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노 유키와의 대화

정서재현

콘노 유키 한국과 일본에서 미술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기획한 전시로 《애프터 10.12》(2018, 시청각), 《한국화와 동양화와》(gallery TOWED, FINCH ARTS, 중간지점 둘, 2022) 등이 있고, 미술 분야에서 한일/일한 통번역, 한일 미술씬 정보 전달, 자료 리서치 등을 하고 있다. https://linktr.ee/KONNOYUKI

재현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현재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언어와 정체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데리다를 공부하고 있는 정서재현이다. 번역, 언어, 정체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콘노 유키님의 작업을 흥미롭게 봤다. 사전에 공유한 질문지에서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다만 콘노 유키님께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경험이 콘노 유키님의 예술 작품에 대한 글쓰기 그리고 전시 기획과의 연관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렇게 인터뷰를 부탁드리게 되었다.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셔 감사하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콘노 유키님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콘노 유키 한국과 일본에서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콘노 유키라고 한다.


재현 자신을 소개할 때 명사형으로 소개하지 않고, 동사로 설명하신다.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명사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 동사로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고 생각해 인상 깊다. 혹시 이렇게 설명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콘노 2017년, 2018년에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소개했다. 초기에는 저 스스로도 비평가라고 칭하기에는 거부감이 있기도 했고, 전시 기획이나 전시 서문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 작업이 눈 앞에 있는게 아닌데 내 자신을 비평가나 미술사학자라고 칭하는게 어색했다. 지금은 아무래도 전시 기획, 미술 비평, 번역 등 그때 마다 다른 역할을 하고 있어 이렇게 소개한다.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제가 생각하는 모든 활동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제게 전시를 본다는 것은 전시 공간에서 기획자를 만나 전시에서 작품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영상 플랫폼에 올라가는 영상 작업을 보는 것, 전에 봤던 전시의 작품들 이미지를 외장 하드에서 꺼내서 보는 것, 전시에서 받아온 책자를 다시 보는 것, 요즘은 SNS에 올라온 이미지를 보는 것까지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보는 것을 조금 더 넓게 생각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단계도 다양한 의미로 해석한다. 전시를 보고 나서 어떤 전시였고, 어떤 부분이 재밌었다고 생각하는 것, 전시 공간에서 보면서 SNS에 감상평을 남기는 것, 리플렛에 직접 샤프로 그때의 감상평을 쓰는 것까지도 내게는 글을 쓰는 행위와 가깝다. 리뷰, 서문 작업, 보다 더 굵직한 작가론을 쓰는 것도, 전시 기획을 하는 것도 혹은 그 어떤 형태로 남지 않고 인상만 남기는 것도 나한테는 매체의 차이일 뿐이지 똑같이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행위와 같은 선상에 있다.


재현 글을 쓰는 행위를 넓게 이해하시는 점이 흥미롭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전시 기획을 하시기도 하는데, 자기 소개에 기획을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지, 또, 유키님께 기획과 비평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콘노 제가 기획을 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말씀드린 것처럼 제게 기획도 글을 쓰는 것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시 기획은 어떤 결과물로 보여줘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제게 기획은 결과물이 남는 것과 별개로 전체적인 플래닝에 더 가깝다. 제일여객 프로젝트, 조선통신사 월간소식 등도 홈페이지로 아카이빙 될 것도 없이 휘발된 프로젝트다보니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시 기획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런 프로젝트도,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것도 전체적인 플래닝을 하는 작업이다 보니 굳이 기획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다 못해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시 기획을 할 때에도 먼저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전시 기획으로 나와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되, 처음부터 어떤 기획을 야심차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미지1) 제일여객 프로젝트 게시물 스크린샷.

전시를 기획하는 일도 비평 글을 쓰는 것도 한 작가와 개별 작품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전시를 기획하는 것도 질문의 꼬리를 물고 사고의 흐름을 타고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글도 저한테는 정리하는 것보다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글에는 왜 거기에 있을지 모르는 문장이 있기도 하고, 전시를 본 첫 인상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서두에서 썼던 내용을 반복하면서도 변주를 주기도 한다.


재현 글을 쓰는 일과 전시 기획을 연장선상에서 이해하신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2022년에 순회전으로 기획하신 《동양화와 한국화와》와 황예랑 작가의 개인전 《미화 : 작은 꽃》에 대한 리뷰글이 연결되는 것 같아 답변을 재미있게 들었다. 항상 동양화나 한국화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둘이 비교점으로 나오지 않나. 그런 부분들을 짚은 전시인 것 같아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전시이지만 황예랑 작가의 리뷰 글에서는 ‘전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변별점에서 찾고, 전람회와 전시의 차이를 되짚어봐서 동양화와 한국화의 차이를 이야기하셨다. 아무래도 작업을 하신 시점은 조금 차이가 있었겠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작업을 연결지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비평과 기획을 연결해서 이해하시는 만큼, 콘노 유키님의 비평에 대해 더 듣고 싶다. 비평의 사전적 정의야 있지만, 비평가마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비평이 다르다. 비평을 쓰실 때 지키고자 하는 것,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콘노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쓰고 싶지 않은 글이 있었다. 비평가마다 각자의 형태, 연구 분야, 각자 추구하는 바가 있을 텐데 작품이나 전시를 시대 역사적인 이야기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을 지양했다. 처음부터 지금 시기의 작가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전시를 보는 순간의 감각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전시를 보는 경험은 나중에는 쉽게 잊고, 머릿속에 남는 것도 많지 않아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느꼈던 첫인상, 전시장에서 느낀 감각을 곱씹으면서 집에 가는 길에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곱씹는다. 전시나 작품이 이론보다 조금 더 앞서가는 것을 보고, 그걸 다시 제 말로 바꿔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순간적이고 돌발적인 감각들을 다시 글로 풀어내는 목표, 목표가 없는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재현 말씀해주신 것과 같은 순간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기도 하고, 즉각적으로 언어화 되지 않는 것 같다. 전시를 보시고 스스로 ‘격납고'라고 부르시는 엑셀 파일에 정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시를 정말 많이 보시면서도 필요한 자료나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시는지 궁금하다.


(이미지2) 격납고 스크린샷.

콘노 사실 정리가 잘 안 되고 있다. 격납고는 전시를 보고 나서 정리하기보다는 전시를 보기 전에 만드는 리스트다.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국에는 3-4일 일정으로 가다보니 제한적인 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전시를 최대한 보러 다닌다. 전시 소식을 격납고에 정리하고 동선 리스트를 만들어서 전시를 보는 식이다. 본 전시 목록만 있을 뿐, 그 전시가 어땠는지는 정리하지는 못한다. A4 클리어 파일에 전시 브로슈어를 넣고 있지만 순서와 연도에 따라 정리하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찾거나, 클래식 음반을 찾을 때에 찾는 책이나 도서 외에도 주변에 있는 것도 무작정 보는 습관이 있어서 정리가 다 안 돼 있거나 정리가 다 돼 있거나 상관없이 다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도 내 글이 어디에 있다면 정리되어 아카이빙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일단 보기만 하면 뭔가가 있다.


재현 제가 정리를 잘 하지 못해 유키님께 팁을 얻고자 여쭈어본 것인데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되려 위로를 얻고 간다 (웃음). 아무래도 전시를 정말 많이 보시기 때문에 정리가 안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지면에서 2017년에 활동을 시작하실 때 신생 공간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시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마음도 잦아들었을 법한데 여전히 많은 전시를 보러 다니시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콘노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녀 한국 동시대 미술의 목격자가 되고 싶었다.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떤 한국 작가가 활동 하고 있고, 젊은 작가들이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있고 어떤 것들을 기획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사실 일본에 살았으면 그럴만 하잖나. 그렇지만 같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있었고 심지어 저는 2006년부터 한국에서 쭉 살았는데도 동시대 미술가들이 어떤 것들을 해왔고 지금도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다. 반대로 그런 흐름들을 좀 더 세밀하게 보면 이 씬의 윤곽들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017년부터 열심히 전시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또, 글이나 이론에 앞서는 것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전시를 많이 보게 됐다. 학교에서 실기를 한 게 아니고 예술학과, 이론과를 나와 책을 읽고, 어떤 자료를 찾고 검색하는 일들을 많이 해왔다. 어떤 경우 책이나 학자들보다 작품이 더 말을 잘해주는 것 같다. 전시나 작품을 어떤 철학자의 글을 인용하거나 반영해서 준비할 수는 있겠지만,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전시를 보고, 전시 서문을 읽거나, 읽지 않더라도 작품을 유심하게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전시를 열심히 보러 다닌다.


재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와우산 타이핑 클럽에 쓰신 글을 다시 훑어봤는데 그 중 특히 연말 결산처럼 전시 결산을 해주셨지 않나. 연말 결산 때에 좋았던 개인전, 기획이 좋았던 전시 등을 구분하셨다. 개인적으로 전시를 보고 나면 작품이 좋았던 것인지 기획이 좋았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좋은 기획이라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거나 작품과 기획의 연결이 인위적이지 않게 만들어 뒤로 물러나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한참 뒤에 작가들의 다른 전시를 보고 나서야 이전 기획이 좋았던 것을 알기도 하고. 유키님은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하시는지 궁금하다.


(이미지3) 와우산 타이핑 클럽 스크린샷.

콘노 전시는 똑같은 규격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나 홈페이지가 아닌 만큼, 각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간마다 다양한 변수가 있다. 어떤 공간은 계단이 있고, 눈높이가 다르게 설치될 수도 있고, 구조물이 들어갈 수도 있고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고 선택지가 많다. 아무래도 공간은 작품도 있겠지만, 작품을 보는 사람이 동선을 따라가는 구성이 있지 않나. 동선까지 고려해서 만드는 전시들을 저는 되게 인상 깊게 본다. 또, 전시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전시 공간에 가기 전부터 시작이다. 어떤 홍보물이 올라가고 어떤 디자인이 올라가고 누가 서문에 글을 쓰고, 어떤 느낌으로 글을 쓰고, 계단을 내려갔을 때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작품이 무엇인지, 캡션이 있는지 없는지, 시트지로 글이 올라갔는지 아닌지, 큐알 코드인지 아닌지. 전체적으로 이 모든 것이 빠짐없이 호흡을 잘 맞춘 느낌이 드는 전시가 기획력이 좋은 전시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못 해본 시도를 해냈다고 하는 전시는 관심이 없는 편이고, 각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강약을 주는 전시를 기획력이 좋은 전시로 간주한다.


그와 달리, 좋은 작품은 전시 주제나 작가가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을 뛰어넘는 작품, 여러 개 작품 중 긍정적인 의미로 전체적인 인상을 벗어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해결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끌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 것 같다.


재현 전시 기획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때 생각이 기발한 것보다 마치 잘 브랜딩된 유저 인터페이스를 설명하시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콘노 아무래도 전시는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개입되는 것이라 경험을 중요시한다. 예술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큰 캔버스를 앞에 두고 에어브러쉬를 쓰든 3D를 쓰든 손으로 만드니 모두 신체에 영향을 받지 않나. 그런 것들까지 고려를 해서 공간과 호흡을 잘 만들어내는 전시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전시에 끌리기도 하고, 기획할 때 많이 참고가 되기도 한다.


재현 앞서 말씀하신 기획자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무언가, 전시장에 도착한 순간에 느낀 것, 이론에 앞서는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무언가, 언어화되지 않는 작품의 시각적인 언어를 비평가는 글로 풀어낸다. 그런 작업이 개인적으로 일종의 번역이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비평글을 쓰시느니 만큼 콘노 유키님만의 비평 글에 대한 방법론이 궁금하다.


콘노 리뷰 글도 서문도 글이 너무 설명적이면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글과 작품이 동등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번역이라고 이야기하셨지만 글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철학자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글을 쓸 때 그 작가들이 어떤 글을 읽었고 어떤 이론가를 좋아하고 어떤 소설에서 모티프를 따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만 작품과 글 사이에 또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글이 작품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거나 수식해 주는 것과는 다르게 글은 글 나름의 세계가 있고 작품은 작품 나름의 세계가 있어 둘 사이의 호흡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작품을 이해할 때 이론들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철학, 이론, 선행 연구들은 구속력이 강해 언제든 빨려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일부러 글을 쓸 때 거기에서 더 벗어나고자 한다. 작가들은 철학자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곱씹고, 일종의 번역으로, 그걸 페인팅이나 다른 매체로 표현하는 것이니 이론에 구속되지 않고자 한다.


재현 저는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이론이 없으면 쓰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해볼 지점을 말씀해주신 것 같아 큰 도움이 되었다. 질문을 조금 바꾸어서 최근 한국어로 강의하는 것과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각각 SNS와 기사에 개시하셨다. 아무래도 SNS에 올리신 것은 길이가 짧고 일본어 글의 경우, 구글 번역기를 돌려 읽을 수 밖에 없기에 콘노 유키님의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구분을 잘 파악하지 못했는데, 콘노 유키님께 입말과 글쓰기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콘노 ‘父国語の書き手:韓国語を身に纏って’(이하 부국어 글쓴이, 링크)는 패션이나 장식을 넓게 해석하고 다루는 주제로 청탁을 받고 한국어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쓴 글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전시에 대한 인상이나 그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라면, 작년부터는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고민했다. 매번 한국을 오가면서 전시를 보고 전시 서문이나 리뷰글을 쓰고 미술 잡지에 글을 실으며, 나는 왜 이 언어에 집착하나 고민했다. 이번 글에서는 저한테는 모국어가 아닌 글로 글을 쓴다는 것을 되돌아봤다. 글에서 저는 어머니 모 대신 아버지 부를 써서 ‘부국어'라는 말을 썼다. 모국어는 아무래도 너무 자연스럽게 본인의 언어로 키워지만들 수 있지 않나. 그렇지만 한국어는 문법, 띄어쓰기, 발음도 선생님에게 배워야 했다. 코로나 이후에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한국어로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씩 렉이 걸린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가족들이나 주변인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하지 않고, 모국어가 가지고 있는 구속력이 강하다 보니 발음부터 문법, 글을 쓰는 법, 듣기까지 내가 습득한 언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외국어, 부국어로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질서에, 규칙에 따라서 글을 쓰는 것일텐데, 이 규칙이 단단하게 구속적이지 않고 약간 아슬아슬하게 어느 순간 붕괴될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내게는 외국어이다 보니 선택지가 너무 많은거다. 말을 ‘고른다’고 할 때, ‘선정’ 혹은 ‘선택’ 중에 어떤 것이 더 한국어로 적합한 걸까 고민한다던가. 그런 선택지들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어떤 하나를 글을 쓸때 선별하는 과정에 따라서 글을 쓰는 것 같지만, 동시에 부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순식간에 그런 규범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위태로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재현 자신의 한국어 혹은 일본어 글쓰기 문체와 ‘정석적인' 한국어 혹은 일본어 글쓰기 문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가령, 한국에서는 ‘-적'과 같은 일본어 중역 번역투를 지양하며, ‘한국어다운' 한국어 글쓰기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을 오가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오가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한국어 같은 일본어, 일본어 같은 한국어 글쓰기가 콘노 유키님만의 문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중첩에서야 말로 ‘한국어다운' 한국어가 무엇인지, ‘일본어다운' 일본어가 무엇인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이런 중첩의 언어에서 자신의 글쓰기와 각 국가 혹은 국가 내의 문단이 지향하는 ‘~다운' ‘~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콘노 ‘~적'이라는 표현이 일본어에서 온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두 언어를 번역할 때 한국어에서 더 적극적으로 ‘~적'을 사용하는 걸 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정상적으로'도 그렇다. 일본어에서 ‘정상적'으로 한다고 할 때 ‘-적'이라는 한자가 붙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정석적인, 정통적인 글이 얼마나 정석적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일본어도 당연히 마찬가지고. 나는 한국어로 번역하고,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할 때 나타나는 번역투를 좋아한다. 이제는 AI도 글들을 너무 매끄럽게 번역하는 추세가 되었지 않나. 기계가 잘 번역해주는 상황에서 저는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번역투를 사랑하고, 번역투가 주는 어미를 잘 활용하고 싶다. 번역투를 좋아해서 영문으로 번역할 때 사람들이 힘들어하지만, 영문으로 번역할 때 힘들어하는 포인트를 남기고 싶어하기도 한다. 한국어를 처음 공부할 때 교과서를 읽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니까 종이 사전으로 찾아봤다. 사전을 찾아보면 의미가 여러 개가 있고, 일본어 의미와 꼭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사이에서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이 잘 눈치채지 못하는 언어적 묘미를 제 스스로가 발견하기도 하는 것 같다. ‘부국어 글쓴이'에서도 맨 마지막에 일본어 어감과 한국어 어감을 미묘하게 섞은 표현들을 많이 썼다. 예를 들어 저는 개인적으로 ‘글쓴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글 쓰는 이'가 아니라 ‘글쓴이’ 라는 과거 완료형인게 좋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지만, 사람들한테 전달됐을 때에는 완료된 상태고 거기에 제가 있건 없건 상관이 없다. 제 손을 이미 떠나 보낸 것이니까. 또, ‘더 나아가' 라는 표현을 쓰지 않나. 저는 그 말이 좀 재밌다. 일본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어서 그런지 저한테는 글자 그대로 읽힌다. 더 나아간다, 그런 과정을 포함해 글자 그대로 뉘앙스를 생각해서 글에 쓴다.


재현 콘노 유키 선생님은 모국어가 아니어서 어떤 단어가 적합한지 고민에 빠진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오히려 모국어가 아닌 덕분에 가능한 글쓰기를 보여주신다고 생각한다. 모국어는 당연하게 여겨져서 각 단어를 그렇게 세밀하게 보지 못할 때가 있는데 되려 콘노 유키님께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덕에 이런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다.


콘노 요즘은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장난 같은 뉘앙스를 살려서 글을 쓰고 싶다. 그쪽 나라말에 맞춰서 좀 더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것도 유의미하고 재밌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좀 더 언어적 재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충분히 있을 것 같다. 거칠게 말하면 그건 어쩌면 저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재현 이동에 대한 감각도 남다를 것 같다. 전시를 보거나 다른 일을 수행하기 위해 공항을 자주 넘나들고, 국경을 자주 넘나들고, 두 국가 간의 바다를 자주 건너고, 그러다가 보면 가끔씩 가로막히기도 하고 (정치 경제적인 갈등으로든, 코로나 등으로든, 혹은 개인적인 다른 경험도 있을 수 있겠다), 어떨 때는 이 이동이 너무 익숙하고 친숙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콘노 유키님에게 이동은 어떠한 의미인지?


콘노 어떤 교통 수단에 탑승한 이동 자체는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생각을 활성화시키는 수단 같다. 저는 전철, 비행기 탑승 등 틈새 시간에 집중을 잘한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움직임은 단순해보이지만, 그 안에서 계속 생각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고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자꾸 기억 속에 내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도 있고…… 요즘에는 그런 특성이 글에 반영되는 것 같다.


전시를 보고 글을 쓸 때도 처음에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지만 글을 쓰는 것은 노트북 앞에서 하지, 전시장에서 하지는 않지 않나. 그런 것처럼 시차(時差)가 존재하고, 보는 시차(視差)도 거기에 발생할 수 밖에 없지 않나. 그때 봤던게 지금 보면 또 다르게 보이고. 조금 더 이해가 더 잘되기도 하고. 물음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물리적인 이동 자체가 그런 생각을 활성화시키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도, 작가도, 기획자들도 활동한다는 말을 쓰지 않나. 비평가로 활동한다. 그런데 그 활동이라는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한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제가 생각하는 활동은 액티비티가 아니라 무브먼트인 것 같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니까. 또 많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주로 저가 항공을 타고 오가기 때문에 나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을 가지고 다니는 편인데, 한국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은 돈키호테 같은 곳에서 이런 저런 선물들을 사서 비행기를 탄다. 그런데 비행기가 추락할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그 선물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선물을 받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생각한 마음으로 가는 건가. 그런 생각도 한다 … 사실 이 이야기는 작년에 권 사에 작가 책(『“조난당하신 겁니까? … 그러세요?”(불신지옥 편)』)을 번역하면서 공감한 내용인데요, 비행기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을 지나가잖아요? 떠날 때 불안감과 도착했을 때 안도감 같은 심리적인 변화도 저한테는 이동의 하나입니다.


재현 (웃음) 유키님께서 작년에 북서울미술관에서 주최했던 북페어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로그 출판사와 후쿠시마현에 다녀와서 『로그“조난하신 겁니까? ... 그러세요?”(불신지옥 편)』를 출판하시고 부스에 참여하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실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질문을 꾸렸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실 줄 몰랐다.


콘노 그것도 맞다. 로그는 출판사가 아니라 동료 작가, 기획자로 꾸린 팀?인데, 각자 가지고 있는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후쿠시마와 미야기를 방문했다. 로그에서 출간한 『로그』도 제가 과거에 후쿠시마로 가서 경험했던 일이나 가지 못해서 겪은 것들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그렇게 폭넓게 시간이랑 공간이랑 왔다갔다 하면서 글이라는 형태로 사유를 엮어가는 방식이 그것 또한 저한테는 이동인 것 같다. 번역도 그렇고. 시선이, 시점이 이동하는 것이다 보니.


(이미지4) 로그. 이미지: 콘노 유키 제공.

재현 두 언어에 대한 감각과 두 국가를 오가는 경험이 어떻게 예술 작품을 보는 일,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일, 전시를 기획하는 일에 어떻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콘노 2010년대에 키보드로 글을 쓰는 게 말하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소통의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SNS도 그렇고, 포털 사이트가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글만 쓸 줄 알면 말하듯 소통하는 시기였다. 저는 2010년대 페이스북을 시작했고, 사람들도 그때 문자 메시지처럼 SNS로 연락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학교를 막 다니기 시작했을 때 듣기는 할 수 있었는데 말하기가 어려웠다. 발음 차이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정당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열심히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이 사람이 한국말을 아예 할 줄 모른다는 식으로 취급한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잘못 알아듣는다고 해서 말을 못 하는 것도, 거기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2010년대에 소통의 변화가 생겼고, 그때 한국에서 자라고 타자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글을 쓰는 일과 말을 하는 일이 거의 비슷한 감각이 되었다. 한글 타자는 기본적으로 중간에 언어를 바꾸는 일이 없다. 나도 그렇게 작업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일본어로 전시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할 때 사고의 흐름이 자꾸 끊기더라. ‘부국어 글쓴이'에서 쓴 내용인데, 일본어로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한 적이 있다. 일본어는 키보드를 치면 중간 중간에 변환키를 눌러 한자, 가타카나, 히라가나로 변환해야 한다. 중간에 마침표를 찍고 한자로 바꾸고, 가타카나로, 히라가나로 바꾸다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 글자를 썼는지 잊게 된다. 그만큼 한글로 타자를 치는 것이 너무 익숙해서 사고의 흐름이 점점 끊기는 일들이 발생하다 보니 타자를 치는 방식에 따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대적 변화와 제 작업 방식 때문에 글을 쓰는 것과 말을 하는 것이 비슷한 층위의 일이었다고 답하겠다.


재현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많이 해오셨다. 팬데믹 시기 때 그간 한국의 전시를 되돌아보는 조선통신사 월간 소식, 한국과 일본의 전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 파도 그래프, 한국에 오실 때 이동 경로를 올려 같이 이동하며 대화하는 참여형 프로젝트 제일여객,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순회전 《한국화와 동양화와》(gallery TOWED, FINCH ARTS, 중간지점 둘, 2022),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의 작가들을 선보인 《한국에서의 8명》(파프룸 갤러리, 2019) 등과 같은 작업들 말이다. 두 국가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마주하는 어려움이나 즐거움, 혹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지?



(이미지 5) ⟪한국화와 동양화와⟫(2022) 전시 전경. 이미지: 콘노 유키 제공.

콘노 제일여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제일여객은 그 씬 안에서 다른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한국와 일본을 연결하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가교 역할이라고는 할 수 있겠다. 다시 질문에 답하자면 어려움이 많다. 2006년에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한국에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주변에서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거기에 야심, 열정, 욕심도 있는데 가교를 꼭 해야하나 하고 생각한다. 내 기획들은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작고, 어떻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전시가 가교 역할을 하긴 하겠지만, 동시에 가교 역할, 국교, 외교적인 역할에서 이 전시들이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또, 가교 역할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운 것이 가교 역할이 내 장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언어를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양쪽 씬을 해상도 높게 알고 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가교 역할의 호흡을 잘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화와 동양화와》는 한국과 일본의 순회전이라 가교 역할이라고 이야기를 하신 것 같지만, 나는 두 국가 간의 역사를 모두 뭉뚱그리고 그럼에도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 당시에는 코로나로 모두 단절을 겪으면서 교류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서로 거리도 가로막히기도 했지만 교류는 여전히 가능하다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단순히 친분으로 이루어지는 교류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다루지 않는 역사와 같은 주제를 전시로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 당연히 서로 역사를 알 필요도 있고.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역사나 사회적 분위기에 보다 더 개입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게 지금 가교 역할을 하면서 나중에 해볼 수 있는 방향성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지6) 인스타 23년 결산 게시물 스크린샷.

재현 작년에는 00년 연말 결산을 대신해서인지 인스타그램에 몇몇 전시들에 대한 생각을 남겨주셨다. 주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싶은 전시', 무엇을 어디에 놓고 고민하는지 돋보이는 섬세한 전시’, ‘올해 발견한 작가’ 등으로 구분하셨다. 어떤 전시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인가? 설명하기 어렵다면, 선정하신 전시가 왜 머릿속에 맴돌았을까?


콘노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코로나 때문에 일본에서 나가지 못했고, 그 결과 한국에서 전시를 거의많이 보지 못했다. 한 데 비해 2023년에는 1년 동안 꾸준히 한국 전시를 본 만큼, 정리를 하고 싶어서 원래 별개로 글을 준비하고 있었다. 독스로 글을 쓰다가 너무 내용도 길어지다 보니 간단하게 와우산 포맷으로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링크)에 올리게 되었고, 그걸 보고 질문을 주신 것 같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전시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전시를 보고 즉각적으로 어떤 부분이 섬세하게 만들어졌고, 관람객들의 어떤 부분까지 고려했고, 작가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관심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 느껴지는 전시이다. 다른 하나는 작품이 무슨 의도로 여기에 놓여있고, 작가가 무슨 의도로 작업을 했는지 궁금해지는 전시다. 예를 들어 김민애 작가의 개인전 《거인》(원앤제이갤러리, 2023)(링크)이 그랬다. 이 전시는 되게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미지 7) 《거인》(원앤제이갤러리, 2023). 이미지: 콘노 유키 촬영.

금색 테이프가 마지막에 세심하게 붙어 있었는데, 작가가 단순히 보여주기식으로 만든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 전시를 무어라고 할 수 있는지, 작가가 어떤 부분을 고심해서 만들었는지 이걸 언어화 하고 싶다 보니 글을 쓰게 된다. 물론 제 글은 항상 과정 중에 있는 글이지만, 그 전시의 어떤 부분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 글을 쓴다.


재현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들을 언어적으로, 인식적으로 무엇이라고 파악하기 전까지 자꾸 곱씹게 되는 것 같다. 혹 앞으로 계획이나 곧 공개될 전시나 글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콘노 올해에도 제일여객은 계속할 것이다. 2월에 일본 도쿄에서 한국 작가 다섯 명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는 전시를 기획한다. 한국에 가는 것이 쉬운 일임을 내가 몸소 증명하듯이 시간 맞춰서 보러 와 주시면 감사하다. 또, 9월에 일본 작가 야마모토 하나와 한 분과 한국에서 개인전을 같이 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아 무섭다. 더 세밀하게 전시를 준비해야할 것 같고, 서문을 큐알 코드로 붙일지드가 아니닌 종이로 붙일지 서무문이 붙어야 고민해야 할 것 같고, 이런 게 돌아오는 것 같아 무섭다. 그 외에는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송민정 작가의 ⟨커스텀⟩과 김익현 작가의 ⟨빛 속으로⟩를 다루는 글이 공개될 예정이다. 사실 두 전시 모두 코디네이팅 역할을 내가 부분적으로 담당했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 전시를 만들고 작품을 같이 만들고 경험하는 일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험한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같이 작업을 해서 좋았다 재밌었다로 끝나지 않고 결국에 보는 사람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보는 사람이 침잠하는 형태에 주목해서 썼다. 그렇게 돌아가고 돌아가는 글들이다. 2월에 『그래피비티 이펙트』 8호에 수록될 예정이다.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다.


재현 이렇게 시간과 이야기를 나누어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