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ANGGO수장고‘는 무엇을 보존하는가.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사이에서.

유진영


1.

수장고(收藏庫)의 사전적 의미는 ‘귀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이다. 신성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수장고 역시 ‘귀중한 것’이라는 모종의 인준 과정을 거친 물질 대상, 즉 작품들을 보관하고 보존한다. 수장고는 높이와 구조, 각재와 부품 하나하나까지 스스로를 둘러싼 모든 것을 엄밀하게 재고 따지며 존재하고, 자기 안에 들일 것을 엄격하게 분류하고 정제하며 유지된다. 한 마디로 수장고는 은밀하고 신성한 요새인 것이다. 이 요새의 성벽은 이상하리만치 높아 보이지만 다성적 시공간의 응집체1로서의 미술관/박물관에게 수집과 보존은 가장 본질적인 기능과도 같기에 수장고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여기에서 질문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물질적 대상이 없는 디지털 데이터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 고이 보관이 가능한가? 사실 2020년을 지나친 우리에게 이 질문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한편, 저작권이란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것으로 저작물에 대해 가지는 배타적인 법적 권리이다. 저작권은 크게 저작 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뉘며 형식과 내용, 복제와 배포 등 저작물에 다면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아주 거칠게(그리고 다소 무식하게) 보았을 때 시각예술에서의 저작권은 작품의 실질적 소유의 문제와는 무관하게 아이디어 그 자체에 대한 보호보다는 결국 작업물의 이미지에 대한 권리만이 남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작업의 결과물로 남은 이미지가 곧 작업으로 대치되며 그 이미지에 2차 가공이 발생하는지, 엉뚱한 곳으로 배포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의 문제를 추적하는 일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시작된 웹 플랫폼 ‘SUJANGGO수장고’가 있다. 이 플랫폼은 실제 물질적 재료들을 이용해 제작된 작업을 3D로 스캔해 그 데이터 파일을 사이트에 올려놓은 뒤 일정 기간 누구든 다운로드 받고, 자유로운 2차 창작과 유포를 돕는 웹 사이트다. 언뜻 보기에는 ‘수장고’라는 이름이 꽤 적합한 듯해 보이지만 이 플랫폼이 행하는 일련의 실천들을 곱씹어보면 이들은 무엇을, 왜 소장하고 있으며, 웹사이트라는 그들의 거처가 정녕 작품의 보관과 보존을 위한 신성한 요새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SUJANGGO수장고’는 무엇을 소장하고 있는가. 그것을 수집한 경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까. 유포에 기반을 둔 보관의 장소는 데이터 작품들의 필연적인 거처인지.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갖는 것과 작품을 소장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 일인가? 디지털 네트워크 세계에서 저작권은 얼만큼이나 유효성을 갖는가? 데이터 작품 자체가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디지털 데이터의 아우라나 저자성, 원본성을 실물에 기대어 요청하는 것은 다소 보수적인 태도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2.

오랜 세월 박물관, 미술관과 함께해 온 지난한 소장의 역사가 계속해서 새롭게 쓰이고 있다. 기관의 성격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증거로서의 소장품은 수장고의 안팎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온라인으로의 대이동 시대를 거치며 소장의 패러다임이 회화, 조각 등 전통적인 매체의 물리적 결과물에서 영상, 퍼포먼스, 게임과 같은 디지털 데이터 등의 비물질적 영역으로 확장되어가는 현상 역시 그 사례가 충분치는 않지만 익숙하고 자명하다. 사례가 충분치 않다기보다는 비물질 대상을 대하는 감각적 태도가 선행하고 그에 대한 제도나 인식, 논의가 여전히 미진하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다. 작품의 소장 및 보존은 어떤 식으로든 손아귀에 쥘 수 있는 물리적 대상이 되는 일로 귀납되어 왔다.


한편, 소장의 범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매체만이 아니다. 주제와 담론의 차원에서 무엇을 수집할 것인지에 대한 타당성 있는 기준 역시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고민이다. 기관별로 철마다 내놓는 소장품 모집 공고에는 제각각의 기준들을 내세우지만, 이는 결국 지역과 시대라는 커다란 범주로 간편하게 묶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수집의 결과물은 대개 큰 변별력 없이 한정된 파이 안에서 돌림노래처럼 구성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기관의 수집 제도와 소장품 리스트의 미흡함이나 아쉬움에 대해 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SUJANGGO수장고’를 뜯어보는 과정 중 발생한 수많은 질문들을 해소하는 행위에 가까운데, 단지 이 질문이 작품의 수집과 소장, 그리고 소장품의 유포와 관련되어 있을 뿐이며 그 작품이 하필 디지털 데이터의 형식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에둘러 말할 수 있겠다. 이 글을 통해서 ‘SUJANGGO수장고’의 작품 소장 및 보존 방침을 살피고, 디지털 작품의 요새로서 ‘SUJANGGO수장고’라는 플랫폼의 번영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이는 것을 작은 목표로 삼는다.


3.

‘SUJANGGO수장고’에서 재미있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소장과 공유에 관련한 저작권 문제에 있다. 일반적으로 한 번 기관에 소장된 이상 그 작품의 활용 방식은 전적으로 기관에 위임된다. 소장품과 관련한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부분 역시 이 활용 방식에 있는데, 수장고로 빨려 들어간 작품 대부분이 그리 흥미롭지 않은 상설 소장품 전에서 아쉬운 방식으로 소모되거나 바깥 공기를 충분히 쐬지 못하고 수장고 한 켠에 가만히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소장품을 다른 방식으로 의도와 의미를 덧붙여 활용하는 사례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지만, 문제는 특정한 곳의 소장품이 되어버린 작품의 경우 그 이후의 생명력을 담보하는 일이 좀처럼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작품의 지적 재산권이 작가에게 귀속되어 있을지라도 그 활용을 위한 저작권이 기관에 위임된 이상,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의미에서의 작품의 생존 여부는 거의 전적으로 소장처에 달려있다. 그러나 ‘SUJANGGO수장고’는 자신들의 수장고를 거의 완벽하게 개방해놓음으로써 소장 작품의 유통 및 활용 주체를 작가와 제3자에게 환원한다.


‘SUJANGGO수장고’가 디지털 데이터의 소장 방식에 있어서 의미를 차지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수장고의 거처를 물리적 장소가 아닌 웹이라는 퍼블릭한 공간으로 옮긴 것, 그리고 데이터로서의 작품을 공유재로 전환한 것. 이 지점은 현재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 데이터를 위한 수장고의 존재 양식을 새로운 영역으로 이양시킨다. 디지털 데이터로서의 작품의 존재 양상과 그 가치는 양적, 질적 존재감과 거기로부터 피어나는 아우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경로로의 확산 내지는 유포를 거치며 이 과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경험의 양태와 2차 저작이라는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서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0년 심포지엄에서 유운성 평론가의 발표 ‘존재 양식으로서의 흩어짐: 영상 작품의 비물질적 소장에 대하여’에는 무빙 이미지 즉, usb 등을 통해 보관되는 디지털 형식의 단채널 영상 작품의 새로운 소장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2 디지털 데이터라는 비물질적 예술 작품을 소장할 때 그 대상을 어떻게든 물질적 대상에 담아 수집하는 기존의 소장 방식은 작품의 본질적인 존재 방식을 위반하는 보수적인 준칙에 다름없다. 이를 위해 유운성은 ‘보존’의 문제를 디지털 작품의 소장과 관련된 문제에서 떼어 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는 ‘산포(散布)’라는 용어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원본을 도처에 보관함으로써 작품의 분실, 훼손으로부터 보존할 수 있다는 역발상으로까지 나아간다.


그의 ‘산포’ 개념에 발을 딛고 ‘SUJANGGO수장고’를 살펴볼 때, 이 플랫폼이 ‘수장고’라는 명칭을 걸고 작품의 데이터를 산포하는 행위는 비물질적 작품의 비물질적 소장 방식의 의미 있는 사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 ‘SUJANGGO수장고’는 실물 작품의 유무 여부에 집중하는 방향에서 선회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데이터가 작업으로서 혹은 예술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왔다는 점은 그것의 물질적 실재를 마련하는 일로 극복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두고 분리된 존재 양식을 정립할 때 극복될 수 있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를 실제의 축소/확장판이나 연장 선상으로 단순하게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손쉽게 범하곤 하지만, 실은 두 곳을 온전하게 감각하는 일은 서로의 다름을 오류적 형태로 맞닥뜨렸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들은 서로를 돕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온전히 닮지 않는다. 디지털 작품 역시 그것이 조각이든 회화든 간에 ‘디지털’을 앞에 단 순간 ‘디지털’의 존재 방식을 부여받게 되는데, 이때 그 존재 방식을 따르는 것이 조각/회화 등의 기존 장르 구분을 의식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데이터는 다만 낡을 뿐, 여간 해서는 사라지거나, 식별 가능할 만큼의 서로 다른 크기나 물성을 갖지 않는다는 존재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때, ‘SUJANGGO수장고’에서 자연스럽게 권장되는 작품의 2차 활용은 유일무이하지 않기에 획득 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아우라를 모든 디지털 작품의 데이터에 부여한다. 물론, 산포가 야기할 많은 문제점들을 방지하고 적극적으로 2차 저작물의 창출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전 단계에서 저작권에 대한 명료한 합의가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만 한다. 지난해 10월 진행되었던 ‘SUJANGGO수장고’의 1차 오픈 기간 중 3명의 작가들이 데이터를 CCO(퍼블릭 도메인)로 공유했고, 이 외에는 CC BY-NC(저작자표시-비영리), 즉 다른 사용자들이 작품을 사용하거나 공유하거나 수정할 수 있지만 상업적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는 단계의 라이센스와 CC BY-NC-SA(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다른 사용자들이 작품을 사용, 공유하거나 수정할 수 있지만 2차 저작물 역시 원작품이 보유한 라이센스와 동일한 라이센스에 한해서만 비상업적인 용도로 배포할 수 있는 단계를 선택했다. 기본적으로는 모두 작품의 사용 및 수정에 동의하고 있는 바, 각 조건들이 2차 저작물을 만드는 데에 특별히 제약을 주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프로젝트 종료 후 2차 저작물 관련 관리 등의 문제로 인해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유된 작품 외에는 다운로드가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데이터의 유통 과정을 실험하는 플랫폼의 본 목적을 상기해볼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운로드에 기한을 두지 않는 일이다. ‘SUJANGGO수장고’ 사이트 내 2차 저작물을 공유하는 갤러리 페이지에는 20개 남짓의 결과물이 올라와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기대만큼 충분치는 못해 보인다. 어떻게 더 적극적인 창출을 촉발시킬 수 있을까? 아마도, AR 필터든, 3D 데이터든 간에 2차 저작을 시도한 주체는 근래의 디지털 담론과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특정 세대, 특정 주체와 일치할 것이다. 심지어는 그들 외에는 수장고의 데이터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시도한 이들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 한정된 대상을 넘어 위, 아래로 특히, 디지털 환경의 문법을 완전하게 체화하고 있는 이후 세대들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진정한 공유재로 웹 곳곳을 유령처럼 머물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할수록 더 많은 것, 이를테면 더 긴 생명력과 이른바 아우라를 얻게 되는 역설적인 디지털 세계의 존재 양식을 따를 때, ‘SUJANGGO수장고’를 위시한 ‘웹’이라는 공간은 작품으로서의 디지털 데이터가 기거하는 안식처가 될 수 있다.


4.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점은 ‘SUJANGGO수장고’의 수집 기준 즉, 작품 선별 기준 역시 세공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세계의 굴레를 벗어나면, 수집의 범주와 기준 역시 대폭 확장될 수 있다. 이는 현재 ‘SUJANGGO수장고’가 갖고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형식과 의제가 그 컨텐츠를 다소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The Logic of the Collection’에서 작품이 어떤 컬렉션에 합류하는 일은 그것이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유리된, 명멸하는 유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현실(reality)과 공명하는 수집 시스템의 내적 논리에 의해 다른 시간의 레이어를 미래로 운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3 무엇이 이곳에 어울릴까? ‘SUJANGGO수장고’는 무엇을 수집해야 하는가?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선 여기에서부터 고민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1 양지연, 「미술관의 정의와 수집제도, 어떻게 시대를 감지하고 반응해야 하는가」, SeMA Agenda 2020 ‘수집’ 〈소유에서 공유로, 유물에서 비트로〉, 서울시립미술관, 2020, 출처.

2 유운성, 「존재 양식으로서의 흩어짐: 영상 작품의 비물질적 소장에 대하여」, SeMA Agenda 2020 ‘수집’ 〈소유에서 공유로, 유물에서 비트로〉, 서울시립미술관, 2020, 출처.

3 Boris Groys, “The Logic of the Collection.” Nordisk Museologi (1993),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