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00에서 살아남기
유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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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2020년은 어떤 해였을까? 사실 매년, 한 해의 끝이라는 기로에 서서 그 뒤를 되돌아 봤을 때 모두에게 공평하게 좋은 해도, 공평하게 나쁜 해도 없다. 그럼에도 2020년의 감상은 조금 유별나게 모두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도, 그리 좋지도 않은 비슷한 해였다.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생겨난 새로운 규범들이 그다지 내 삶의 구성과 질서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애로 사항은 카페에 앉아 있지 못한다는 점 뿐이었다. 모두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면 좋겠으나 그럴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미술계 역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우왕좌왕하던 시기를 겪었다. 미술관은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으며 많은 행사들이 취소 혹은 유예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한편, 재난 특수의 각종 기금들이 나오면서 원래부터 불안정했던 미술인의 삶은 도리어 약간의 지원금을 통해 몇가지 선택지를 얻기도 했다. 특정 장르나 특정 방식들이 유례 없는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처럼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불가분의 값에서 어떻게 내일을 도모해야 할까. 기존의 방식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직면하게 된 새로운 환경에 의해 재정립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에 적응해 가는 중이다. 물리적 공간에 함께 모이지 않아도 수업이나 업무가 생각보다 잘 굴러간다는 것을 확인한 것처럼 말이다. 상황이 변하더라도 비물리적 만남의 방식은 계속해서 가속화될 것이다. 미술 역시 새로운 문법을 찾아야 할 타이밍에 도달했다. 죽고 사는 게 문제인 상황에서 예술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자조적인 물음은 예술이 노동인 우리에게 의미 없는 질문이다. 생존 플랜은 계속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2020년 미술계에서의 크고 작은 이벤트(주로 전시)를 돌아보며 이들이 새로운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했는지 혹은 대처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렴풋이 감지되었던 새로운 문법을 제안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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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있었나 싶을 만큼 수 많은 비엔날레가 매해 열린다. 이들은 각 2년을 주기로 타이트하게 맞물려서 돌아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비엔날레인 광주, 부산,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는 매 짝수 해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일종의 패키지 여행상품처럼 한 묶음으로 구성되어 관객들을 불러들인다. 숨가쁜 그랜드 투어 후 홀수 해가 되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등이 이어진다.
그러나 2020년, 광주와 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모두 다음 해인 2021년으로 행사가 연기되었음을 발표했다. 아마도 기간을 달리하기는 하겠으나 홀 짝의 공식은 깨졌고 2년이라는 비엔날레의 주기도 이제는 들쑥날쑥이 되어버렸다. 팬데믹 상황의 종료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행사 연기는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내년이 되어 봐야 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이다.
원래 일정대로 진행된 2020부산비엔날레는 전시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주목할 만한 선택이었다.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비엔날레는 부산을 가상의 도시로 상상하며 도시 곳곳에 작품을 설치하고, 동시에 온라인 전시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부산 비엔날레는 어땠을까? 내용보다는 전시 형식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온라인 개막식으로 막을 연 부산비엔날레는 온라인 플랫폼을 베이스로 삼았다. 이제는 모두에게 제법 익숙해졌을 메타 포트를 통해 디지털로 재현된 전시장은 여전히 능숙한 조작은 어렵지만, 실제 전시장을 충실히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방식에서 전시의 성공 요인은 디지털로 구현된 전시가 실물 전시의 파생물 수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위상을 차지했는가에 있다. 두 경험 중 한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온라인 전시는 실물 전시의 단순 재현 외에 다른 작동 방식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유튜브 컨텐츠 역시 애매했다. 언제 가능할지 모르는(물론 얼마간 오프라인 오픈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실제 전시장의 오픈을 기원하는 것으로 환원되어 버리는 전시 소개 영상이 관객 유치에 어느 정도의 효용이 있었을까. 현상에 맞지 않는 주제와 이전까지의 작동 방식과 소비 방식을 답습하는 형식은 의도를 무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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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재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국공립 기관은 어땠을까. 이들은 지난한 개폐의 과정을 반복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기관들은 한 해 동안 총 4차례, 180일이 넘는 기간을 휴관했고 12월 5일에 시작한 네 번째 휴관은 여전히 지속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경우 2020년 한 해 있었던 총 11개의 전시 중 단 한 개, 박찬경 개인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휴관의 영향을 받았다.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2020.05.22-08.23)의 경우 전체 94일의 기간 중 절반이 넘는 54일을 휴관했고 고작 40일 정도를 열었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2020.09.04-10.25)은 52일의 기간 중 27일을 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설전을 포함, 몇 가지 기획전을 비교적 오랜 기간 진행하는 편이지만 3-4달의 기간 중 거의 절반을 닫아 두거나, 휴관 도중 전시가 그대로 종료된 전시도 있다.
미술관은 언젠가 올 개관의 날을 기대하며 문이 닫았을 때도 일 년 단위로 미리 정해진 스케줄에 맞게 작품을 설치하고 전시를 오픈한다. ⟪낯선 전쟁⟫(2020.06.25-11.08)이 기념비적 날짜인 6월 25일에 개막하기 위해 별도의 일정 조정 없이 휴관 기간에 전시를 진행한 것처럼 말이다. 공공 미술관에서 정해진 일정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일정 강행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 방식만을 고수하는 일의 당위성은 충분히 검토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미술관은 전시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에 전시의 새로운 방법론 뿐 아니라 장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역시 요구된다. 이는 닫혀 있는 시간이 그저 유예된 시간이 아님을 의미한다. 물리적 공간이 당대적 시간과 맞닿았을 때 발생 가능한 분화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 지난 한 해 여러 논의가 이루어진 만큼 새해에는 더 흥미로운 시도들이 전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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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홍콩을 오가는 크리스티의 라이브 옥션은 마치 옛날 옛적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에서의 이원 생중계 영상을 보는 듯한 낡은 기시감을 주었다.** 비대면 온라인 방식과 오프라인 경매장이 결합된 혼종적 형태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어색해 보일 뿐이다. 한편, 시장의 영역에 옥션과 함께 있는 아트 페어는 대체로 규모를 축소하고 온라인 뷰잉룸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아트 바젤 홍콩을 필두로 시작된 온라인 뷰잉룸 시스템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러 아트 페어에서 대안으로 선택되었다. 아트 바젤은 약 25만명 이상이 사이트에 방문하며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고, KIAF는 끝까지 오프라인 일정을 고민하다 마지막에 온라인으로 운영을 전환했지만 매출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과가 보여주듯이 온라인 뷰잉룸이라는 시스템이 아트 페어에 적합한 시스템인지는 조금 더 고민해 볼 일이다. 이 시스템이 갖고 있는 장단점은 분명하다. 장점은 물리적 거리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가능해진 관객 수와 참여 국가 수의 비약적인 증대이다. 그러나 작품을 사고 파는 것에는 언제나 치밀한 시장 논리가 수반된다. 작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단순 취향과 감상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2020년의 아트 페어와 관련된 기사들은 대개 높은 접속자 수와 주요 작가들의 값나가는 작품들이 온라인에서 얼마나 팔렸는지 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처럼 작품의 디지털 이미지와 일련의 정보만을 통해 구매까지 이어져야 하는 온라인 뷰잉룸은 페어에 참여할 수 있는 작가 군의 허들을 높이고 만다. 철옹성 같은 시장의 진입 장벽이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새로운 작가 층의 진입은 엄격한 셀렉션의 기준보다는 저렴한 가격대를 통한 높은 접근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쉬워진다. 거래는 대상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경험, 혹은 부담 없는 가격 둘 중 하나가 반드시 충족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손쉽게 충족 가능한 것은 대체로 가격에 관한 것일 테다. 한 예로, 아부다비 아트페어는 매 회, 비서구권의 동시대 미술을 소개한다. 버츄얼 아트 페어로 2020년 11월 19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지난 해의 행사 역시 우리나라를 포함 다양한 국가의 컨템퍼러리 갤러리들이 참여했다. 어떤 식으로든 국제 무대에 작가와 작품이 소개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웹사이트에 구현된 행사장은 그곳이 비엔날레가 아니라 페어인 만큼 ‘판매’라는 시장의 최고 목적의 달성을 위한 변별 지점이 무엇이었는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현 상황의 대안을 온라인-오프라인이라는 이분법으로 소급할 것이 아니라 각 장의 기존 방법을 딛고, 이로부터 우회로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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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전시들은 일련의 상황들이 무색하게 여느 때만큼이나 많았다. 웬만해선 사람이 밀집될 일이 없으니 약간의 절차를 더하는 수고만 감수한다면 별 문제없이 전시들은 문을 열고 닫았다. 오프닝과 뒤풀이가 사라진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서도 주지 했듯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한 각종 기금들의 확대가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원 기회의 증가와 지원 규모 확대는 일시적 개선책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생태계에는 큰 균열이 가해진다. 이 문제는 꽤 오랫동안 여러 이슈들로 이야기되어왔지만, 2020년은 이 상황이 더 없이 심화된 해였다.
그럼에도 ‘산업’이라고 부르지도 못 할만큼, 한 장르가 철저히 국가의 지원금과 기금의 형식에 기대서만 생존 가능한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 예측 불가함을 예측 가능한 안정성으로 이끄는 것은 위험하지만 중요하다. 나는 미술이 어떤 대단한 가치를 표상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온전한 역할을 부여 받고 여타의 노동과 동일한 위상을 가진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미술의 형태는 가지각색일 수 있지만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주체가 단일자여서는 안된다. 이는 시장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수요와 공급의 층위를 다채롭게 하는 일, 조직적으로 존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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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서바이벌의 파이널 라운드까지 생존한 최종 우승자는 누구일까? 2020년에는 모두에게 약간의 관용이 베풀어져야 마땅한 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무(無)승자로써의 자부심을 갖자. 이 모든 것은 누구도 가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익숙한 미래일지 모른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갑작스레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느슨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연결된 징후들이 있었다. 익숙하지만 다른 것, 다르지만 새롭지만은 않은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내일이다. 긴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모든 것이 같은 색, 같은 장면으로 보인다. 터널의 끝을 상상해보자. 그곳을 무엇이라 완벽히 전제하거나 대비할 수는 없지만 그저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열심히 상상하고 틈새를 비집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회로의 거름망에 남은 것을 건져 올려 지나간 것을 갱신해야 한다. 어쨌든 새해는 밝았고 무엇도 시간을 되돌리거나 지연시킬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