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생물학을 통해 분석한 웹의 생태 원리와 코드의 생장 과정

구자명


(lock with ink pen)은 이모지 🔏를 풀어 쓴 코너의 제목처럼, 이미지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텍스트를 게재하는 코너다. 작업이거나, 작업에 관련되었거나, 지금은 작업과 뚜렷한 관계가 없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도 모르는 텍스트를 요청한다.

구자명 구자명은 추계예술대에서 평면회화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에서 입체조형을 공부했습니다. 관심사는 기술 변화의 경험으로 시각예술 창작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있습니다. 최근, 소프트웨어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몸으로 볼만한 형태를 찾기 위해 여러 방법과 연결해 보고 있습니다.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0), 〈PPB(Phoenix Phenotype Breeding)(가변크기, 서울, 2018)에서 작업을 발표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실물 세계가 웹(WWW)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컴퓨터 코드의 변이 과정을 유전자 복제의 화학적 특성 연구 분야인 분자생물학을 경유해 분석해보기 위한 시도입니다. 웹은 인터넷 위에 올린 서비스의 하나로 하이퍼텍스트 구조를 활용해 수많은 정보들을 연결합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 사이에서 신호를 주고받으면 데이터베이스 내부의 코드 정보를 웹 브라우저로 전달, 출력하는 작동 원리를 갖습니다. 이 체계는 여러 개의 재료가 모여 하나로 조립되는 사물의 특성과는 다르게 유기체의 유전 발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념과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유전정보의 흐름: 복제, 전사, 번역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는 생물의 유전정보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DNA, RNA, 단백질, 세 유전물질 사이에서 가능한 전이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포 단위에서 일어나는 이 과정은 기존 DNA에서 새로운 DNA를 생성하는 ‘복제’, DNA에서 RNA를 생성하는 ‘전사’, 그리고 RNA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는 ‘번역’이 있습니다. 복제(Replication)는 DNA를 주형(Template)으로 완전히 동일한 클론(Clone)을 만드는 과정으로 세포분열에 관여합니다. 전사(Transcription)는 DNA의 특정 부분을 RNA로 복사하는 과정이며 생산된 (m)RNA는 그 자체로 기능을 하거나 전달된 유전정보로부터 단백질로 번역(Translation) 되어 생물학적 활성을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유전정보에서 기능적 유전자 산물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 시스템이 생물의 생장과 같은 형태 형성의 초석을 이룹니다. 흔히 세포를 도서관에 비유해 DNA는 대출되지 않는 책, RNA는 이 책에서 필요한 페이지 일부를 복사한 사본들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미시세계의 중심원리 개념을 웹이 가진 체계에 대입해보면 각 요소 사이의 관계들을 아래의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미지1)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 유전 정보의 전달 과정 (참고: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entralDogma-es.png)

(이미지2) 데이터베이스 내부 코드 정보의 전달 과정

유전정보의 변이: 역전사

일반적으로 RNA는 세포핵 안에서 전사되고 이후 밖으로 튀어나와 세포질에서 번역 과정을 거칩니다. 이는 핵 내부에 유전체를 온전히 보호하기 위한 최적의 운영체제이지만, 견고한 구조에서도 문제적 상황은 발견됩니다. 어떤 종류의 바이러스(Retrovirus)에서는 전사의 역방향으로 유전정보가 발현하는 역전사(Reverse transcription) 과정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외부환경에서 자립으로 물질대사를 진행할 수 없는 바이러스(RNA를 유전체로 가진)의 생존에 대비해 기생을 목적으로 설계된 ‘자기복제 프로그래밍’입니다. 이 방식으로 자신의 유전물질인 RNA를 DNA와 동일한 형질로 역전사 시키고 숙주 염색체에 삽입해 중심원리에 따라 새 바이러스를 전사해 번식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숙주에 침투해 들어간 프로바이러스(Provirus)는 숙주 세포의 유전체와 함께 복제되면서 본래의 결과와는 다른 변이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아래 도식은 세포 내 발생한 역전사의 유전자 발현 과정에 대응하는 웹 안에서 코드의 변이 단계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미지3)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정보 발현: 역전사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Retrovirus#/media/File:Hiv_gross.png)

(이미지4) 코드의 침범과 변이

감염의 경로와 대안 접합

웹 서비스 등장의 의의는 견고했던 코드의 영역이 무너져 얽히게 되는 데 있습니다. 네트워크를 경로 삼은 서로 다른 코드의 침범엔 대안 접합(Alternative splicing)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대안 접합은 생물이 가지는 유전자의 다종성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유전자 발현 동안 개별 RNA에서 여러 가지의 기능을 담당하는 단백질들을 만들게 되는 방법으로, 광범위한 대안 접합이 생물에 진화적 이점을 가져다주는 조건을 이룹니다. 선택된 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부분들을 이어 붙이는 이 자연 현상의 특성과 외부에서 밀려들어온 코드가 공유하는 점은 자신의 구조를 분해해 기존의 위계질서를 재조정하고 원본과 상보적 결합을 시도하는 것에 있습니다. 50여 년 전, 체세포 분열하는 세포들의 기원을 연구한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는 ‘연속 세포 내 공생 이론(SET, serial endosymbiosis theory, 1967)’을 통해 서로 다른 성질의 원핵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공존을 이뤄냈는지 밝히며 생물의 진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가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지금의 확장된 세계에서 코드 또한 변이를 통해 생명체 혹은 사물(Thing)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움직임 안에서 어떤 모종의 형태들을 발견해 낼 수 있을지 눈여겨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