작게 느껴지더라. 조각의 크기, 다른 말로는 디테일로 바꿔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각이 크면 클수록 디테일이 더 많아진다고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큰 조각들 안에 있는 작은 디테일들을 찾아보는 걸 별로 즐기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전체적인 형태나 덩어리가 주는 분위기 혹은 느낌에만 집중을 하지. 가까이에서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 보지는 않는다. 나는 사실 조각뿐만이 아니라 모든 작품의 일부를 찍은 사진에는 관심이 아예 없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진이나, 따로 포트폴리오를 제출할 때도 일부 사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게 약간 조각을 대하는 어떤 취향 차이인 것 같다.

진영 개인적으로는 조각의 전체 형상이 한눈에 파악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무리를 슬슬 해보려 한다. 우선은 앞으로도 이렇게 3D로 전환하는 작업들도 조금 더 시도 해볼 의향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하늘 그 전에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일화가 있는데. 올해 두산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분들과 큐레이터 워크숍 전시를 작년부터 함께 준비했었다. 코로나가 한반도를 강타할 때쯤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그때쯤이 딱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이 VR 관람을 준비하면서 사람들한테 보여줬었던 첫 시기였었고, 그 점에 집중해보자 해서, 아예 오프라인에서는 전시를 하지 말고 온라인으로만 하는 건 어떨까, 이런 주제를 나에게 제안해주셨다. 그래서 이 주제 안에서 전통 매체 작가들은 과연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지가 주요한 내용이었다. 나는 오프라인 전시랑 온라인 전시가 관성적으로 당연히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오프라인에서 전시를 보는 경험이 훨씬 더 좋고 유익할 거라고 장담을 했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까 그 생각이 굉장히 보수적이었다는 걸 바로 느끼게 된 거다. 이를테면 전시장이 VR로 전환이 될 경우에, 실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전시장을 방문하기 어려운, 일반적이지 않은 사회적 약자라든지 소수자들이 웹을 통해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되지 않는가. 두산 갤러리 정도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접근이 용이한 갤러리지만, 대부분의 작은 공간들은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서 내 작업이 3D화, 데이터화되어 유통되는 일에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미술의 울타리 안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는 당연히 오프라인 전시를 여는 게 우선시 되겠지만, 조금 더 그 울타리를 확장해서 그냥 우리 사회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달라지더라. 그래서 미술계 바깥으로 점점 뻗어 나가는 방향성을 제시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진영 여름에 그 전시를 봤을 때는 주제와 전시의 결과물이 약간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전통적인, 좋은 전시의 풍경을 갖고 있는데 그게 팬데믹 이후 변화한 상황들을 상상하는 것과 크게 연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만약 온라인 전시로 이루어졌었다면 어땠을지가 되게 궁금해진다. 온라인 전시는 아예 추진을 안 하게 된 건가?

하늘 그렇게 됐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아직까지는 좀 온라인 전시를 기피하는 그런 경향들이 다들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렇고. 뭔가 오프라인을 통해서만 작품을 보여주려고 하는 그런 욕구들이 다들 있더라. 그렇지만 나는 이런 경향이 굉장히 이른 시일 안에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코로나가 너무 익숙한, 코로나가 발생한 시기에 살아온 젊은 청소년들은 거기에 아주 빠르게 적응을 할 테고, 그들이 성인이 돼서 메인 소비 계층이 되었을 때,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

진영 마지막 질문을 하고 끝을 내보겠다. 오늘 대화에서는 앞부분에서만 잠깐 언급되었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지만, 더 넓은 방향으로 물꼬를 터놓고 인터뷰를 마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질문이 얼마나 의미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디지털 조각과 퀴어는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쌍이 될 수 있을지, 디지털 조각에서 퀴어는 어떤 것일지, 그런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가 궁금하다.

하늘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것 같다. 조각과 데이터가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퀴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는데. 나는 조금 더 내용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해보자면, 요즘 어떤 프로젝트 때문에 북한 퀴어에 대한 부분을 엄청 리서치하고 있다. 사실은 물리적으로도 접근이 제한되어 있고 정보도 완전히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들과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라고 했을 때, 유일한 방법으로 웹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 웹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그 안에서 조각가로서의 내 역할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술적인 환경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그 안에서 재현이라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조각가들은 어떤 것들을 엮어나가면서 활용할 수 있을지? 이 지점이 대부분의 조각가들이 고민하는 지점인 것 같다. 나는 거기에서 퀴어의 맥락도 놓치지 않고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고.

진영 끝으로 이번 호가 11월 중순에 발행될 예정이다. 이 시기에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나 혹은 그 이후 계획을 홍보하실 시간을 드리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덧붙여 주셔도 좋다.

하늘 아라리오에서 하는 개인전 《벌키 Bulky》는 내년 3월까지, 뮤지엄 헤드에서의 기획전 《보니 BONY》는 11월 20일까지 진행되니 많이들 방문해주시라. 또 리움 재개관전에도 참여했는데 그 전시는 내년 1월까지 진행된다. 끝으로는 데이터 환경에서의 조각이 내가 중점적으로 작업하거나 고민하고 있는 분야는 아니라서 이야기할 때 막히는 지점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나한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감사하다.

진영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