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와의 대화

김여명

여명 먼저 바쁜 연시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하다. 앱스를 공동 운영하는 김여명이라고 한다. 아마도 앱스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마코(Maco)'는 'Making Connection'의 준말로, "동시대 예술이론과 현장에 관한 연구 공동체"로 활동하고 있다. 단체명과 설립 취지, 설립으로부터 지금까지의 행보를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좋겠다. 앱스가 처음 시작할 때 공동으로 소개글을 작성하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과정 중 하나였다. 마코의 소개글에도 괄호 안에 “변화를 구축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 말이 괄호 안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진주 우리는 에스파처럼.


준혁 에스파 아니고 뉴진스.


진주 우리는 뉴진스처럼 운영하고 있다. 뉴진스에 보컬, 댄스, 리더 등 명확한 역할 구분이 없듯이, 다섯 멤버가 전반적인 운영을 같이 한다.


선호 나와 민주는 2021년에 6월에 합류했다. 마코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열심히) 읽어 주는 사람이다.


유준 나는 마코에서 박유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창립 멤버다. 나의 역할은 편집자고, 멤버들이 글을 쓰면 읽고, 교정, 교열 및 편집 등, 발행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한다.


준혁 웹사이트 관리와 정산을 담당한다.


(이미지1) 마코 웹사이트.

여명 이번 인터뷰에 마코와 함께 또 다른 웹진(겸 매거진을 겸하고 있는) ‘마테리알’을 섭외했다. 웹과 매거진의 합성어인 웹진은 뛰어난 접근성과 초기 비용 마련의 용이함, 비교적 정기 발행이라는 틀에 그다지 부합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간의 느슨함이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앱스의 경우 공동 운영자들이 그때 그때의 현장 이슈에 대응하는 식으로 글을 모으고 발행하는 한편, 마코는 정해진 발행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을 발행하는 과정과 운용 방식에 대하여 말씀 부탁드린다. 발행하는 글들의 종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유준 마코가 쓰는 글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연구(리서치)이고, 다른 하나는 쪽글(서브 텍스트)이다. 두 글의 기본적인 차이는 볼륨이다. 마코의 모든 글을 비평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비평이 아닌 ‘연구’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연구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학계의) 형식적인 틀을 충족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인 저널에 올라가는 논문에 준할 정도로 레퍼런스가 확실한 글이자, 자기 캐릭터에 기반한 이야기를 꾸준히 한다는 점이 연구의 특징이다. 쪽글은 그때 그때 이슈에 맞서는 글이라든가, 쓰고 싶은 내용들, 각자에게 흥미가 있는 내용들로, 조금은 가벼운 글이다. 처음에는 글을 매달 올렸다. 3, 6, 9, 12월에는 연구를, 그외에는 쪽글을 발행했다. 2020년에 마코를 설립한 후 그 규칙을 꽤 성실하게 지켰다. 매달 업로드한 수준이다. 이 달에는 연구가 올라가고 그 다음 달에는 쪽글이 올라가고 그런 것들이 조금 형식적으로 사람들한테 보이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설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 각자 생업이 바쁘기도 하고, 글을 한 편 한 편 쓸수록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부담이 됐던 것도 있다. 2020년에 썼던 글을 보면 어떻게 저런 걸 썼나 싶은 글들도 있다. 점점 마코에서 글을 쓴다는 게 약간은 무거운 일이 되어 버렸는데, 다른 멤버들도 그런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구태여 우리가 만든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서라도 활동을 지속하려 노력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마코 내 관용적 표현이기도 한데, 믿음의 벨트 때문이다. 각자가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는 서로가 잘 알고 있다. 하고 싶은 것, 지향하는 글, 쓰고 싶은 내용을 서로 떠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호간 믿음의 벨트로 이루어진 느슨한 연결의 모임을 지향한다. 그래서 이 달의 글이 조금 늦게 올라가더라도, 그게 의도한 게 아니라는 것을 믿음으로 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행의 주기, 간격이라든가 처음에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형식적인 틀이 초기 설계보다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진주가 좀 더 덧붙여 주면 좋겠다.


(이미지2) 마코 웹사이트 소개 부분

진주 이 인터뷰가 1월 초에 진행되고 있는데, 2023년 11월 원고 발행을 늦춘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다. 부담이 생겼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그 부담이라는 건 공동 편집, 공동 크리틱을 하는 공동체다 보니까, 각자 자신의 글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 것 같다는 뜻이다. 초기 글은 엄청 거칠거나 느슨한 글이 많은데, 지금은 훨씬 깊어지고 인텐스해진 것 같다.


여명 글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견디기 힘든 한편, 글 쓸 시간이 적은 직장인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기회가 소중해지고 동료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마감은 계속 늦고 있다.


준혁 사회생활 시작 후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고, 사람 만나는 일도 부담스러워지는 감도 있어서. 이렇게 같이 연구하고 글쓰는 동료들이 있어서 좋다. 각자 바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글을 아예 안 쓰거나 모임을 중단하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업로드 주기를 조정해서 귀한 동료를 지키면서, 느슨하지만 아예 손을 떼지는 않고 그때 그때 올리는 방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여명 개인적으로는 미술계의 모든 것이 1년 주기로 돌아가다보니까 질리게 되는 감이 있다. 전시나 리서치나 모든 것이 다 1년 단위이고, 사실 1년이라고 해도 실질적으로 투여 가능한 시간은 5~6개월이다. 오리엔테이션 한다고 한 달 지나고 정산해야 되고, 그래서 이게 항상 이렇게 급한 호흡으로만 가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회의감이 들고, 긴 호흡으로 지속할 수 있는 활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 활동의 중요성을 점점 더 체감하게 된다.


선호 각자 연구가 심화되다 보니, 글을 빨리 발행하기보다는 내 연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시간 투자를 조금 더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전엔 마감에 늦으면 속상했는데, 지금은 청탁 받은 글도 아니고 개인의 연구인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아도 글을 쓰기 위해 서로를 지켜봐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여명 글을 발행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앱스의 경우, 모두가 1차로 원고를 쓰고 내부적으로 크리틱을 거친다. 이때 구글 닥스 메모로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 가고, 이를 반영하여 최종 원고를 완성한다. 이 공동 편집이라는 과정이 서로의 관심사와 관점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진주 우리가 너무 서로에게 많은 짐을 쥐어 준 것은 아닌가 걱정한다. 우리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하지 못한다.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고,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자유구나 싶으면서도 그 대가로 모두의 관심사를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 달의 원고를 쓸 3명을 정하고, 3명이 각자 주제를 고른 뒤 피드백을 한다. 3가지 주제에 대해 다섯 명 각각이 코멘트를 한다. 그 주제에 대해 각자 서로 다른 피드백들을 해 주는데 어쨌든 세 가지의 주제에 대한 다섯 명의 코멘트이기 때문에 방사형이라는 생각도 든다.


준혁 설립 초기에 진주, 준혁, 유준이 있을 때 뭔가 같이 해 보려 하긴 했다.


유준 본 것을 뛰어가듯이(이하 ‘본뛰’). 백지숙 큐레이터의 책 제목을 패러디한 건데, 그분이 걸어가면 우리는 뛰어가자고 했던 건데. 하나의 주제를 놓고 하려고 했던 것을 실패했다.


준혁 시작할 때도 각자 연구가 목적이었으니까 그렇게 했고, 관심사나 전문성이 서로 맞지 않는데 꾸준히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주제 정하는 일에 좀 회의적이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명 ‘본뛰’ 때 어렵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웃음).


진주 편집 과정에 관해서는 선호가 에피소드가 있지 않나?


선호 혹시 그건가? 나는 궁금한 것도 많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 분야를 공부할 때가 많아 코멘트를 많이 남긴다. 그리고 글이 발행되고 그게 반영이 됐는지 튕겨나갔는지 확인한다. 코멘트가 튕겨나갈 때 그 사람의 기준을 확인하게 된다. (내 글이 아니니까) 글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각자 선택하는 것인데, 항상 대화를 많이 하고 그걸 확인하면서 이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이해를 하게 되고 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준혁 편집은 유준과 민주가 해 주고 있다. 공부하고 싶은 것도, 연구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아서 연구자 사이 통용되는 글쓰기 형식을 잘 몰랐다. 편집 과정에서 그 점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개인적으로 그외 따로 정한 글쓰기 규칙도 열여섯 개 정도 있다.


여명 네?


유준(채팅) 그런 게 있었다고?


여명 다음에 알려 주시길.


준혁 그런데 둘이 서로 부딪힐 때는 편집자의 기준을 따른다. 종종 입에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진주 준혁이 말했듯 유준과 민주가 주로 편집을 한다. 문단 간의 연결이나 원고를 돋보이게 할 만한 장치들을 중점으로 편집한다. 그런데 그 허들이 낮지는 않다. 우리가 학술지를 표방하고 있다 보니까 그 규칙을 되게 엄격하게 만들어 놨다. 그걸 받아들이고 수정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도 너무 다르다. 말투와 선택하는 단어까지. 그걸 필자가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유준 그런데 나는 이런 부분이 학술적 공동체 동료들이 가지는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의 코멘트가 아니꼬울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규칙, 정확성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걸 수도 있고. 심사위원은 내 글의 첫 독자다. 글쓴이는 A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온당하게 담기지 않을 때도 왕왕 있다. 마코의 편집은 첫 독자이자 마지막 독자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간극도 약간 있지만, 어쨌든 최종적으로 편집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개인이라 편집의 권한이 너무 센 건 아니다.


선호 첫 교정 때 너무 아팠다. 이런 교정, 교열, 윤문 경험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어서 어리둥절할 때도 있었고. 그런데 몇 번 과정을 거치다 보니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요새 또 느끼는 것은 편집자 두 분이 글 쓰는 나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코멘트의 히스토리를 보면 편집자가 어떤 배려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준혁 선호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편집에 집중한 나머지 내용에 대한 감상이 누락될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부분을 보충해 주는 사람이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명 나는 우리 팀에서 코멘트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냥 수용하지 않는 건 아니고 왜 수용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변명을 많이 하고 방어를 계속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되면서 스스로 고칠 때가 많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다뤄온 주제의 광범위함도 흥미롭다. 앱스의 친구들은 주로 ‘시각 문화’로 통칭되는, 스크린 기반 문화에 공동의 관심이 있다는 점이 결성의 계기가 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마코는 회화, 예술경영, 비교적 가벼운 전시 및 작품 리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 받아야 하는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선 질문에서 마코를 웹진으로 일단 정의했으나, 글의 주제가 광범위하다는 특징은 특정 주제를 위한 웹진이라기보다 연구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조금 더 보여 주는 듯하다. 마코가 주로 겨냥하는 독자가 있다면, 어떤 독자일까?


준혁 주제 범위가 넓은 건 진주가 좀 신경 써서 구성한 게 있다. 진주가 말해 달라.


진주 일단은 처음 결성 시 유준과 내가 학교에서 논문을 쓰고 있었다. 당시에 우리가 쓰는 글은 연구자의 태도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래서 학술적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게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했다. 유준은 사회학 기반의 연구자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미술 기반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나 또한 과거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술에 국한된 이야기보다는 서로의 분야에서 각자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준과 나의 두 가지 주제에 국한한 채 둘의 만남을 모임이라 부를 수 없지 않나? 둘이서 어떤 모임을 만들기로 결심을 하고서, 마침 예술 경영, 정책 분야에서 일하고 있던 준혁을 섭외했다. 준혁은 데이터 분석을 잘한다는 강점이 있다. 가끔 정책 토론장 같은 데서도 발언을 한다. 그렇게 다른 관심사를 가진 세 명이 모였고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진 우리를 연결해 보자는 의미에서 ‘Making Connection’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처음 2년 정도는 셋이서 글을 쓰다가 어쨌든 우리의 글이 아닌 활동의 범위는 미술에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미술과 가까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민주는 완전히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획자이자 비평가였고, 선호는 중간자적 위치였다. 선호는 작가이자 기획자이고, 실용적이면서도 감정을 책임져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가 처음 가져온 글 주제는 ‘중재’였는데, 실용적이면서도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는 감정의 부분을 들추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본다. 그 외에도 예술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여명 함께 활동하다 보면 관심사가 비슷해지는 현상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떤가?


준혁 그렇다기보다는 각자의 주제를 계속해서 끌고 나가며 점점 더 변별점을 찾아가는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몰두하는 주제가 다르다 보니 서로 배우게 된다. 각자 주제가 있어서 좋은 점은, 진주는 중세 미술의 전문성 예를 들면 캔버스가 돛에서 나왔다는, 미세한 사실을 가지고 있고, 각자 이렇게 깊이 몰두하는 주제가 다르다 보니까 서로 배우게 돼서 그게 좋다. 선호의 주제는 예를 들면 친절함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삶을 살면 살수록 사람의 관점이 얼마나 넓고 다르고 다양한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게 되고, 연구자로서 또 그 연구 결과를 사람들한테 소개하는 사람으로서 그게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요즘에 계속 중요하게 느끼는 게, 미술계 전문가들이 철학, 미학, 미술사 이런 것만을 배웠는데 이제는 더 많은 학문을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에는 글마다 독자가 다르다. 그에 따라 배포 과정도 달라진다.


진주 마코의 글에는 콘텐츠가 마를 새가 없다.


여명 우리도 쓰다 보니까 갑자기 이게 더 나아졌다면서 프로포절에 발표한 것과 항상 다른 글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다(예를 들면 나). 이럴 거면 편집 회의 뭐하러 하냐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래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도 있다.


진주 궁금한 점이 있는데, 앱스가 공동 의제로 삼는 ‘스크린 기반 문화’는 어떤 것인가?


여명 앱스의 모두가 스크린 기반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주 어렴풋한 관심이라는 점을 먼저 말해야 될 것 같고……. 용어 자체로는, 회화,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영화, 프로젝터, TV 등 스크린을 사용하는 모든 예술 작품과 대중 문화와 인터넷이라든지, 스크린을 인프라스트럭처로 경유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말로, 내가 지어냈다.......


준혁 글을 쓰고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언론의 역할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앱스는 주제가 있는데 의제 설정을 어떻게 하는가?


여명 5호까지 나왔는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게 접근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 5호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것도 해 보고 저런 것도 해 보면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이런 주제에 수요가 있구나 이런 점을 깨달아가고 있다. 매번 주제의 시의성 고민은 당연히 한다. 언론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엄청 공감을 하는 바이고 사실 우리에게 미술 여론이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걸로 뭘 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속세의 이야기에 따르면 비평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죽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관하여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 개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 같은 경우에는, 특히 연구의 목적이 아니라면, 글을 쓸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을 아예 거치지 않는다. 글감이 제게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으른 필자이고. 비평이, 특히 (앱스가 지향하는 것처럼) 도록에 수록되지 않는 글(어느 것에도 기여할 필요가 없는 글)은 정말로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글쓰기의 어떤 동기도 생겨나지 않는 것 같다. 앞에서는 배제했지만 목적을 가지고 쓰이는 글이나 누군가의 작업에 기여해야 하는 글, 연구도 큰 맥락에서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고. 소위 하는 말로 ‘주례 비평’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비평은 쓰는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주례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준혁 ‘비평은 죽었다’, ‘회화는 끝났다’ 같은 말을 자주 접하는데, 구체적 사례와 근거를 접하기 어려워 이 말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추측을 하자면 비평이 평가보다 소개에 가깝다거나, 평가 중심의 결과물이 얼마나 있나란 질문에 회의적인 답을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좀 다르게 말하면, 자발적으로 비평이라는 걸 하지 않고,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비평을 하는데 비평은 평가고 그 평가는 마냥 좋을 수 없다. 이 점을 견뎌야 하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라 여긴다. 또 비평은 금전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야 온전해진다고 여기는데, 아니라면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의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비평을 의뢰받아 한 적이 있는데, 요청사항은 A4 한 장짜리 비평이었다. 그런데 한 장으로는 비평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작가님께는 총 26쪽의 원고를 따로 드렸다. 이 원고를 다시 웹에 게시하는 포맷에 맞춰 7쪽으로 정리했고, 장황과 한지에 관한 두 편의 글을 따로 분리해서 다시 썼다. 조사와 연구에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네 달이 걸렸고, 리서치를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글을 쓸 수 있었다. 금전적 보상에 대해 말해 보자면, 우리가 비평을 죽이지 않고 살리려면 50만 원은 부족하다. 200~400만 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 연구용역 인건비 기준으로 말이다. 또한 비평 과정에서 그 작가의 작업에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비평이란 비평을 하게 되는 동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첫째 작가와 작업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고, 둘째 작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착실하게 잘 전했다는 성취감인 것 같다.


진주 너무 훌륭한 사람이다. 옛날에 마코 나간다더니…….


준혁 그때는 매달 썼으니까… 무리라고 생각했다…


진주 잘 붙잡았다.


준혁 덕분에!


(이미지3) 귀여운 마코 구성원들. 사진: 고정균.

진주 준혁이 다룬 비평가를 위한 보상, 특히 금전적인 분석에 관한 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글은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되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쓰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 시간이 간다.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비평가다. 다른 관점에서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마코에서 작가에 대한 글을 쓴 게 다섯 개 정도 있다. 내 나름 비평에 입각해 쓰는 글이었는데, 전부 다 물질 이야기밖에 안 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비평의 자리가 있다면, 내가 연구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그 주제에 연관되는 작가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그런 주제로 글을 부탁한 작가는 딱 두 명이다. 나의 마이너한 주제 의식을 공개할 수 있는 자리로서 마코라는 곳이 너무 소중하다. 제한된 주제에 한해서만 비평이 생산되고 있는 환경도 아쉽다. 비평이라는 것들이 제한된 주제만 다루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도 크다.


여명 나도 앱스에 쓰는 글이, 남은 나한테 이런 글을 절대로 청탁하지 않겠지라는 글들뿐이다. 그걸 보고 나한테 청탁을 주는 사람도 없다. 아마 내가 연구나 비평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까운 산문을 쓰고 있어서 그런 것도 같다.


선호 나는 스스로를 비평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글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어떤 집단에서도 외톨이였던 적이 많다. 늘 공감을 많이 받지 못한다. 반 정도의 제도 비판, 반 정도의 에세이인 글에 관심이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이런 주제를 가볍게 다뤄볼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뭔가를 해낸다기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쓰는 것. 그래서 글을 쓰고 누가 이걸 읽게 될까 생각하다 보면, 마코는 글을 3편씩 묶어 발행하는데, 각자 연구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까 같은 시기에 발행한 다른 글의 독자와 내 글의 독자층이 겹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느 달에는 회화나 시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내 글을 함께 읽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관심사로 유입되는 독자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뭔가 생각하는 게 달라지겠지 그런 태도를 유지하게 된다.


유준 나는 여기 있는 친구들에 비해 비평과 무관하다. 다만 연구의 관점에서 최근 흥미로운 것을 생각했다. 논문을 하나 공저 중인데, 큐레이터를 이론적으로 풀어내려는 연구다. 공저자와의 야심은 백 퍼센트 인용되는 논문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둘 다 알아버렸다. 내가 하는 말은 미술에 기반을 둔 사회학자의 시선이었고, 공저자인 교수님은 완전 사회학자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둘 중 한 명이 죽지 않으면 이 글은 완성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다음 달에 군대에 간다.


여명 네??


유준 그 전에 이 논문을 마쳐야 한다. 어쩌면 세상은 외골수들이 어떻게든 조금 있어야 하지 않나. 독자층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좋겠지만 천성이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독자의 존재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글을 망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데서 오는 어떤 부담감, 자괴감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자신이 가진 관심사에 집중하게 된다. 누가 읽을지는 몰라도 진심을 담으려 하고.


준혁 앞에서 비평 이야기를 하느라 연구 이야기를 못해서 다시 하고 싶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직업 전문성을 키우는 삶을 살고 있다 보니 귀중한 시간을 내서 글을 써야 한다. 이 시간이 각자에게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 마코에서 쓰는 글은 지금 하는 일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중요하다. 예를 들면 미술 작품 가격 책정하기, 예술 지원 사업 선정 과정 돌아보기 등 실제로 활동을 할 때마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풀거나 지금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특히 누군가 대신 해 주지 않는 것들은 직접 해야하니, 그럴 때마다 연구라는 걸 하게 된다. 나와 같은 갈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연구 결과물을 공유했을 때 업계의 전반적인 지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연구를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누군가 의뢰하지 않아도. 연구, 비평, 공부의 동기는 분명하다.


여명 (오늘 참석하지 못한) 민주의 관심사는?


진주 그녀는 이미지론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이미지의 수행성을 중심으로 신체적 움직임이나 몸의 이미지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초반에는 다큐멘터리 등 이미지의 기록성에 관련한 글들을 썼다. 누군가 기록한 이미지가 특정 (컨)텍스트 없이도 정치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면, 이후에는 접근성 관련 글, 이미지의 연극성,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 릴스를 통해 온라인에서의 이미지 경험 등을 글에서 다뤘다. 사실 민주의 주제는 하나로 좁히기 어려워보이는데, 거시적으로 보면 이미지와 언어/텍스트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 같다. 우리 중 가장 미술에 맞닿아 있는 사람이다. 아마 이 질문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을지.


여명 마지막 질문이다. 글이 발표되는 장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겠다. 동시대 예술계에서 비평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면 어떤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준혁 두 가지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 하나는 내가 필요해서 그런데, 머리를 쓰지 않는 작업을 할 때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를 누가 좀 해 주면 좋겠다. 그게 비평이면 더 좋겠다. 다른 하나는 국공립미술관 주도로 공론장이 열리면 좋겠다. 공론장 주제는 한 가지로 정해도 되고, 패널에 따라서 매번 바꿔도 되고 다양할 수 있다. 첫 번째든 두 번째든 일상적으로 미술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가 꾸준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지금 있는 앱스나 YPC나 마코나 연구하고 비평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계절별로 모여서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여명 나는 이 인터뷰를 통해서 준혁이 너무 마음에 들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


준혁 뭔가 하실 할 때 연락 많이 주시라.


선호 나는 작년에 청탁을 절대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요새도 동료들한테서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종종 온다. 아무래도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써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요청하는 것 같다. 거절을 여러 번 하면서 작가와 함께 글을 쓰는 편집자로서의 필진 모델을 생각했다. 내 경험 안에서 작가 친구들이 도록을 만들 때 너무 막막하기 때문에 글을 받고, 자기 도록을 꾸리는 계획을 세우는데, 그럴 때 같이 만들어 줄 수 있는 작가이자 편집자 모델 같은 것들이 있으면 좋겠고, 그런 공동 작업 같은 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면 좋겠다. 다듬고, 리뷰를 받고, 디벨롭 하면 할수록 더 정확해지는 게 있다. 누군가 어떤 말을 하고 싶고 전달하고 싶을 때 함께할 수 있고 그거에 대한 크레딧이 정확히 보장되는 그런 모델이 있으면 좋겠다. 편집자란 이름이 적합한 것 같진 않지만.



진주 작년인가 지나가는 말로 했었는데, 앱스랑 마코랑 YPC랑 운동회를 하면 좋을 것 같다(웃음). 세 콜렉티브는 모두 글을 쓰지만, 꼭 정적인 글이 아니라도 활동적이면서도 가벼운 어떤 행사를 떠올렸던 것 같다. 운동회가 어렵다면 다른 뭔가를 도모해 보고도 싶다. 사실 우리가 주목받을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게 크다. 비평이 죽었다는 말도 비평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체 없이 하는 말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우리 여기 있는데 너희가 모르는 거잖아”라는 식의 적반하장보다는 “봐 봐, 우리 여기 있다” 같은 주도적인 보여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 콜렉티브의 활동들이 자조적으로 비쳐지지 않게끔 함께 어울릴 수 있을 만한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


여명 이 인터뷰가 계기가 되면 좋겠다.


유준 비평도, 연구도 정보가 많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모든 일들이 내가 너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고 그 앎을 통해서 나만의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게 현대의 모든 생활과 경쟁의 미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떠도는 이야기는 많고, 저 사람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어렴풋이 보고 연락하고 기대한 결과물을 못 받아 실망하는 경우도 있고. 비평가나 연구자나 그런 사람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있는 계기들이 있으면 좋겠다. 2012-2013년 사이에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뜬 적이 있다. 그때 디자이너를 연결해 주는 웹사이트가 생겼다가 금방 사라졌다 이를 롤모델 삼아서 작가, 기획자, 비평가, 연구자 모두를 매개하는, 어떤 하이퍼링크로 기능하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서로의 노력을 서로가 알 수 있도록. 요즘은 너무 각자도생인 게 심하다.


여명 긴 시간 수고해 주셔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마코의 다음 활동 홍보 부탁드리겠다.


진주 2024년 1월호로 유승아(특별 기고), 나와 민주의 글이 발행되었다. 다가올 봄에는 부산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할 예정이다. 아직 공유하기엔 이르다. 기다려 달라. 기대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