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메타버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김호원

* 2019년 출간된 김초엽 작가의 작품집의 서명이자 해당 저서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 소설 제목에서 발췌.

1.

앤드류는 대뜸 묻는다, 우리가 앞으로 춤을 추게 될 방식에 대하여. 우리는 근미래에 어떻게 춤을 추고 있을까? 금요일 밤, 침대에 누워 불과 일 년 전 사람들이 춤추던 모습을 보고 있는/있어야만 하는 앤드류는 바로 지금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좋은 때라 생각한다. 물리적 장소로서의 클럽은 전 세계적 전염병으로 여닫기를 반복하며 시공간의 흐름이 느려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또 동시에, 온라인 공간에서의 클러빙 이벤트는 나날이 새롭게 또 빠르게 등장하고 있으니. 어쩌면 기우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코로나가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찾아왔다 떠나가는 냉방병 같은 것이 되어버리면, 모든 것은 자연스레 그리고 당연히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앤드류는 이내 생각을 바꾼다, 지난 일 년간 이미 너무 많은 변화에 익숙해져 버렸다고. 금요일 밤 침대에 누워 무심히 스마트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앤드류에게 물리적 장소로서의 클럽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 이제는 낯설게 되어버린 것이다. 밀폐된 지하 공간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로 밀착되어 춤추는 모습을, 연기 속에 가득 찬 호흡을 그리고 침과 알코올로 뒤범벅이 된 바닥을 떠올리는 일이. 그리하여 앤드류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우선 오늘은, 꼭 이 금요일 밤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편이 낫겠다고. 베개를 받치고 누운 앤드류는 대신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되고 있는 디제이 믹스셋 영상을 켠다. 리듬에 맞게 발을 까딱거리며, 앤드류는 묻는다. 우리는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춤을 추게 될지. 불만족스러운 채로, 그저 발을 까딱거리며.



(이미지1) CO.KR | Boiler Room X Vans: House Of Vans Seoul (Youtube)

물리적 장소로서의 클럽이 온라인상의 공간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이미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대표하는 것은 영국 기반의 음악 플랫폼인 보일러 룸(Boiler Room)이다. 2010년,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한쪽 벽면에 고정시킨 웹캠으로 그 역사를 시작한 보일러 룸은1 클럽이나 다른 이벤트 공간에서의 디제잉을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보일러 룸은 티켓 판매 등을 통한 수익 창출을 위해 온라인 스트리밍 이전의 오프라인 공간 이벤트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보일러 룸이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클럽을 비롯한 여타 장소의 물리적 시공간을 대체하기보다는, 여러 제약으로 해당 시공간을 신체적으로 점유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보완재로서 기능해왔다고 볼 수 있다.2 보일러 룸을 비롯한 온라인 디제잉 스트리밍은 분명 클럽 문화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자기 스스로 원본의 온라인 이벤트가 되기보다는 오프라인에서의 이벤트 경험을 더욱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온 것이다.


2.

앤드류는 같은 믹스셋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 채팅창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의 방에 클럽 느낌을 내보기 위해 미러볼을 샀다는 사람의 글을 읽는다. 앤드류는 고개를 돌려 자기 방을 둘러본다. 잠들기 좋은 노란 불빛을 내는 스탠드 하나가 천연덕스럽게 서 있다. 비록 미러볼은 없지만, 앤드류는 자신의 방에서 춤을 춰보기로 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앤드류는 방 한쪽에서 나뒹굴고 있던 헤드폰을 끼우고 볼륨을 키운다. 눈을 감고, 나름대로 리듬을 타려 애쓴다. 방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도 아무래도 한밤중이니 다리는 많이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앤드류는 어정쩡한 자세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각자의 방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그러다 몸이 휘청하자 앤드류는 살짝 눈이 떠졌고, 그런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책상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들과 문고리에 걸어둔 수건. 앤드류는 순간 허탈한 마음이 들어 웃었다. 혼자 있었지만, 소리 내어 웃었다. 앤드류는 어쩌면 자신이 이러한 일상의 사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러니까 돌아오는 월요일에 다시 들여다봐야만 하는 서류 뭉텅이나 빽빽한 일정이 적혀 있는 달력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클럽을 갔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주중 한낮의 일상-사물로부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이미지2) United We Stream Tbilisi: MTKVARZE (Twitch)

물리적 장소로서의 클럽은 어떻게 마술적 치유의 공간이 되는가? 클러빙을 하나의 의례 절차로 이해해보자.3 먼저 클럽 내외에서는 일종의 규율로서 어떠한 코드가 작동한다. 이를테면 저마다의 클럽은 각기 다른 복장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주중 한낮의 의복, 즉 직장에서의 의복과는 다른 복장을 요구한다. 또한, 클럽에서 적절한 음주를 통한 자아도취는 허용되지만, 지나친 주정은 금기시된다. 이외에 클러버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때 통용되는 비언어적인 신호 같은 것도 존재한다. 이러한 코드 위에, 디제이가 군림한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비로소 클럽에서야 마주할 수 있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디제이는 현대판 샤먼처럼 클러빙이라는 의례 절차를 이끌어 나간다. 디제이는 반복적인 리듬을 토대로 어떤 클럽이나 이벤트의 성격에 맞는 믹스셋을 준비한다. 이러한 믹스셋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음악들을 통해 디제이는 클러버들을 동시에 움직이고 춤추게 하며 집단적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게 한다. 주중 대낮에는 각자 다른 지위와 다른 배경을 가진 클러버들은 주말 한밤중에 평등하고 또 동일하게 황홀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클러버들은 자기치유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직장에서의 몸을 일시적으로 망각하고, 클럽에서의 몸을 재구성하면서. 그런데 디제이들의 모습을 온라인 스트리밍하는 것으로 이러한 치유의 효과를 느낄 수 있을까? 내장을 진동시키는 음파나 감은 눈도 어지럽히는 조명 없이도 우리의 몸이 재구성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다른 클러버들 없이 오직 디제이만을 유일하게 비추고 있는 코로나 시국의 실시간 스트리밍은 하나의 의례 절차로 이해될 수 있을까?


3.

괜히 머쓱해진 앤드류는 오늘은 그저 영화를 보다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앤드류는 랩탑을 켜고 볼만한 영화를 찾는다. 그러다 광고 하나가 눈에 띈다. "콘서트의 미래는 가상에 존재합니다. 이 혁명에 동참하세요." 보아하니, 메타버스 공간에서 클럽 공연이나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다. 앤드류는 그 서비스의 웹사이트를 흥미롭게 둘러보다가 오늘, 이 새벽에, 지금 오프닝 이벤트가 열린다는 문구를 발견한다. 앤드류는 고민이 된다. 스스로에게도 민망한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한 것 같기에. 메타버스에 있는 클럽에 간다고 한들, 결국 나는 방 안에 있는데 뭐가 달라질까? 거기서 춤을 추다 눈을 뜨면 똑같이 내 방이 보이지 않을까, 아니 거기서 눈을 뜰 수 있기나 할까. 그러다 앤드류에게 몇 개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간다. FPS 게임을 할 때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아바타를 앞으로 뛰게 하며 자신의 몸을 같이 기울이고 높이 점프를 시킬 때 자신의 목이 함께 꺾이는 모습이. 그리하여 아바타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듯한 자신의 모습이. 앤드류는 메타버스 클럽에서 동기화할 수 있는 아바타를 보기 위해 오프닝 이벤트의 실시간 스트리밍 영상을 먼저 찾는다. 기왕이면 웃기고 재밌게 생긴 아바타가 많았으면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앤드류는 영상을 켠다. 모니터를 마주 보고 있는 앤드류의 얼굴이 번쩍거린다. 가상의 클럽 속에서 바삐 돌아가고 있는 레이저와 네온 조명들이 앤드류의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앤드류의 눈에 아바타들이,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다르게 생긴 아바타들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춤추고 있다. 이제, 적어도 오늘 앤드류는 더 이상 혼자 춤을 출 필요가 없다. 메타버스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는 앤드류의 손이 분주해진다.



(이미지3) Sansar 소개 창: "The future of concerts is virtual. Join the revolution."


(이미지4) Tobacco Dock Virtual: Little Gallery (Youtube)

온라인 공간 속에서 다양한 디제잉 이벤트가 개최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클러빙의 구분은 점차 옅어져 갔다. 그러던 찰나에 발생한 코로나는 방역을 이유로 물리적 공간으로서 클럽의 정상적인 운영을 어렵게 했고, 이는 독특한 현상을 낳는다. 바로 온라인 공간에서의 클러빙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클러빙을 보완해주는 데서 더 나아가, 그 자체가 원본 이벤트가 되어 오프라인 클러빙을 대체해버리는 것. 그중에서도 특히 산사르(Sansar)와 같은 메타버스 기반의 서비스는 오프라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클러빙 경험을 제공한다. 산사르는 가상현실 속에 여러 테마를 가진 클럽을 만들고 그 클럽에서 다양한 디제이와 아티스트의 공연을 개최한다. 산사르의 사용자들은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른 사용자들과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관람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다. 산사르와 같은 메타버스 클러빙은 기존의 라이브 스트리밍이 디제이의 믹스셋을 2차원 영상으로 매개해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용자들이 직접 3차원의 가상 클럽 공간 속에서 다시점/다각도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타버스 클러빙은 주술적 치유의 경험을 다시 가능하게 할까? 아바타로 대체된 모습이긴 하지만, 다른 클러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경험은 메타버스 클럽에서의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인지하는 아바타의 몸은 어떻게 구성될까?


4.

86%, 87%, 88%, 89%, … …… ………… …………………… ………………………………………… 90% … 100% 다운로드가 완료되자마자 앤드류는 기쁜 마음으로 소프트웨어를 실행한다. 로딩을 기다리는 동안 앤드류는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메타버스 클럽의 공간을 미리 익힌다. 얼른 저기에서 함께 춤추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순식간에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마친 앤드류는 아바타를 고른다. 왠지 사람보다는 외계인이 더 재밌는 것 같아 외계인으로. 그런데 방금 앤드류가 고른, 프로그램에 우뚝 서 있는 이 외계인과 온라인 스트리밍 영상 속에서 춤추고 있는 저 외계인은 무언가가 다르다. 뭘까? 이윽고 앤드류는 그것이 해상도의 문제임을 알아챈다. 프로그램 화면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 외계인의 몸에는 픽셀이 자글자글 껴있지만, 스트리밍 영상 속 저 외계인은 점 하나 없는 매끈한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앤드류는 이 외계인 역시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저해상도여도 픽셀은 여전히 화면 속을 흐르고 일렁일 수 있을 테니. 그리하여 앤드류의 외계인은 프로그램 실행 첫 화면이자 클럽 입장의 관문인 넥서스에 도달한다. 그러나 앤드류가 자신의 외계인을 움직이기 위해 W 키를 눌렀을 때, 그리고 그 외계인이 넥서스에서 첫 몇 걸음을 가상하게 내디뎠을 때 앤드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져내렸다. 그래픽을 감당하고 있지 못한 그의 랩탑 화면에서, 그의 외계인은 프레임 단위로 끊어지며 순간이동 하듯이 움직였다. 그가 방향키를 누를 때보다 조금씩 늦게, 그마저도 매우 느리게 그리고 힘겹게. 춤을 추러 가기 위해서.



(이미지5) 아바타를 고르는 장면 (Sansar)


(이미지6) NEXUS에 처음 입장한 장면 (Sansar)

앤드류는 자신을 잘 따라주지 않는 외계인을 데리고 꾸역꾸역 메타버스 클럽 안을 돌아다닌다. 다른 아바타들이 그의 외계인 곁을 스쳐 지나간다. 목각인형들처럼. 앤드류는 생각한다. 저 목각인형들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화면에서 나의 외계인은 매끄러운 몸으로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을까? 앤드류는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다른 아바타들을 바라본다. 그의 외계인보다 높은 해상도로 끊임없이, 아니 끊김 없이 춤을 추고 있는 그 아바타들을. 앤드류는 계속해서 끊기는 화면에 멀미가 날 지경이지만, 오늘은 하필이면 금요일 밤이고 또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한 것이 억울해서라도 꼭 저기 보이는 춤추는 공간에 가야만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앤드류의 외계인은 걷는다. 모두가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 메타버스 클럽 속을. 이윽고 그의 외계인이 검은 문이 보이는 어느 지점에 다다랐을 때, 어렴풋이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앤드류는 그것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여주는 공간의 음악과 같은 음악인 것을 알고 이제 영상을 끈다. 오로지 메타버스 클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지하며 앤드류의 외계인은 검은 문으로 다가간다. 웅웅대는 음악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마침내 앤드류의 외계인은, 앤드류는 그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의 외계인이, 그가 춤출 수 있는 공간으로.



(이미지7) Tobacco Dock Virtual: Great Gallery에 입장한 장면 (SANSAR)


(이미지8) Tobacco Dock Virtual: Great Gallery (Youtube)

그의 외계인은 외롭다. 아니, 앤드류가 외롭다. 앤드류의 외계인은 다른 아바타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앤드류는 각기 다른 춤이 입력된 키를 하나둘씩 차례로 눌러본다. 그러나 그 춤들은 어차피 다 똑같이 보인다. 프레임마다 끊기며. 그래서 앤드류는 자신의 외계인이 불쌍하다고 느낀다. 랩탑이 아닌 데스크탑으로 혹은 더 좋은 랩탑으로 이 메타버스 클럽에 접속했더라면, 그의 외계인은 매끄럽게 춤출 수 있었을까? 그의 외계인은 다른 아바타들과 코드를 나누며 집단적 황홀경에 빠질 수 있었을까? 이런 해상도를 가진 그의 외계인은 금요일이면 춤을 추고 싶을까? 저열한 픽셀로 꾸역꾸역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의 외계인을 보는 것이 안쓰러워, 앤드류는 랩탑을 덮는다. 한창 새벽이고, 음악 소리가 없는 방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오늘 중 두 번째로 혼자서 소리 내어 웃는 앤드류의 소리가 새벽의 방 안을 채운다.


5.

실제 세계에서 우리의 몸은 다양한 방식으로 맵핑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피부와 장기는 생물학적으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에 의해서도 다층적으로 구성된다. 물질과 비물질이 켜켜이 쌓인 우리의 몸을 통해 우리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 가상현실에서도, 우리를 대신하거나 대행하는 아바타의 몸은 다양한 물질적/비물질적 층위로 구성된다. 실제 세계의 몸에 따라, 각기 다른 하드/소프트웨어와 이를 사용하는 저마다의 관습에 따라 아바타의 몸은 다르게 지각된다. 그런데, 가상현실에서 우리의 아바타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우리의 아바타를 제대로 볼 수조차 없다면? 아바타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어 서로 동기화하지 못하고 따로 존재하게 된다면? 메타버스에서 우리의 아바타를 구성하는 픽셀은 단순한 해상도의 단위가 아니라, 재현의 단위이자 우리의 몸을 인지할 수 있는 척도로서 기능한다. 만약 누군가가 더 좋은 디스플레이와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는 자신의 아바타를 더욱 친밀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자신의 실제 생각과 행동에 매우 근접해 있는 어떤 외계인에 대해. 정말, 춤 출 수 있을까? 앤드류는 침대에 누워 책을 펼친다. 앤드류는 자꾸 눈에 밟히는 몇 문장을 반복해서 읽다가 살짝 잠이 든다.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4


해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앤드류는 책을 덮는다. 금요일 밤에 춤이라도 춰보겠다며 요란하게 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앤드류는 아직 토요일이니까, 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앤드류는 잠들기 전 눈을 지그시 감고 돌아올 평일을 생각한다. 주중의 대낮을.




1 출처.

2 Ben Assiter, “No Screenshots on the Dance Floor,” Dance Cult, vol. 12, no. 1 (2020), 출처

3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Christina Goulding and Avi Shankar, “Club Culture, Neotribalism and Ritualised Behaviour", Annals of Tourism Research, vol. 38, no. 4 (2011), 1435-53을 참고.

4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