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의 소각로에서ㅡ예술은 발생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황재민

1.

디지털 기반의 예술을 지원하고 연구하기 위한 플랫폼, 리좀(Rhizome)이 2019년 전시 《예술은 여기서 발생한다: 넷 아트의 아카이브적 시학(The Art Happens Here: Net Art’s Archival Poetics)》을 기획했을 때, 그것은 당연히, 하지만 조금 늦게, 넷 아트(Net Art)라는 흐름을 역사화한 이벤트로 보였다. 전시는 리좀이 2003년부터 오랜 제휴 관계를 이어 온 뉴 뮤지엄의 1층 공간에서 열렸고, 기록 사진을 통해 훔쳐본 결과, 그리 인상적인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래된 컴퓨터의 CRT 모니터와 주사선의 가로줄, 시대 감각이 어긋난 웹페이지 인터페이스, 넷 아트 전시의 클리셰를 반복하는 전시의 풍경은 이미지 차원에서도 흥미로울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흥미롭게 보였던 것은 리좀이 전시와 함께 공개한 웹페이지, 『넷 아트 앤솔로지(Net Art Anthology)』였다.1 동명의 책으로도 발행된 이 아카이브엔 리좀이 정리한 넷 아트의 짧은, 혹은 긴 역사가 담겨 있었고, 전시에 비해 웹 아카이브가 보다 풍부하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넷 아트는 “여기서”, 네트워크의 종단이 아니라 노드와 노드 사이 링크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현실과 가상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짧은 역사로부터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인지, 몇 가지 사례를 골라보자. 타임라인의 첫 번째 자리에 놓인 것은 1985년, 에두아르도 칵(Eduardo Cak)이 선보인 〈리브라카다브라(Reabracadabra)〉였다. 이것은 구체시(Concrete Poem)에 영향받은 원시적 형태의 디지털 시로, 구식 단말 디스플레이에서 한 열씩 특정 텍스트가 로딩된 끝에 이미지로 귀결되는 형태였다. 작업은 넷 아트 역사의 첫째 열에 놓이기에 손색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분명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었다. 〈리브라카다브라〉는 우리가 아는 웹 프로토콜이 아니라 비디오텍스토(Videotexto)라는 초기 정보 제공 시스템에 의지해 제작된 작업이었고, 비디오텍스토가 제공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보다 국지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2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과 HTML, 웹 브라우저와 TCP/IP 프로토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의 요소가 반영된 넷 아트는 1990년대에 접어 들며 시작된 듯 보인다. 넷 아트라는 카테고리를 크게 대표하는 작업 중 하나인 올리아 리알리나(Olia Lialina)의 〈내 남자친구가 전장에서 돌아왔다(My Boyfriend Came Back from the War)〉(1996)는 특정 브라우저가 제공하는 상호작용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관객, 혹은 사용자(User)는 웹 페이지에 접속한 뒤 이미지와 텍스트를 클릭하며 참여해 이야기를 따라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작업은 일부 영화적인 내러티브를 전개하며, 그러므로 〈내 남자친구〉는 웹 환경에 영화의 문법을 들여온 사례로 설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내 남자친구〉는 넷 아트의 ‘특정성(specificity)과 분명한 연관을 갖는 작업이었다. 올리아 리알리나는 넷에 있는 것은 반드시 “넷 언어(net.language)”로 작성되어야 한다는 특정적 의견을 강조하며, HTML 언어에 의존한 작업인 〈내 남자친구〉는 이런 의견을 분명하게 반영한다.3



(이미지1) 올리아 리알리나, 〈내 남자친구가 전장에서 돌아왔다〉, 1996. https://sites.rhizome.org/anthology/lialina.html

하지만 넷 아트의 다음 타임라인에서, 특정성을 주장한 올리아 리알리나의 의견은 빠르게 소강 되는 듯 보인다. 인터넷은 더 빠르게,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하며 결과적으로 ‘재매개(remediation)’된다 – 스크린의 편재를 초래하며 ‘스크린 기반 예술(Screen-based Art)’의 일종으로 확장된다. 2000년대의 넷 아트에서, 브라질의 예술 콜렉티브 코포스 인포마티코스(Corpos Informáticos)는 작업 〈텔레프레센스2 (Telepresence 2)〉(2002)를 통해 신체 이미지가 웹캠을 거쳐 송신되며 ‘로-파이(lo-fi)’하게 변형, 탈신체화되는 수행적 상황을 다루고, 라이언 트레카르틴(Ryan Trecartin)은 (당시로서는) 신생 플랫폼 중 하나였던 유튜브를 하나의 갤러리로 탈바꿈한다. 그는 가짜 리얼리티 TV쇼를 연출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작업을 TV와 인터넷 사이, 오래된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 사이에 놓는다. 또 페트라 코트라이트(Petra Cortright)는 〈VVEBCAM〉(2007)에서 웹캠으로 촬영한 자신을 전시하는데, 필터로 꾸며진 선구자적 셀피(selfie)를 이용해 웹캠 기반의 스크린 문화를 차용한다. 어쨌든 인터넷은 많은 것을 매개하며 거대해지고, 한번 증폭된 전송량은 다신 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앤솔로지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몇몇 작업은 인터넷으로부터 이탈한다. 대표적인 두 사례가 있다. 올리버 라릭(Oliver Laric)과 아티 비어칸트(Artie Vierkant), 두 작가의 작업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의 공유지를 갖는다. 이제 작업은 웹 브라우저를 떠나 실제 전시장에 놓이며, 능히 그럴 수 있게끔 실제 물질로 만들어져 전시된다. 1969년 미 국방부 고등 연구 계획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의 네트워크로 시작해 이내 전세계를 하나의 장소로 엮는 거대한 인프라로 확장된 인터넷은, 갈수록 강력해진 끝에 네트워크 바깥, 현실의 침입을 허용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

리좀이 정한 전시의 제목, “예술은 여기서 발생한다”는 넷 아트의 경제와 형식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한 작가 듀오 MTAA의 다이어그램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간단한 넷 아트 다이어그램(Simple Net Art Diagram)〉(1997)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면은, 이름처럼 간명하다. 두 개의 컴퓨터가 있고 그것을 연결한 네트워크 케이블이 있으며, 예술이 발생하는 곳은 그 케이블의 중간지점이다. 물질적 공간으로서 광섬유 케이블에는 오직 전류만이 머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므로 넷 아트는 물질과 관계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게 당연하다. 이에 더해 미디어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인 틸만 바움가르텔(Tilman Baumgärtel)은 작가 그룹 ‘넷.아트(net.art)’의 예술을 분석하며 그들의 ‘매체 특정성(Medium specificity)’에 대해 부연한다. 그것은 상호 연결성(connectivity), 전지구적 접근 가능성(global reach), 멀티미디어성(multimediality), 비물질성(immateriality), 그리고 상호작용성(interactivity)과 평등성(egality)으로, 넷 아트는 물질적 현실과 갈등을 빚는 예술이며 전시장에 전시하기 어려운 예술임이 틀림 없었다.



(이미지2) MTAA, 〈간단한 넷 아트 다이어그램〉, 1997. http://www.mtaa.net/mtaaRR/off-line_art/snad.html

하지만 더 빠르게 많은 것을 전송하는 네트워크가 된 인터넷은 현실을 수용하고, 넷 아트가 ‘특정성’을 의지했던 인터넷의 속성과는 전혀 달라진다. 인터넷은 너무나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인프라스트럭처의 일부로 안착했기 때문에,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개인은 24시간 인터넷과 연결된다. 당신의 정체성은 SNS에 있고 자산 역시 디지털화된다. 인터넷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진, 이 ‘인터넷 이후(Post-Internet)’의 세상에서, “넷 언어”라는 가정은 무의미해지며 물질의 세계가 다시 한번 나타난다; 비물질화된 물질, 혹은 물질화된 비물질의 모습으로.


그렇다면 여기서 넷 아트는 특정성을 상실하며 사라지고, ‘포스트-인터넷 아트(Post-Internet Art)’로 전환, 혹은 발전되고 마는 것일까? 하지만 두 카테고리가 선형적인 선후 관계를 갖는지, 한 쪽이 한 쪽으로 서서히 흡수되는 것인지, 혹은 완전히 단절되어 버리는 것인지 사실을 가리는 것은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이것을 모더니즘에 대해 포스트 모더니즘이 취하는 용법과 비교하기도 하는데,<4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저 그만큼의 복잡함이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로 이해해보기로 하고, 다만 넷 아트와 ‘포스트-인터넷 아트’, 각자의 온도차를 비교할 수 있는 오래된 의견을 잠시 정리해본다.


알렉세이 술긴(Alexei Shulgin)과 나탈리 북친(Natalie Bookchin)이 함께 쓴 「넷.아트 개론 (1994-1999) (Introduction to net.art (1994-1999))」5은 1990년대 후반에 쓰였고, 그 자체로 넷 아트, 나아가 인터넷에 투영된 기대를 자가 해설하는 사례로 읽힌다. 글은 마치 강령을 정리하듯 넷 아트의 규칙과 매체성, 또 가능성을 도열하며, 인터넷이라는 미증유의 기술을 타고 예술이 마침내 선사할 긍정적 전망을 열거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골라내보자: 넷 아트(혹은 넷.아트)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예술적 표현이 가능한 저항적 형식이다. 인터넷 위에서 생산자와 수용자의 경계는 의미 없이 허물어지며, ‘저자’는 확실하게 죽어 없어진다. 이들은 인터넷 안에서 미술관, 혹은 박물관이 곧 상점이나 포르노 유통사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리라 위협하고, 이 모든 것은 네트워크에 연결되기만 하면 벌어지는 실제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포스트-인터넷 아트’와 관련된 담화 속에서 “연결”의 가치는 재고된다. 기술로써 인터넷은 극적인 순간이동과 무한한 변화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novelty) 것이 아니라 평범한(banality) 것이 된다.6 치명적으로 일상화되며 동시에 비가시화된 인터넷은 연결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네트워크 연결 없이도 ‘인터넷적인 것’이 발생하고 인식될 수 있다는 감각이 생성되자, 넷 아트의 희망은 낡고 감각적 현실이 변화한다. 이미지는 인터넷 레디메이드로서 물질로 번역되며 개인은 완전 몰입형 자율성을 갖는다.


넷 아트와 ‘포스트-인터넷 아트’ 사이에는 선형적인 연결이나 확실한 단절이 아니라, 중간지점이 너무 흐려 잘 보이지 않는 디졸브 효과가 적용되는 것 같다. 넷 아트가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라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넷 아트가 온라인 환경을 도구로 활용했다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온라인 환경을 하나의 의식으로 인지한다. 넷 아트가 장르라면, ‘포스트-인터넷 아트’는 장르를 넘어, 하나의 상태(Condition)가 된다.7


넷은 현실로 나가고 싶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그 무엇보다도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식처럼 보이는 넷 아트지만, 역사적 근거로 꼽히는 경향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들은 넷 아트의 근거를, 플럭서스 작가인 레이 존스(Ray Jones)가 시도한 ‘메일 아트(Mail Art)’로부터 찾는다.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것은 우편 통신 체계를 하이재킹해 해프닝을 벌인 결과인데, 넷 아트를 근본적으로 우편 통신 체계인 인터넷을 하이재킹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분석은 옳다. 누군가 말했듯, 우편 체계에는 언제나 청개구리 같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다8 - 지켜야 할 규칙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이 규칙을 우회하고자 말썽을 피운다. 넷 아트는 이 말썽의 미학화된 사례였고, 현실, 간추려 말하자면 제도, 그리고 시장과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넷.아트 개론」에서, 알렉세이 술긴과 나탈리 북친은 명료하게 말한다. 넷 아트는 제도에 대해 0%의 타협도 없는 형식이다.9 여기선 현실 대신 가상이 옳으며 신체 대신 탈신체가 옳고 제도와 시장 대신 인터넷이 옳다. 하지만 그들의 단언과는 다르게, 넷 아트는 결국 제도, 그리고 시장 안으로 천천히 포섭될 수밖에 없었다. 넷 아트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의 원주민들에게보단 미술관 관객들에게 더 익숙한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넷 아트의 저항적 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이 카테고리가 제도, 그리고 시장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제도는 넷 아트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고,10 시장 역시 그들을 그렇게까지 필요로 하지 않았다. (대체 누가 인터넷 아트를 사고 싶어하는가?11)


이런 상황에서 넷 아트의 꾸준한 기여자인 올리아 리알리나의 온 고잉 프로젝트, 〈킬로바이트 시대의 1 테라바이트(One Terabyte of Kilobyte Age)〉(2010-)는 의미 심장하다. 이것은 도산한 웹 호스팅 서비스인 지오시티(Geocity)를 복구하는 프로젝트로, 새로움으로 들떠 있던 기술이 드디어 낡음을 매개할 수 있도록 변했다는 사실, 고고학이 가능한 역사의 세계로 퇴적되고 말았다는 증명이었다. 넷 아트 역시 노후화하여 뒤처지며, 혹은, 닷컴버블이 터져 사라졌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미지3) 올리아 리알리나, 〈킬로바이트 시대의 1 테라바이트〉, 2010-. https://oneterabyteofkilobyteage.tumblr.com/

3.

그러나 작년, 그리고 올해에 걸쳐, 이제 무용해진 듯했던 넷 아트의 존재론이 재차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흥미롭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의 범세계적 유행 이후 제도는 일시 정지된 후 재배열되었고, 이 과정에서, 조금 과장하자면, 많은 전시 형식이 넷 아트로 수렴된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로부터 파생된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의 발행은 넷 아트가 시장과 맺던 갈등 관계를 재구축한다. 넷 아트는 제도, 그리고 시장과 전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며, ‘포스트-인터넷 아트’라는 완충재 없이 현실로 급작스럽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 마치 넷 아트와 현실 사이엔, 원래 어떤 공백도 없었다는 듯이.


물론 인터넷은 한 번도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적 없었다. 해저 케이블부터 인공위성까지, 인터넷의 어마어마한 비가시성 뒤에는 그것을 가능케 해준 단단한 미디어 인프라스트럭처(Media Infrastructure)가 자리했으며 이제 우리는 전자 쓰레기(Electric waste)와 디지털 자산이 초래할 해수면 상승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 넷 아트 역시 항상 마찬가지였다. 에이브 링컨(Abe Linkoln, Rick Silva)은 MTAA의 ‘간단한’ 다이어그램을 리믹스해 〈복잡한 넷 아트 다이어그램(Complex Net Art Diagram)〉(2003)으로 변형한다. 이 복잡한 다이어그램에서, 예술은 “여기”, 거의 세계 그 자체에 가깝게 보이는 카오스적 도면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가며 혼란스럽게 “발생한다.” 그리고 이 다이어그램의 정확도는 MTAA의 간명한 버전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이미지4) 에이브 링컨, 〈복잡한 넷 아트 다이어그램〉, 2003, 부분 크롭 이미지. 전체 http://www.linkoln.net/complex/

이처럼 인터넷이 어디에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현실과 매여 있는지 따지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인터넷에 대해 더 구체적인 분석을 가능케 하며 현실에 대해서도 예기치 못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예술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되기에 앞서 갑작스럽게 해소되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위에서 말한, 엮였되 엮이지 않은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COVID-19의 범유행에 대한 긴 이야기는 짧게 정리하도록 한다. 감염병이 오프라인 전시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자,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터넷 공간이 예술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각광받는다. 예술가들의 계획과 생계가 불확실해지자 제도적 지원이 뒤따르고 웹 기반의 프로젝트는 공인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전시는 웹 인터페이스를 적극 활용하고, 어떤 전시는 가상 미술관(Virtual Museum)을 만들어 작업을 옮겨 둔다. 혹은 게임의 문법이 참조된 사례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은 “넷 언어”로 구성되지만 넷 아트라고는 불리지 않는다.


억지 트집으로 보일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도 나는, 어째서 넷 아트는 인터넷을 미학적 매체로 선점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그것은 네트워크가 이미 무의식적인 차원으로 스며들어 비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혹은 “넷 언어”가 HTML을 탈출해 고급화되는 과정에서 계급화되며 은폐되었기 때문이다. 또는 인터넷이 예술로는 분절할 수 없는 거대한 현상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면 넷 아트 형식이 보존과 소장이 쉽지 않은 탓에, 연속되지 못하고 쉽게 사라져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넷 아트의 방법은 넷 아트가 삭제된 채 현실로 가까워지며, 제도의 일부로 공인된 디지털 예술은 이미 지나간 과거사를 굳이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넷 아트와 시장의 관계는 더욱 골치 아픈 일이었다. 넷 아트가 실제로 판매되고 누군가는 그것을 소장하는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질문이 뒤따랐다. 대체 누가 인터넷 예술 같은 걸 소장하고 싶어하는데? 하지만 NFT라는 일이 일어난 후 질문에는 대답이 주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파일을 소유할 수 있게 되자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NFT와 관련된 소란스러운 이야기 또한 짧게 줄여본다.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유튜브나 기타 다른 검색 엔진에 NFT를 찾아보면 더욱 전문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다.12 어쨌든 이것은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이며, 블록체인(block chain)에 등록되어 소유권을 조작할 수 없게 공인된 디지털 자산이다. 블록체인이란 일종의 신뢰 프로토콜이며, 새로운 블록이 만들어질 때 반드시 직전의 블록을 참조해야만 하는 구조의 분산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 DLT)이다. 하나의 블록을 침해하거나 변조하기 위해서는 전체 블록을 수정해야만 하는 구조를 갖춤으로써,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기존의 취약한 인터넷 인프라 보안이 진실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3의 존재, 이른바 ‘중개인(Middle Man)’을 요구했다면, 블록체인은 중개인의 자리에 수십 억 개로 나뉜 전 세계의 디바이스가 참여하는 P2P(Peer to Peer) 네트워크를 대신 놓는다. 블록체인은 인터넷을 정보가 아니라 실제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프로토콜로 전환시키며, 이 모든 일은 2008년, 정체 불명의 디지털 인간인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비트코인(Bitcoin)이라는 이름의 P2P식 전자 결제 프로토콜을 제안하며 벌어진 일이다.13 NFT가 가치를 의지하는 영역은 이 새로운 인터넷 발명이다.


NFT는 등장 이후, 거의 즉시 예술의 관심을 끌었고, 디지털 예술가 비플(beeple, Mike Winkelmann)의 작품 〈매일: 첫번째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수료 포함) 6930만 달러에 판매된 뒤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14 개 중 하나를 참조해보자. 지난 3월 발행된 글 「NFT와 디지털 르네상스」에서는 오디오 채팅 소셜 미디어인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NFT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고, 이내 작품을 발행하기에 이르는 한국 예술가들의 좌충우돌이 묘사된다. NFT를 발행하려는 작가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해 방법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흡사 디지털 살롱을 연상케 하는 가상 공간에서 만나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한다.15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인터넷 네트워크 위에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쉽게 작업을 소개하며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 동시에 무단 복사와 저작권 침해, 그리고 가치 보증의 불가능성이라는 약점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인터넷 시장, NFT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는 어쩌면 넷 아트의 초기 참여자들이 강조했던 몇 가지 기대를 되풀이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무한하게 재생산될 수 없는 인터넷 재화가 과연 어떤 미학적 주제를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이미 너무나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시장, 그리고 상품과 관련된 논쟁을 다시 한번 불러들이는 셈이 되지 않을까? 미술사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데이빗 조슬릿(David Joselit)은 NFT를 ‘역전된 레디메이드(Readymade reversed)’라고 풀이한다. 레디메이드는 결과적으로 대체 가능한 예술이었고, NFT는 이 발견을 뒤집는다. 뒤샹은 상품으로부터 물질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예술이라는 카테고리를 이용했다. NFT는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자산으로 사유화하고자 예술이라는 카테고리를 이용한다. NFT라는 아이디어에서 미학적 전유는 불가능해진다. 조슬릿은 NFT가 물질적 경험보다 사유물의 가치를 앞세우는 사회적 계약이라고 평하며, 블록체인이 보증하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와는 달리, 이 사회적 계약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16


보수적인 의견이지만, 타당한 의견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영역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그것은 내가 의견을 보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블록체인은 혁명적 기술이며 NFT 역시 계속해서 많은 가능성을 가질 것이다.17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을 몇 가지 늘어놓는 것으로 이 단락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만일 넷 아트에서 ‘넷에 있는 것은 넷 언어로 쓰여야 한다’는 의견이 가능했다면, 어느 정도 ‘더 나은 넷 아트’처럼 보이는 NFT에서는 비슷한 의견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NFT는 블록체인을 무엇이라고 개념적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더리움(Ethereum) 플랫폼을 어떻게 비평할 수 있을까?


나아가 한 가지, NFT 예술가들이 직면할 것처럼 보이는 당혹스러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NFT를 포함한 블록체인 생태계 전반에서, 밈(Meme)의 정치가 예술의 정치를 분명하게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접 소유 가능한 크립토 자산(crypto ../assets)으로 초반에 각광받았던 것들이, 이를테면 유명한 밈 ‘페페(Pepe)’가 묘사된 디지털 트레이딩 카드 이미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2021년 현재 이더리움 플랫폼이 NFT를 위한 ‘물질적’ 토대라면, NFT가 의지하는 문화적 토대는 예술이 아니라 밈일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도지코인을 둘러싸고 펼쳐진, 파멸적으로 흥미진진했던 자본주의 오페라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혹시 이더리움의 공동 창업자이자 아이콘인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컨퍼런스에서 ‘오소리 노래(Badger song)’에 맞춰 춤추는 장면을 본 적 있는지? 나는 그의 크립토 지갑에 예술가들이 발행한 NFT보다는 밈에 대한 소유권이 더 많지 않을까 추측한다. NFT 시장이 활발해진 뒤, 주요 경매사, 혹은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소장전이 열린다고 생각해보자. 어쩌면 그때 보게 될 것은 밈 소장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예술이 예술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새로운 인터넷에서 자유로워지리라는 확신은 아직 과신처럼 보인다.



(이미지5) 2018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이더리움 개발 컨퍼런스. 유튜브 비디오 캡처. https://youtu.be/kUheuFDHSvI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감염병 범유행이라는 사건과 NFT라는 기술은 넷 아트의 낡고 지친 이념을 제도와 시장에 각각 성공적으로 기입한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은 현실에 조금 더 가까워졌고 앞으로 계속해서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 이행에서 자꾸만 공동이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제도는 넷 아트가 아니라 ‘인터넷 위의 예술’을 공인하며, NFT는 넷 아트의 실패와 기대를 반복하며 같은 구호를 사용한다. 넷 아트라는, 철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지금 어떤 이야기가 어떤 차원에서 반복되는지, 돌이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스마트카(Smart car)와 AR, VR, 메타버스(Metaverse)를 둘러싼 소란부터 블록체인까지, 네트워크 기반의 기술 인프라는 점점 더 빠르게 현실화된다. 하지만 이것은 미래가 아니다. 이미 수십 년 전 상상된 적 있는 낡은 미래일 뿐이며 여기선 숨은 그림을 찾듯 예견된 미래적 과거를 현실과 짜맞추는 일만이 가능한 것 같다. 새로운 상상이 불가능하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흠집을 살피고 보완해 조금이라도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할지 모른다. 세상은 가끔 소각로 같고 안에 넣은 것이 다 타면 부스러기가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남았을까?



1ㅤ Rhizome, Net Art Anthology, 2021년 5월 22일 접속, 출처.

22ㅤ 비디오텍스토는 데이터 통신을 이용한 양방향 정보 매체의 초기 구현체 중 하나인 비디오텍스(Videotex) 서비스의 일종으로, 브라질에서 서비스되었다.

33ㅤ Josephine Bosma, “Olia Lialina interview Ljubljana,” nettime, 2021년 5월 22일 접속, 출처.

4 Jennifer Chan, 「Notes on Post-Internet」, You Are Here: Art After the Internet, ed. Omar Kholeif(Cornerhouse Publications, 2014), 107.

5 Natalie Bookchin and Alexei Shulgin, “Introduction to net.art (1994-1999)”, 2021년 5월 22일 접속, 출처.

6 Marisa Olson, “Postinternet: Art After the Internet”, Foam Magazine, 29 (2011), 61.

7 Louis Doulas, “Within Post-Internet, Part One”, pooool.info, 2011, 원문 소실, 백업된 글을 통해 확인, 출처

8 케이티 해프너, 매튜 라이언, 『인터넷의 기원』, 이재범 옮김(지식함지, 2016), 262.

9 Natalie Bookchin and Alexei Shulgin, op. cit.

10 리좀은 『넷 아트 앤솔로지』의 짧은 서문에서, 앤솔로지를 엮은 의의 중 하나로 가장 중요한 작업조차 접근하기 어렵다는 상황을 거론한다.

11 Jennifer Chan, “From Browser to Gallery (and Back): The Commodification of Net Art 1990-2010”, pooool.info, 원문 소실, 백업된 글을 통해 확인. 출처.

12 혹은 바이낸스 아카데미를 참조하라. 출처.

13 돈 탭스콧, 알렉스 탭스콧, 『블록체인 혁명』, 박지훈 옮김(을유문화사, 2018), 111-115.

14 Kabir Jhala, “WTAF? Beeple NFT work sells for astonishing $69.3m at Christie’s after flurry of last-minute bids nearly crashes website”, The Art Newspaper, 2021년 5월 22일 접속, 출처.

15 박성미(Shura), 「NFT와 디지털 르네상스」, 2021년 5월 22일 접속, 출처. 이 중요한 글을 소개해준 것은 abs의 공동 편집인인 김호원이다. 감사합니다!

16David Joselit, “NFTs, or The Readymade Reversed”, OCTOBER, 175 (2021), 3-4.

17 이 글을 쓰는 동안 추가된 새로운 소식 하나를 덧붙여본다. 3월 18일, 디지털 예술가 션 윌리엄스(Sean Willams)는 인스타그램이 NFT 플랫폼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공개했다. 작가 트위터 스레드 참조